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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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소설의 시작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당연히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자,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마는 책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행복, 정열, 도취와 같은 말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을유문화사, 2021, p59



한 여인이 음독자살했다. 시골 의사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인 에마 보바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따분한 시골생활이 지겨웠던 그녀는 샤를 보바리와의 결혼이 삶의 돌파구가 되어줄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결혼은 그녀가 꿈꿔온 낭만적 사랑의 감정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실의와 권태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부부는 후작의 초대로 저택을 방문하고 귀족들의 화려한 삶을 엿보게 된다. 에마는 더욱더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 있을 더 화려한 삶을 꿈꾸게 된다. 그러다 로돌프라는 남자의 계산된 유혹에 넘어가 선을 넘고 만다. 현실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그녀는 로돌프가 자신을 데리고 도망가 줄 것으로 믿었다. 그 약속을 실행하기로 한 날 밤, 그녀와 단지 즐기려 했을 뿐 아이 딸린 유부녀를 책임질 마음은 없었던 그에게 가차 없이 버림받는다. 상실감과 절망감에 병을 앓고 난 에마는 수년 전에 알고 지내던 레옹이라는 젊은이를 도시 루앙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도시 생활을 맛본 레옹은 더 이상 순진한 옛 청년이 아니었고,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을 뿌리치려 애쓰는 애마를 달리는 마차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의 행보는 점점 더 과감해지고 레옹과의 화려한 밀회를 위한 소비는 그녀를 빚더미에 앉게 만든다. 결국 빚 독촉이라는 현실에 내몰려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는 다분히 통속적인 소설이다. 1857년 플로베르는 이 소설의 일부가 풍속을 문란케 한다는 이유로 기소당했는데, 얼마 뒤 무죄판결을 받게 되고 소송 덕분에 오히려 유명세를 얻게 된다. 작고 사소한 물건에서부터 풍경에 이르기까지 도가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세세하고 장황하게 묘사하는 이 작품에서 사실상 간음 장면이나 음란한 장면 묘사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 다른 사물이나 풍경으로 치환되어 환유적이고 암시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작가는 에마의 간통 사건에 대해서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데,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한 권의 책”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플로베르는 이 점에서 성공을 거두었으나, 이 작품이 현대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은 단순히 형식이나 문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마담 보바리>의 시대적인 배경과 인물들 간의 갈등을 살펴보면 인물들이 가지는 고뇌의 성격 또한 현대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대상의 사실적 반영



이 소설이 쓰이던 19세기에 이르면, 과학의 발달에 따른 합리적 세계관이 과거 종교적 세계관을 거의 대체하게 된다. 구시대 질서가 와해되고 자본주의적 질서가 새롭게 형성되어가며 귀족과 성직자 계층을 대신하여 부르주아 계층이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다. 소설의 등장인물 중 약사 오메와 마을 신부의 대립은 이 같은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한다. 작가는 하나의 가치관에 매몰된 두 사람 모두를 어리석게 묘사하는데 신부는 어리석은 구시대의 표상으로, 오메는 똑똑하지만 자신의 이해관계와 실리에만 몰두하는 비열한 과학자이자 양심 없는 언론을 대변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오메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인물로 나타나는 사채업자 뢰뢰는 끊임없이 호화스러운 물건을 보여주며 에마의 사치 욕구를 들쑤시고 어음을 돌려 막도록 부추김으로써 그가 그녀에게서 받을 빚을 눈더미처럼 불려놓는다. 그의 술책에 속아 넘어간 에마는 결국 법원을 통해 압류 통지를 받고 돈의 압박에 의해 파멸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다다르면 그녀는 사방팔방 돈을 구하러 다니지만 그녀를 탐했던 애인들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소설은 오메가 그토록 염원하던 훈장을 받고 뢰뢰가 승승장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자본주의가 부상하게 될 현실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종교적 가치관의 쇠퇴로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던 신에의 귀속감이 사라지면서 인간은 삶의 좌표를 잃어버리는 위기에 처한다. 신을 위한 쓰임이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면 인간의 삶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삶은 공허해지고, 사람들은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묻기 시작한다. 진정한 삶이란 인생을 대단히 의미 있는 방식으로 경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은 이러한 배경 하에 싹텄으며, 이성을 맹신하는 계몽주의 풍토에 대한 반발로 감정과 주관, 상상력을 중시하는 경향을 띈다. <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프랑크 마르텔라 저/황성원 역, 어크로스, 2021)에서 저자는 “낭만주의는 할리우드 영화와 숱한 팝송이 담고 있는 생각, 즉 사랑은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이어야 한다는 생각의 진원지였다”고 말한다. 에마는 이러한 낭만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낭만적인 사랑에 기대는 방식으로 내면의 공허함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녀는 도시의 수도원에서 세련된 교육을 받았지만 저급한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은 까닭에 소설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크게 느끼고 자신의 현실보다 나은 삶을 꿈꾼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할 수 없게 만드는 낭만주의의 속성은 사랑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걸게 만들고, 존재하지 않는 삶을 열망하게 만들며, 격정적인 쾌락으로 흐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자화상



