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 믿을 건 9급 공무원뿐인 헬조선의 슬픈 자화상
오찬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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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시골 마을을 여행하다가 마을 어귀에 붙은 플랭카드를 본 적이 있었다.

"000씨 셋째 아들 00시 지방직 9급 공무원 합격!"

그땐 '아니 저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플랭카드까지 붙여놨나' 싶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사례들과 노량진 풍경을 읽어보니, 과연 플랭카드를 붙일 만한 일이었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54대 1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은 자제이니, 경사가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책에서는 9급 공무원 시험 열풍이라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을 분석하고 42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모은 자료를 토대로 한국의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명문대 학생부터 지방대 학생, 중소기업 노동자, 은퇴한 중년, 주부,

심지어 고등학생까지(이들은 공딩족이라고까지 불린다) 매년 몇십 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1년에 1만 명도 채 뽑지 않는 공무원 시험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 수험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노량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립된 섬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속세와 떨어진,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공간이자 공시생들을 대변하는 장소가 되었다.

 

왜 어른들은 '공무원'을 권하고, 아이들은 '공무원'밖엔 답이 없다고 하는 걸까.

언제부터 한국사회에서는 '억울하면 공무원이나 하라'는 말이 진리가 된 것일까.

그 많은 꿈 많던 아이들이 자신의 꿈도 모른 채 안정적인 직업(=공무원)을 갖는 것만이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라고 굳게 믿게 된 것일까.

 

아마도,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일상이 되어버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미래 또한 그럴 것임을 예감하며 일찌감치 꿈을 접고 생존을 위해

각자의 전략대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게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에 이어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읽다보면, 지금 한국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미래의 아이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줘야 할지가 선연하게 보인다.

진짜 잔혹할 만큼 우울한 이야기를,

이렇게 사회학적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저자 또한 흔치 않을 것이다.(ㅜㅜ)

 

곪을 대로 곪아터져서 이젠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쳐야할지도 막막한 한국이지만, 

어쨌든 그럼에도 우리는 한국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무원'만이 희망이 된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공교롭게도 대통령 때문에 시국이 어지러운 상황에,

이 책까지 보고 나면 과연 이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싶지만...

비상식적인 일들이 상식이 되고, 모든 기준이 '경제 발전'에만 혈안이 된 한국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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