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의 반란 - EBS 다큐프라임 화제작!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지음 / 지식너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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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얼마나 잘 노는지를 평가할거에요.˝

아마 한번 쯤은 ˝컴퓨터 게임으로 시험보면 진짜 1등할 자신있는데˝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공부가 아닌 컴퓨터 게임으로 시험을 보고 성적을 매긴다면, 진심으로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즐거운 놀이가 아니다. 지긋지긋하게 하기싫은 공부일 뿐이다.

많은 어른들이 취미생활이란 이름으로 그들 만의 놀이를 즐긴다. 그들에게 취미생활, 곧 놀이는 즐거움을 주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행위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집에 오면, 주말마다 놀이에 빠져든다. 옆에서 누가 ˝아니, 그건 그렇게 하면 안되지! 봐봐, 이렇게 하는거라니까? 나 따라해봐˝라고 훈계아닌 훈계를 한다면 짜증이 나면서, 갑자기 의욕이 떨어질 것이다. 어른들 중에는 공부하는 것처럼, 일하는 것처럼 노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른들은 ‘진정한‘ 놀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공부같은 놀이‘를 강요한다. 놀이같은 공부는 있을 수 있지만, 공부같은 놀이는 있을 수없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분석하기 위해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취미생활을 계속 하다보니 더 배우고싶고, 잘하고싶은 욕심이 생겨서 공부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목적으로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다보니 궁금한 것이 생겨서, 더 잘하고싶어서 공부를 하는 것이다. 절대 그 반대는 있을 수 없다.

분명,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운다. 하지만 배움은 즐겁고, 자연스러운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어른들이 계획하고 ‘주도하는‘ 대부분의 놀이는 자연스럽지도, 즐겁지도 않다. 그건 놀이라고 부를 수 없다. 부모와 교사는 아이들과의 놀이에 주도자가 아닌 참여자, 보조자로 참여해야한다. 이것저것 참견하고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놀이의 주도는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맡기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만든 놀이에 몸만 들어가면된다. 아이들은 상상력은 정말이지 상상이상으로 무궁무진하다. 그들의 세계에선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있다. 그렇기에 성인의 불필요한 개입은 놀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 혼자서 놀게 내버려 두라고 배우지않는다. 시간을 내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야 한다고 배운다. 어른들이 유아의 놀이에 참여해야하는 사회문화적, 뇌과학적 이유는 정말 많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인이 유아의 놀이 참여해야하는 이유와 방식, 역할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인은 유아보다 더 오래시간 세상을 살았고, 거의 모든 어른이 유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있다. 즉, 성인은 유아들의 놀이를 확장시켜줄 수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놀이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부분을 ‘슬쩍‘ 흘린다. 예를들어 유아가 동물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면, 부모(혹은  교사)는 사육사가 되어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럼 유아는 묻는다. ˝사육사가 뭐하는 건데?˝ 아이가 사육사가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질문을 할 때‘만‘ 놀이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 선에서 ‘아주 간략하게‘ 답하면 된다. 아마 그 유아의 사전에는 사육사라는 단어가 추가되어 다음 놀이부터는 사육사 역할이 반복해서 나타날 것이다. 이게 놀이 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공부다. 중요한 점은 절대 길게, 자세하게 설명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우리도 잘 알고있듯이,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해진다. 유아들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유아들은 성인보다 인내심이 훨씬 짧다. 설명이 길어지면 지루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놀이를 방해받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알고있다는 자만에 빠진 어른들은 이런 실수를 반복적으로 저지른다. 성인은 유아가 호기심을 가질 수있도록 무심하게 툭 던지기만 하면된다. 그것을 줍든, 안 줍든 그건 온전히 유아의 마음이다. 유아가 던져진 무엇인가를 주워와서, 이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짧게 설명해주는 것으로 어른들의 역할은 끝난다.

그런 의미에서 유아들에게 놀이시간 만큼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풍부한 놀이환경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놀잇감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의 놀이를 많이 접해볼 수록 좋다. 이런 다양한 놀이는 유아의 다양한 영역의 발달을 돕는다. 아빠의 놀이가 중요한 것 역시 이러한 이유에서다. 엄마의 놀이는 대부분 정적이다. 앉아서 블럭놀이나 인형놀이를 하거나, 같이 놀이터에 나가더라도 그네를 밀어주거나 미끄럼틀 밑에서 내려오는 아이를 받아주는 것이 아마 대부분의 엄마들의 놀이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빠들은 좀 더 활발한 놀이를 선호한다.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대는 전쟁놀이, 온 몸으로 공격하고 방어하는 레슬링 등 신체를 역동적으로 사용하는 놀이를 많이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마 놀이냐, 아빠 놀이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다양한 방식의 놀이를 경험해보았냐는 것이다. 정적인 놀이와 동적인 놀이가 서로 뇌의 다른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논문에서 밝혀져있다. 그만큼 다양한 방식의 놀이는 유아에게 중요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놀잇감을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정형화되지 않은‘ 놀잇감을 제공해야한다고 많은 학자들이 말한다. 최근 숲교육이 떠오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물은 정형화되지 않은 놀잇감이기 때문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놀잇감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쉽게 놀이가 확장될 수 있도록 돕는다. 물론 이렇듯 몇 개의 정형화되지 않은 놀잇감도 중요하지만, 유아들이 풍부한 놀잇감을 접할 수 있는 환경 역시 그 장점이 존재한다. 아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놀잇감을 가지고 놀면서 다양한 영역을 자연스럽게 접해본다.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에게 많은 놀이의 기회를 제공해주기위해 짧게는 매 주, 길게는 매 달 놀잇감을 새롭게 바꿔준다. 유치원은 유아들이 최대한 많은 놀잇감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노력하고있다. 즉, 부모와 교사는 놀이에 직접 참여하는 것과 더불어, 유아들이 많은 놀이를 경험해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장난감만 많이사주고 같이 놀지않는 엄마와 아빠, 혹은 환경구성 만을 해주고 하루종일 업무만 보는 교사는 바람직한 성인이 아니다. 무엇보다 놀이의 목적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성인이 아이들의 놀이에 참여해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에게 더 큰 즐거움을 주기위해서다. 혼자서 노는 것보다 여럿이 노는 것이 더 즐겁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혼자선 할 수 없는 놀이를 마음껏 할 수있다. 그 놀이의 대상이 성인, 특히 부모와 교사가 되어야하는 이유는 그들은 아이들의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유아들이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놀이를 하기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놀이에 빠져들어 놀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성인은 유아들의 놀이를 즐겁게 만들어주기 어렵다. 우리는 유아들의 삶을 더욱 더 즐겁게 만들어주기 위해, 함께 노는 것이다.

놀이는 아이들의 일상, 곧 삶이다. 아이들의 놀이는 놀이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한다. 어른들이 자신의 놀이(취미활동)를 존중받고 싶어하는 만큼, 유아들도 자신의 놀이를 존중받고 싶어한다. 어른들은 유아들의 놀이에 억지로 간섭해서 교육적인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기보다는 재미있는 놀이로 남겨줄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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