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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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사회는 강자가 있으면 약자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약자에 대한 차별은 실생활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에 예술작품 속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의 작가 이유리가 이번엔 그림 속 권력 이야기를 담은 기울어진 미술관을 출간했다. 예술품과 권력은 깊은 관계가 있고 그런 권력에 가려진 약자들에 관한 이야기 중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올랭피아> 속엔 백인 창녀와 흑인 하인이 등장한다. 창녀가 정면을 응시하며 기존 누드화의 틀을 깨버린 이 작품은 프랑스 화단에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런 색다른 시도와 관련되어 이 작품이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흑인 하인이 이 그림에서의 역할을 살펴보자. 흑인 하인을 둔다는 것은 상류층 남성의 후원을 아낌없이 받는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굳이 이 그림에 등장시킨 것은 백인 여성의 미모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도구로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작가 에밀 졸라는 마네가 올랭피아에서 흑인 하녀를 그린 것은 '검은 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마네가 작품 속에 몇몇 오브제와 인물을 조합시켜 놓았다면, 그것은 마네의 철학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채와 대비를 이뤄내고 싶다는 그의 욕망이 표현된 것이다." 즉 별다른 역할 없는 흑인 하녀를 등장시킨 것은 두 인물의 피부색을 강하게 대비시켜 그림에 색채 감각을 더하려는 의도였다 는 것이다. (p.36~37)

 

후세페 테 리베라의 <내반족 소년> (1642, 캔버스에 유채)에는 발이 안쪽으로 휘는 내반족장애가 있고 낡은 옷을 입은 소년이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가난과 장애에도 삶을 긍정하는 인간에의 경의를 표현한 작품으로 소개되곤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부자들이 천국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의뢰받아 만들어진 그림이다. ‘신은 우리의 행동을 보고 있으며, 가난한 이에게 자선을 베풀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천국을 가기 위한 티켓을 사 모으듯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며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목적의식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다면 부자는 왜 굳이 목돈을 들여 <내반족 소년>을 주문했을까. 바로 난한 사람의 존재는 부자들에게 천국을 보장하는 '보험'이었기 때문이다. (p.174)

 

 

요즘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고 그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아 관심을 가지는 분야 중 하나가 이런 미술 관련 책이다. 그동안 유명한 작품들을 단순히 예술성과 작품성에만 초점을 맞춰 감상했던 것을 넘어 오늘날의 시각에 맞춰 비판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이젠 작품을 감상할 때 작품이 만들어지던 당시의 사회문화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깨우친 색다른 책이었다.

 

물론, 그 시대가 배태한 예술작품을 지금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그러나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기울어진 미술관읽기의 의 의가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작가의 말 중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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