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흑역사 - 이토록 기묘하고 알수록 경이로운
마크 딩먼 지음, 이은정 옮김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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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학교 앞에서 간혹 신기한 책자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떨 때는 종이 한 장일 때도 있었고, 어떨 때는 제법 여러 장이 엮인 책자일 때도 있었다. 그 안에는 괴담을 포함한 온갖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나온 것처럼 어릴 때 들은 말은 힘이 세서, 그 중에 몇 가지는 어른이 되고 나서도 기억을 할 만큼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이번에 <뇌의 흑역사>를 읽으며 그 중 일부는 사실일지도 모르고,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아니라 그때는 몰랐을 뿐 뇌와 관련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아닌 건물과 결혼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 같은 건 어린 나이에도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책에서 비슷한 케이스의 실존 인물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런 케이스를 포함해서 이 책에는 뇌와 관련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케이스가 담겨있다. 다만, 모든 이야기가 실존 인물의 실제 이야기라는 점에서 신경뇌과학자인 저자는 모든 케이스를 단순히 흥미 위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누구에게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인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모든 일을 다 숙고하고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없이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자율 주행 같이 결정하는 부분이 있다니. 심지어 그 결정에 대해 뇌가 그럴듯한 설명을 제시한다는 예시들을 읽으며 내 짐작보다 뇌가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경 구성 요소 중 어느 부분이 고장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주 다양한 케이스를 소개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다만, 저자도 말했듯 실존 인물의 실제 케이스를 다루고 있어서 흥미진진이라는 표현에는 어폐가 좀 있겠다. 나는 12가지 챕터 중 강박, 인격 등에 특히 관심이 있었다.


어디서 봤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손가락이 잘린 사람이 느끼는 환지통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섬뜩했었는데, 책에서 환각지와 신체 도식에 대한 부분을 읽으며 그 이야기가 어떤 가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알면 알수록 뇌와 신체 기관 사이의 매커니즘은 정말 복잡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나도 심하지는 않지만 강박이 있어서 이 파트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내가 하는 게 강박사고에서 비롯된 강박 행동인지, 많이 심한 건 아닌지 걱정하며 읽었는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책의 뒷부분에서 이 점을 짚어줘서 마음이 편해졌다.


늘 궁금하게 생각했던 다중인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내가 가진 다양한 성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내면에 있는 모든 인격이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잘 통합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플라세보 효과는 굉장히 자주 접하는 말이라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지만 처음 알게된 사실도 있었다. 진짜 약을 먹고 느끼는 효능의 일부도 도움이 될 거라는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다는 내용을 읽고 신기했다. 


실인증은 사실 현실에서도 책이나 영화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현상이라 익숙한 개념이었지만, 그 실인증의 종류가 이렇게 방대한 줄은 몰랐다. 특히 신기했던 건 시간실인증이었다. 먼 과거와 가까운 과거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던 개리의 사연에 막막한 기분이 들었는데, 의외로 자연스럽게 괜찮아졌다는 결과를 읽으며 뇌는 정말 신비롭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필사는 앞부분에 소개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 강박을 다루고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가진 강박도 보통에서 과잉 사이 어딘가에 있을 뿐 그 정도와 빈도를 봤을 때 장애는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뇌든 신체든 영원히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기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내 뇌의 아주 일부분에 아주 작은 손상만 생겨도 어마어마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여러 케이스들을 읽으며 짐작해볼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뇌든 신체든 더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연구가 꽤 많이 진행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는 진행이 된 부분보다 건드려보지도 못한 부분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복잡하기도 하고,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새롭게 밝혀지는 것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듣도보도 못한 다양한 증후군이 있다는 것에도, 앞으로 더 늘어날 여지가 있다는 것에도 놀랐다. 책에 실린 이야기들 중에는 절망적이거나 너무 괴로운 것들도 많아서 앞으로도 연구가 더 활발하게 진행돼서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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