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평전 - 현대 중국의 건설자
에즈라 보걸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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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나라를 세웠고, 덩샤오핑은 인민을 잘 살게했다. 사회가 거대해지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지금 세상에, 점점 복잡해지는 거대조직을 프로답게 경영하는 일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즉, 건국보다 치세가, 창업자보다 CEO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이다. 더군다나 근현대사의 가장 큰 조직인 국가에 대한 경영이라면, 그것도 인구 10억이 넘는 국가인 중국이라면. 이런 관점에서 책을 읽어 보았다.


책을 읽고난 후 생각해 본 건, 덩샤오핑은 어떻게 이런 지난하고 복잡한 일들을 풀어나갔을까?

우선, 그는 마오쩌둥 시대부터 오랜기간 훈련된, 이른바 준비되고 노련한 지도자이다. 신화에서처럼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알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가 참석하는 최고위급 회의에 동석하면서 덩샤오핑은 자기 세대의 가장 위대한 두 지도자가 국가 대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운 조직 건설의 참여자로서 덩샤오핑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이해하고 근본적 변화의 거대한 틀을 숙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p83)]

말콤 글래드웰이 그의 책 [아웃라이어]에 쓴 1만시간의 법칙이 떠오른다.


그리고 일을 할 줄 아는 덩샤오핑은, 큰 방향이 맞다면 실제 일을 해가며, 그리고 때론 실수도 하며 앞으로 나가는 방법을 선호한다. 이것이 이론만을 논의하며 시간을 허송세월로 버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일이니만큼 실행 중에 부작용은 있겠지만, 지금 행동하지 않을 경우 중국 인민은 너무 가난에 힘들어하고 배고프기 때문이다.

[착오를 범해도 됩니다. 용감하게 당의 원칙을 견지하고, 타도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과감하게 책임을 맡고, 과감하게 투쟁할 수 있는 자를 찾아 지도부에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p174)]

이러한 그의 생각은 "실천은 진리를 점검하는 유일한 표준이다"라는 실천표준으로 정립된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받은 유능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배운 자, 이른 바 지식인은 더 이상 유산계급으로 배척받지 말아야 하고 사회에 필요하다면 요직에 등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덩샤오핑은 효과적인 국가정부를 조직하는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법률이나 규칙을 바꾸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정부처에 지도자를 배치하고 그들에게 실권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155)]

[1949년 이전에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은.....재력을 갖춘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에 자산계급 또는 지주계급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덩샤오핑은 구(舊)계급은 이미 사라졌기 때문에 출신을 불문하고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p476)]


신(神)의 권위를 중심으로 성립된 중세에서 근현대로의 이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과학일 것이다. 과학과 기술을 받아들인 서양이 어떻게 최근 수백년 사이에 동양에 앞선 경제체제를 구축했는지는 익히 알려져있다. 덩샤오핑은 젊은 인력의 교육, 특히 과학과 기술에 대한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그의 과거 프랑스 체류 등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과학 부문의 진흥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과제임을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잊지 않고 있었다. 주자의 성리학이나 교회 신학, 불교 경전을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실제적 세계관이 배고픈 인민을 구제하는데는 먼저라는 것이다.

[덩샤오핑은 진짜 우수한 소수 과학자들의 경우 성격이 아무리 괴팍해도 그들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덩샤오핑은 1950년대 소련에 있을 때 소련의 원자폭탄 기초 작업이 세 명의 30,40대 젊은이에 의해 완성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덩샤오핑은 당시 과학 회의에서처럼 흥분한 적이 드물었다 (p198,199)]

[덩샤오핑은 또한 자진해서 과학과 기술 그리고 교육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무엇보다 4개 현대화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과학이며, 그것이 다른 3개(산업, 농업 그리고 국방) 현대화를 추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p280)]


내적으로는 문화대혁명의 악몽이, 외적으로는 서구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중국인들에게 과거 청산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덩샤오핑은 과거에 대한 잘잘못을 심판하며 머물기에는, 그가 풀어야 할 과제가 시급했고 개방에도 실용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해서 그는 어느 정도까지 경제가 개선될 때까지는 우선 앞을 보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자고 한다.

[덩샤오핑은 과거 25년 동안 정치 운동에 되풀이되었던 보복의 악순환을 끊고자 애썼다. 그는 운동의 목적은 낡은 원한을 갚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의 장을 준비하기 위한 정리정돈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p155)]

[(일본 천왕에게) 과거의 일은 지나가게 놔두고 우리는 적극적으로 미래를 보면서 여러 방면에서 우리 두 나라의 평화와 우호 관계를 건립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p409)]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인간이었던 덩샤오핑은 전문적인 국가 경영을 통하여 인민들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한 뒤 그냥 한명의 중국인으로서 세상을 떠났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이 도취했던 개인숭배를 참을 수 없었다. 공공건물에 조상(彫像)을 만들지 않았으며 (p505)....덩샤오핑의 유언에 따라 각막은 안과 연구용으로, 장기는 의학 연구용으로 기증되었다. 시신은 화장되었고....1997년 3월 2일, 그의 유골은 바다에 뿌려졌다. (p894)]

하지만 그의 책을 읽는 지금의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 그는 그냥 한명의 중국인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은 신이 아니기에 자신의 인생에 잘못과 업적이 혼재한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절 대약진운동에 참여했고, 1988년 전면적 가격자율화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켰으며, 1989년 톈안먼 시위를 유혈진압하였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따로 평가받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로 그의 업적을 가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백선엽 장군이나 김원봉 열사의 사례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것은 번역이었다. 이 책의 번역가들은 영어원문을 번역하고 나중에 나온 중국어판을 참고하였다고 하였으나, 중국어에 능통한 번역가들이 중국어를 원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번역이 매끄럽지 못했다. 미국 국무부를 국무원으로 쓰거나, 외국 지도자를 영도자로 쓰고, 고위 장성(장교) 대신 고위 장령으로 쓰는 등등. 그리고 보통화 대신 북경어, 홍콩의 월어 대신 광둥어라고 썼으면 더 읽기 편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읽은 책이 1쇄가 아닌 3쇄인데도 아직 오자 등이 꽤 많이 발견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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