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온 넷플렉스 영화 <더 원더>의 원작인 동명 소설이 책으로 나온다기에 영화를 보기 전 책을 먼저 선택했다. 저자 엠마 도노휴는 우연히 알게 된 ‘금식 소녀’ 현상을 모티브로 『더 원더』를 저술했으며 저자의 전작 『룸』도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영화로 만들어졌었다.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기이기에 영화로 만들졌을지 궁금함과 기대감으로 책을 마주했다.
4개월간 음식을 먹지 않고 주님의 성수만 먹으며 살아있는 11살 소녀 애나 오도널. 하나님의 기적이라는 사람들의 경외와 반대로 모두를 속이는 사기라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 소녀가 정말 음식을 먹지 않는지 관찰자로 지명된 나이팅게일의 제자 리브는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파견된다. 금식으로 지금까지 버틴 것이 명백한 거짓임을 확신하고 이를 밝혀내려던 리브는 관찰자 이전에 간호사로 그리고 그 이전의 아이를 잃어본 엄마의 마음으로 소녀에게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2주간의 관찰 기간 동안 점점 쇠약해지며 죽음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 애나에게 무언가를 먹여야 한다는 간호사의 책임감이 강렬해진다. 그러기 위해선 리브는 애나가 지독히 매달리는 종교적 신념을 무너뜨려야 한다. 이 소녀가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왜 이토록 금식에 매달리는지, 왜 누구도 적극적으로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려고 하지 않는지에 대한 이유를 파헤쳐 나가며 리브는 이 금식의 행위 뒤에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다. 애나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을 내보이고 싶어 하는 종교적 맹신주의자들과 행여 이것이 사기로 밝혀져 가톨릭에 해가 되는지의 여부만 중요한 사람들 그리고 자식의 안위보다는 가족의 신념이 중요한 어른들은 하나 같이 위선적이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그리고 종교적인 신념과 광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른들에 휩싸인 이 어린 소녀를 살리기로 한 리브의 선택이 그려진다.
마지막 식사. 마치 사형수처럼. 그러니까 애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체를 먹고 입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어떤 왜곡된 교리가 애나를 몰아붙였을까? 애나는 이제 신성한 영양분을 받았으니 더 이상 속세의 음식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 걸까? 리브는 궁금했다. (p.258)
세상이 소용돌이쳐도 여러분의 의무를 다하세요. 리브의 스승은 그렇게 지시했다.
지금 애나에 대한 리브의 의무는 무엇일까? 저를 적의 손에서 구원하여주소서, 애나는 그렇게 기도했다. 리브는 애나의 구원자일까, 아니면 또 다른 적일까? 어떤 방해에도 멈추지 않을 거예요. 리브는 지난밤 번에게 큰소리쳤다. 하지만 구조를 거부하는 아이를 도대체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p.377)
책을 펼치는 시작부터 나름 이 기적의 진실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추론을 펼치는데 이런 내 추론이 하나둘 깨지며 작가가 감쳐둔 충격적 진실에 다가갈수록 과연 이야기의 결론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낳은 이 이야기는 이기적이고 모순된 인간의 신념과 행동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그 무엇이든 너무 빠져드는 순간 그것은 광기가 되어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져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진정한 사랑 또한 이성적인 판단 안에서 안정적일 수 있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책을 덮는 순간 작가의 스토리 텔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당장 영화로 다시 이 충격과 놀라움을 확인해 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