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 오베르쉬르우아즈 들판에서 만난 지상의 유배자 클래식 클라우드 30
유경희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기 전 딱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고 정신질환을 앓았으나 미술에 대한 열정만은 멈추지 않았고 죽은 뒤 서양미술사상 가장 찬란한 명성을 누린 빈센트 반 고흐. 누구보다 클래식 클라우드를 통해 반 고흐의 인생 여정을 함께 하기를 기다렸기에 이번 반 고흐의 출간은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1853330일 네덜란드 작은 마을 쥔데르트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그가 태어나기 정확히 1년 전에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는다. 하지만 이름만 같을 뿐 형의 대체아였기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늘 애정 결핍에 시달렸다. 화상 생활을 하다 목회자가 되려고 했으나 그는 결국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다. 파리에서 인상주의 영향을 받고 남프랑스 아를에서 화가 공동체를 꾸리고자 했다. 하지만 고갱과 갈등 끝에 자신의 귀를 자르며 정신 착란 증세가 더욱 뚜렷해지고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간다. 1년간의 요양원 생활 후 1890년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의문의 총상으로 숨을 거둔다.

 

빈센트가 어머니에게 거부당한 경험, 즉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의 인생에 결정적인 트라우마로 작용한다. 어머니 대신 테오가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해 주었지만, 그렇다고 빈센트의 내면에 자리한 모성결핍이 근원적으로 해소될 수는 없었다. (p.278)

 

반 고흐의 예술적 기질과 빠른 속도로 그림을 완성하는 것도 어머니의 영향이 컸음에도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고흐가 마지막 눈을 감는 순간까지 아들을 외면하고 사후에도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반 고흐는 어떤 존재였을까? 결국 아들에게 애정을 베풀지 않았던 어머니로 인해 그가 품었던 여성상과 소외된 자들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은 창녀들과 무모하리만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했다.

 

빈센트에게 '예술가'라는 의미는? 그것은 바로 '나는 탐구한다. 나는 분투한다. 나는 열중한다'는 뜻이다. 빈센트는 자신이 목표하는 바가 생기면 몰입의 강도가 막강한 존재였다. 호기심과 사명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가 들러붙으면 무슨 일이든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 (p.43)

 

누구보다 열정적이던 반 고흐가 만약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단순히 정신적인 문제만 안고 살아간 인물로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지 않았을까? 이렇게 그가 열정을 담아 예술 작품을 남겼기에 사후에라도 거장으로 칭송받을 수 있고 오히려 후세가 더 감사해야 할 인물인 것 같다.

 

반 고흐의 정신적인 문제, 그림에 대한 열정, 미술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애정, 가족관계 등을 클래식 클라우드를 통해 좀 더 깊이 있게 다각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 클래식 클라우드는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고 예술가의 삶을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는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좀 더 객관적으로 전달해 준다. 사람들이 왜 반 고흐의 삶과 작품에 열광하는지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었다.

 

빈센트가 사로잡힌 것은 초상화였다. 그는 '인간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다. 인간의 얼굴이야말로 내 안에 있는 최고의 것, 가장 진지한 것의 표출이다"라고 말했다. 평생을 모델을 찾는 데 열중했던 그에게 초상화란 유일하게 사람을 소유하는 경험을 해 주는 장르였다. (p.16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