플로베르는 낭만주의가 시대를 풍미하던 시절에 유년을 보냈다. 그는 <마담 보바리> 집필 이전에 ‘낭만적’이고 서정성이 배어 있는 소설을 써서 비평가 친구에게 보였다가 매섭게 혹평을 받은 일이 있다. 이후 플로베르는 실제 있었던 의사 아내의 불륜 사건을 소설화 하면서, 자신 안에 내재된 낭만주의를 극복해 보이고자 했다. 서정적이거나 낭만적이지 않은 문체를 고민하며 단어 하나하나 뉘앙스를 고려해 선택했고 시적 리듬을 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끝에 시적인 문체와 플로베르만의 독창적인 구성방식을 완성했다. 묘사하는 것을 극도로 즐겼던 그는 모자나 신발에서부터 마차나 풍경에 이르기까지 너무나도 세부적이고 사실적이며 장황한 묘사로 때때로 지루함마저 안겨준다. 플로베르는 4년 반 동안이나 오로지 이 작품만을 고쳐 썼다고 한다. 번역된 문장을 통해서는 그 뉘앙스와 문체의 특성을 다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사물들에 대한 지극한 묘사를 통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고심 속에 문장을 가다듬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마차가 등장하는 영화 같은 장면 묘사와 공진회의 연설과 밀담이 교차하며 공명하는 심포니 같은 장면 구성은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시와 희곡만이 진정한 문학으로 대우받던 시대에 소설을 당당히 문학의 한 장르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로써 <마담 보바리>는 현대 소설의 시발점에서 매우 가치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자는 적어도 자유롭다. 여러 열정과 여러 나라를 두루 섭렵할 수 있고, 장애를 뚫고 나가 가장 멀리 있는 행복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당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법률의 구속과 함께 육체적인 나약함이라는 불리한 점을 갖고 있다. 여자의 의지는 끈으로 묶여 있는 모자의 베일과 같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데,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체면이 발목을 잡는다.

-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을유문화사, 2021, p141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 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이 인생의 결핍감, 그녀가 의지하는 것들이 순식간에 썩어 무너지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 모든 것이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권태의 하품을, 기쁨마다 불행을, 쾌락마다 혐오를 이면에 감추고 있고, 가장 황홀한 키스도 더 큰 관능에 대한 실현 불가능한 욕망만 입술에 남길 뿐이다.

-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을유문화사, 2021, p437




이전 시대의 작품들이 선과 악의 문제 같은 합리적인 질서와 보편의 문제를 다루었던 반면, <마담 보바리>는 개인의 파멸하는 삶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도 현대적이다. 화려한 삶과 낭만적 사랑을 꿈꾸던 19세기 여인에게 권태로운 삶에서의 돌파구는 오직 결혼밖에 없었는데, 그녀에게 열려있던 무한한 가능성은 결혼함으로써 모두 닫혀버린다. 그녀의 남편 샤를은 순박하고 가정적이며 지고지순한 남자이지만, 아내의 외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둔감한 사람이다. 아내의 권태와 절망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아내가 화가 난 순간에 화가 난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무감하다는 점에서 그는 옹호해주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남편의 몰이해는 아내에겐 절망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샤를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의학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고, 어머니가 짝지어준 과부와 결혼을 하는 등 자신의 삶을 결정짓는 선택에 있어서도 주체적이지 못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저 수용적이고 착하기만 한 샤를은 바보스럽고 어리석게만 보였다.




샤를과 대조적으로, 에마는 주어진 삶의 경계 밖으로 넘어서고자 행동하는 인물이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고 손가락질당할 것이 뻔한 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위험한 길을 선택한다. 가정이라는 속박과 사회적 제약에 갇혀있던 19세기 여성으로서,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따랐다는 측면에서 에마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마는 애인의 거짓 사랑과 너무도 뻔한 돈의 유혹이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해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결국 그녀가 맞닥뜨린 절망에서 벗어날 길은 죽음 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는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에겐 실패한 저항으로 읽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주어진 삶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에도 어딘가에 더 큰 행복과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으며 허황된 꿈을 꾸기도 한다. 인생에 더 높은 의미나 목표가 있다고 믿어 지금 내 인생에는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것은 현대인들도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그것이 결국 자신을 파멸케하는 길인 줄 모르고 뛰어드는 사람은 안타깝고 가여웠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비극적인 감정에 압도당하고 마는 에마에게서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강요당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겹쳐 보인다. 지금 나의 삶을 돌아보고 공허함의 자리를 쓸어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마담 보바리>가 여전히 고전의 자리에서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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