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죽음 -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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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한 과정이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은 각자 다르다. 또한 과학 기술의 발전한 현재는 가족과의 의미 있는 시간을 나누기보다는 병원에서 온갖 기계에 의존한 삭막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다반사다. 젊은 시절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 나이가 들고 부모님의 고령을 지켜보며 죽음의 의미와 괜찮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신경외과 의사이자 섬세한 문필가로 인정받는 헨리 마시가 환자들을 진료하고 뇌를 수술하며 가까이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며 그에 대한 깨달음을 적은 참 괜찮은 죽음을 읽어보았다.

 

인간의 뇌에 생길 수 있는 병은 참으로 다양하다. 30년 가까이 다양한 수술을 집도한 저자가 전하는 수술 장면은 의학 드라마를 보는 듯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종양의 위치 및 크기에 따라 경과와 예후 또한 각양각색이다. 모든 수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고 예기치 못한 실수로 환자에게 평생에 남는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고 오히려 수술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경우도 경험한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흠이 될 수 있는 실수와 판단 착오조차 숨기지 않고 그때의 감정들을 이야기하며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진솔한 면을 보여준다. 또한 수술실 안에서 초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 당면하게 되는 당혹스러운 순간의 감정 중 화가 나면 도구를 던지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큰소리를 치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도 드러낸다. 결국 그도 모든 게 완벽한 인간이라기보다는 평범한 우리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암으로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누나와 함께 집에서 돌보며 지내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괜찮은 죽음이란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라 깨닫는다. 몇 차례 우크라이나에 방문해 열악한 의료환경의 환자들을 만나고 한 명의 목숨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 예후가 좋지 않은 소녀가 수술 한 번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안타까워 영국으로 데려와 수술하지만 심각한 뇌졸중으로 더 심각한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저자는 자신의 무모함을 후회하며 그 소녀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다. 물론 좋은 결과로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환자도 있었기에 뇌수술조차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좀 더 특별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일을 하며 음울하면서도 짜릿한 강렬함을 느꼈지만, 의대생일 때 가졌던 단순한 이타심은 금세 잃어버리고 말았다. 당시에 환자들에게 동정을 쉽게 느꼈던 이유는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한 책임이 없어서였다. 환자에 대한 책임과 함께 실패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하면 의사에게 있어 환자는 불안과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다. 물론 동시에 성공에 대한 자부심의 근원인 것도 맞는 말이다. (p.119)

 

"운이 좋으면 몇 개월을 더 벌 수도 있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 말했지만 충격을 누그러뜨리려고 몇 분 전에 그들에게 혹독하게 이야기한 것이 너무도 후회가 됐다.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이었다. 조그만 방을 나와 어두운 병원 복도를 걸어가며 다시 한 번. 인간은 어째서 삶에 그토록 간절히 매달리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훨씬 덜 고통스러울 텐데. 희망 없는 삶은 가뭇없이 힘든 법이지만 생애 끝에 서는 희망이 너무도 쉽게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들 수 있는데. (p.196)

 

환경적인 이유든 의식적인 이유든 외과 의사는 어느 순간 남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실수도 인정하기 어려워한다. 세상에는 오류를 위장하고 비난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온갖 방법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경력의 끝에 다가갈수록 나는 과거에 저지른 실수들을 고백해야 할 의무를 더 많이 느낀다. 내 전공의들은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p.218)

 

순간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면 내 삶을 돌아보며 한마디는 남기고 싶다. 그 한마디가 고운 말이 되었으면 하기에, 지금의 삶을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의식을 차렸다 잃었다 하는 동안 모국어 인 독일어로 이렇게 되뇌셨다.

"멋진 삶이었어. 우리는 할 일을 다했어. (p.275)

 

 

30년 가까이 외과 의사로 냉철하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환자를 대하며 경험하고 느낀 일들은 생명을 대하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환자의 삶의 질을 살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신의 실수에서 주춤하기도 하지만 그런 실패의 경험으로 무너지기보다는 더 나은 실력을 쌓는 의사가 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 프로페셔널한 자세가 최고의 외과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서류 앞에서 일하기보다 수술하는 것을 더 선호하는 천상 외과 의사인 헨리 마시의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지금 생생히 살아 숨 쉬는 현재의 이야기였다. 문학계의 대표적 정신과 의사가 올리버 색스라면 외과 의사를 대표하는 사람은 바로 헨리 마시가 아닐까? 분야가 다르지만, 환자를 애정으로 바라보는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이 두 사람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된다. 그저 이 책으로 의사와 환자가 만날 때 서로가 느끼는 인간적 어려움을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어쩌면 소박한 그의 바람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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