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가해자 엄마가 되었습니다 - 학교폭력의 터널을 지나온 엄마의 조심스런 고백
정승훈 지음 / 길벗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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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자랑과 그들에 대한 선망. 자녀 양육서적 시장을 이끄는 큰 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라는 데로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알고 싶고, 그걸 알려주는 책. 알고 싶은 것은 그런 것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 책이 귀하다.특별하다. 사람들이 학교 폭력 가해자 엄마의 이야기를 궁금해할지가 궁금하다. 몰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모르면 안되는 학교폭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학교 폭력은 매우 극단적인 경우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겨지겠지만,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의 상당 부분이 학교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누구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학생의 경우 sns를 통한 사이버 언어폭력이 심각하다고 한다. 남학생들의 경우 늦은 시간까지 몰려다니면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

저자는 아들이 중3때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면서 겪었던 일들. 학폭위, 형사조정위원회 합의 불발, 소년 재판에 가기까지 과정. 그리고 도움받았던 학폭 관련 상담 단체, 무료 법률 상담 단체를 소개한다. 우리가 잘 몰랐던 형법 체계와 소년 분류 심사원도 알 수 있다.

신고를 너무 당연하고 쉽게 생각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혹시라도 한 아이의 인생에 큰 걸림돌이 될까 우려해 가해학생을 신고하지 않은 피해 학생의 어머니를 보며 어느 게 정답일까 싶었습니다.

p.204

신고하면 그때부터 어떤 일이 펼쳐질지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다. 경황이 없기도 하지만 정보가 불충분해서 그렇기도 하다. 가령 2명 이상이 폭행에 가담한 경우는 합의를 하더라도 불기소처분 되지 않고 재판으로 넘어간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경찰이 교실로 들어왔을 때 그 맥락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다. 누가 신고했느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기도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혼재되어 있는 상황이 많다고 한다. 4년간 학교폭력 자치워원으로 활동하신 분은 4년간 같은 사건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하신다. 그만큼 어렵다는 거다. 담당 교사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 공부해야 한다. 준비 없이 닥치면 피해자, 가해자 부모 모두 죄책감과 수치심에 제대로 대처하기 힘들다.



'모든 치유 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라고 한 카를 융의 말처럼.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딛고 학교폭력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 기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소년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위기의 청소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가정이 그들에게 적절한 보호를 해 주지 못해서 소년분류심사원으로 보내지는 아이들. 그런 청소년과 함께 하는 저자의 실천은 감동을 주었다.



모른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의 범인 중 한 명 딜런 클리 보드의 엄마 수 클레볼드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몇 년 전에 읽었다. 저자 수 클레볼드는 아들이 우울한지도, 사건을 계획하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자신이 왜 몰랐는지, 무엇을 놓쳤기에 이런 끔찍한 일이 생겨났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자식에 대해 모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 부모로서 역할을 잘 못했다는 죄책감, 본인이 그만큼 무기력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은 자식에대한 무관심함과 부모로서 무능함을 드러내는게 아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어 준다. 모름은 우리가 배우고 준비해야 할 이유이다. 어떤 경우가 학교 폭력으로 문제 될 수 있는지, 내 아이가 학교폭력에 가해자든 피해자든 연루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공부해야 한다. 저자가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경험한 일을 우리는 쉽게 책으로 읽을 수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마지막으로 책 일부를 인용한다. 관계 맺기의 어려움은 어른에게도 해당한다. 아이들은 더욱 미숙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잘 배워갈 수 있도록 가정과 학교, 사회의 섬세한 관심이 필요하다.

사람과의 관계가 항상 좋을 수만은 없습니다. 갈등 상황은 누구에게나 생깁니다. 갈등을 해결하면 관계도 회복된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는 건 당연합니다. 이것은 어른인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아이와 다른 아이의 관계, 교사와 부모와의 관계, 부모들과의 관계까지 처음이기에 서툴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아이를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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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2020-05-22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감사해요. 제가 전하고 싶었던 것들을 잘 알아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