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적 환경주의자 - 이 세상의 실제 상황을 직시하다
비외론 롬보르 지음, 김승욱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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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4년, 더 이상 사람들은 청명한 하늘을 볼 수 없다. 날씨 변화도 없고 눈이나 비도 없다. 20년 전 파괴된 오존층을 대신해 방어막을 설치한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방어막 회사에서 해고된 한 사람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완전히 파괴된 줄 알았던 오존층이 치유되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방어망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방어막을 설치한 회사의 이권 때문이었다. 영화 '하이랜더2'의 내용이다.

환경이 점점 더 파괴되어 가고 있고 지구의 병듦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는 상황에서, 사실은 환경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음을 넘어 괘씸하게까지 느껴질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주장을 담고 있는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과 분노를 표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환경운동가들까지 단순히 그의 글을 부분적으로 반박하는 정도로 그치고, 롬보르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담론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점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책에 쓰여진 내용은 여태껏 우리가 익히 들어왔고 또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을 전면으로 뒤집는 것이기에 꽤나 당혹스럽다. 그래서 책을 죽 읽어나가다 보면 지은이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통계를 이용해 나를 속이고 있을지 모른다는 경계심을 지우기 힘들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가 인용한 자료와 그의 해석방법이 타당한지를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가 판정하기는 힘들 듯 싶다. 다만 그 중 몇 가지는 사실여부를 떠나 환경논의를 바라보는 시선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 중 첫째는 환경단체들이나 언론에 의해 환경논의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롬보르는 왜 이토록 나쁜 소식뿐인가, 라고 독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정말로 신문이나 TV에서 환경파괴로 인해 인간의 삶 또한 황폐해져 가고 있다는 뉴스를 하루라도 접하지 않을 때가 드물다. 롬보르는 그것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환경단체와 부정적 소식을 이슈화하기 좋아하는 언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산성비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비를 맞고 돌아다니는 낭만이 무모함으로 인식된 것은 오래 전부터다. 산성비를 맞으면 머리가 빠진다, 건물이 부식된다, 삼림이 파괴된다, 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과학적 증거가 없는 것이거나 혹은 사실에 비해 증폭된 것이라 말한다. 현대의 수많은 '상식'이 사실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 '신화'임을 생각할 때, 맹신하기 쉬운 언론보도의 권위나 환경단체의 순수성을 의심해 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또 환경운동에 있어 우리의 무지나 경솔함으로 인해 오히려 일을 그르치거나 막대한 돈을 낭비하는 일도 있다. 1989년 알래스카 바다에 26만 배럴의 기름을 흘려버린 엑손 발데즈 호 사건은 자연에 대해 인간이 아는 것은 아직 얼마 되지 않으며 그것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엄청난 양의 기름을 빨리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은 수압을 이용한 씻어내기 방법을 택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죽임을 당했고, 그 결과 차라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보다 회복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판명났다. 또한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오염정도가 심하지 않았으며 바다의 정화속도도 빨랐다는 사실이다. 드넓은 바다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강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내 개인적으로는 비외른 롬보르가 결코 반환경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불행히도 그런 논의에 악용될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 같다. 환경이 좋아졌으니 이제는 환경을 보존하고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거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결코 옳지 않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현재 지구환경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그에 따라 적절하고 유효한 대책을 세워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일,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이며 이 책의 존재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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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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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작품 중에 『우연의 음악』이란 것도 있지만, 이 작가는 정말로 '우연'을 작품 속에 녹여내는 데 범상치 않은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이 작품 『달의 궁전』에서 주인공 포그가 키티 우를 만나는 것도, 그리고 에핑의 비서가 되는 것도, 또 알고 보니 에핑이 포그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모두 '우연'의 징검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 하나만 없었더라도 다음에 놓인 돌로 옮겨갈 수 없었을 터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아슬아슬한 다리를 아무렇지 않게 훌쩍훌쩍 뛰어넘는다. 우연을 예정이나 인연으로 포장하는 장치를 과감히 배제한 채 말이다. (사실 그런 장치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작품 초반 외삼촌의 이상한 행동이나 어머니의 출신지, 아버지에 대한 서술 등을 보면 후반부의 내용과 톱니바퀴 물리듯 맞아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자칫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크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원망과 거부의 심정을 이보다 더 처절하게 표현한 말이 있을까.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싫었어'라는 마지막 말이다. '싫어'가 아니다. 과거형이다.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던 과거의 내가 어느덧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버린 후 그때를 회고하는 말이다. 그럼 지금의 나는 어떨까. 어릴 적 내가 그토록 거부했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을까. 그렇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좋든 싫든 내게는 아버지의 흔적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이 내가 내디디는 발걸음을 알게 모르게 조종한다. 어느 순간 돌이켜 보니 내가 지나온 발자국이 옛날에 보았던 아버지의 것과 너무도 닮아 있다.

세대간의 갈등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섣불리 부정하거나 느슨한 바늘로 봉합하려 할 때도 갈등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일 텐데 어떡하면 내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내가 살지 않은 시간을 살아왔고, 나와 함께 살아 온 동시대조차 나와는 다른 입장에서 사고해 온 사람이다. 항상 아들의 입장에서만 살아 온 내가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내가 자식을 낳기 전까지는 불가능한 걸까.

작가는 이 회의적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즉 내 미래를 담고 있을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 발견할 수 없다면 지금의 나를 담고 있었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과거를 보는 것이다. 포그는 에핑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모른 채 그의 얘기를 듣는다. 그러나 인적이 없는 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극한의 상황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던 에핑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포그 자신의 체험이다. 포그는 유일한 혈육인 삼촌이 갑작스레 죽은 뒤 그동안 상자 속에 넣어 두었던 삼촌의 책들을 꺼내 읽어나간다. 이렇게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아 그 돈으로 연명하던 포그는 결국 그로 인한 죄책감과 상실감을 못 이겨 자포자기하기에 이른다. 산 속 동굴에 은닉했던 에핑과 거지의 삶을 택한 포그는 닮은꼴이다. 또한 그것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낸 후 안정된 정착 대신 이곳저곳으로의 방랑생활을 택한 바버의 삶의 다른 버전이다.

우연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맺으려 한다. 글의 서두에 나는 이 소설이 우연적 요소를 과감히 나열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해 보자. 우연인 것은 세 부자의 만남인가, 아니면 그들의 모습인가. 그들이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만 본다면 그것은 분명 극적인 우연이다. 그러나 책을 덮으며 그들 셋을 나란히 떠올리면 그들은 누가 뭐래도 부자일 수밖에 없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선택을 하여 비슷한 결과를 얻었던 세 사람의 인생이 과연 우연일까. 그리고 그들이 서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을 전적으로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작가가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만남을 필연으로 만들 어떠한 장치가 필요 없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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