선의 언어 - 선을 넘지 않는 선한 대화법
손민호 지음 / 채륜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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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선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쓰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놓고 선을 긋는 일은 상대방에게 서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 사이에는 선이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기본적인 선을 자꾸만 넘나들며 본인 감정 배설물만 쏟아내는 사람의 연락이 반갑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게도 어쩔 도리가 없다.

친구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는 소제목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얼마 전 A가 B에게 자신의 고민이자 감정 배설물들을 한껏 쏟아내었고, 이번에는 B가 A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쏟아낼 생각으로 전화를 걸지만, 네 고민은 고민도 아니라며 단칼에 거절하고 자신은 비슷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대처했다며 무용담을 펼친다. B는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멀어질 준비를 한다.

저자는 B가 생각하는 대화를 일종의 빚이라 표현한다. B는 부정적인 가치가 담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일종의 빚이라 생각한 것이고, 자신도 언젠가 부정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질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 친구의 감정 토로를 잘 들어준 것이다. 친구 사이에는 서로가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기도 하니까. 그러나 A는 그것을 들어주지 않았으니 B는 이를 서운하게 느낀 것이다.

나의 대화는 주로 어떤 입장일까.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감정을 들어주는 것은 정말 지긋지긋한 일이다. 상대방의 상황이나 기분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감정만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사람은 반대로 남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 않는 경우를 보곤 한다. 그냥 하고 싶은 말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가 싶을 정도.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나도 친구들에게 가끔 무례할 정도로 내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아 반성한다. 친구는 서로의 감정의 쓰레기통도 아니고, 누군가의 고민을 별것도 아닌 일로 치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저자는 이광수의 <무정>을 예로 들며 훈계하고 지적하는 사상과 말투에 대한 청자의 거부감을 언급한다. 대신 언어유희를 통해 칼을 품지 않은 말로 웃음을 유발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이것이 어른의 대화라고. ‘내 말이 옳을 테니 너는 따르라’는 의미가 가득 담겼지만 말투만 정중한 명령이나 선 칭찬 후 떠넘기기식의 말투를 듣고 결국 나도 선을 넘는 수준으로 정색했던 일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졌다. 누군가 내게 보였다면 불쾌했을 태도로 똑같이 상대방의 무례함을 대했던 기억은 유쾌하지 않다. 자괴감이 든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지혜롭고 교양 있게 상대방의 무례함을 대처할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비언어를 소리 없이 강한 몸의 메시지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 깊다. 가끔 누군가의 눈빛이나 제스처 혹은 내게 연락하는 시간에서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일 때가 있다. 굉장히 공손한 말투로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묻거나 이미 여러 번 설명한 것을 아무렇지 않게 계속 물어보는 사람을 대할 때 나는 가끔 혼란스럽다. 딱히 설명하지 않아도 나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스스로를 포장하는 데도 진심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워 듣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불편을 느끼는 행동을 나부터 조심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아무 때나 항상 나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는 일이고, 상대방은 지금 업무에 치여 농담을 들을 여유가 없을 수도 있으며 조용히 쉬고 싶은 시간에 혼자 신나서 연락한 내가 달갑지 않은 상황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니 아까 늦은 시간에 메시지를 보내놓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앞으로는 늦은 시간 혹은 아침부터 미안하다고 인사하며 연락할 게 아니라 남이 쉬고 있을 시간에는 연락을 참아야겠다. 나도 선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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