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반만이라도
이선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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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기다리던 이선진 작가의 첫 소설집, 밤의 반만이라도를 읽어보았다. 사실 작년 즈음 부나, 를 읽고 얼른 소설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부나, 를 읽으며 작가에게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치밀하고 견고한 소설을 간만에 접해서일지도 몰랐다.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개의 단편을 읽으며 부나, 를 접했을 때의 감각이 그저 낙관적인 시선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2015년 즈음부터 퀴어 소설과 페미니즘 소설이 우후죽순 발표되며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너무 과밀했던 탓에 문제 의식이 보다 흐려지고 하나의 담론으로만 인식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금세 불탔다가 사라지는 느낌. 고유의 자리로 자리잡기까지 조금은 성급했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간혹 몇몇 작품의 경우 주제의식이 너무나도 국한되어 있다는 점인데, 한동안 퀴어 소설이 보여준 방향성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선진 작가의 첫 소설집을 남몰래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선진 작가의 소설 속 드러나는 초점 화자와 인물들을 두고 우리는 어렵지 않게 동성을 사랑하는 시선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동성애로부터 기인하는 차별이나 고통에서, 보다 폭넓은 주제의식을 다층적으로 펼쳐내고 있다.

소설 속 화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사랑을 숨기거나, 충동적으로 밝히길 두려워한다. 나아가 그러한 감정을 혐오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혐오는 혐오 이전에 세상에 내비칠 자신을 향한 불안이자, 세상을 향한 불신이다. 이러한 불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밤의 반만이라도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세상이 불신스러운 수많은 이유. 우리가 이 시대에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자유마저 빼앗긴 이유를 작가는 분명하게 직면하도록 만든다. 사실, 이쯤 되면 소설의 카테고리를 뭐라 설정해야 할지 갈피를 잃게 된다. 단순히 퀴어 소설이라기엔, 담아내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아무튼, 또 하나 이 소설집에서 눈에 들어왔던 사유는 선택에 관한 문제였다. 소설 속 초점 화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살면서 정한 수많은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머뭇거린다. 하고 싶지 않았던 것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하고 싶었던 것과 하면 안 되었던 것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고 자신의 삶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이 구도는 시대의 청년들이 상징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작가가 단순히 세계의 암울한 순간만을 직면시키기 않는다는 점이 이 소설집의 큰 매력 포인트이다. 이상하다. 쉽게 말하면 뭐 하나 좋을 게 없는 에피소드들이 모여 따스한 결말을, 따스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게, 진짜 이상하다. 나는 이게 작가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세상을 명징히 직면하게 하면서도 그러한 세상을 사랑할 이유를 소설의 끝에는 기어코 만들어내는 작가의 따스함. 밤의 반만이라도는 안 좋아할 이유가 없는 소설이다...

 

, 여담으로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한 이유는 물론 글을 잘 써서도 있지만 우선적으로 짜임새를 만들어내면서도 한 문장 한 문장 허투루 쓴다면 나올 수 없는 단단한 플롯이 눈에 들어와서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진심이 너무 잘 보여서. 있는 힘껏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여실히 주는 작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 부나, 의 경우 블로그에 더 상세히 쓴 페이퍼가 있으니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

 

📌저자 소개

199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20자음과모음신인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최근작 : <밤의 반만이라도>,<전세 인생>,<여덟 개의 빛>

 

📌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 자음과모음

 

위 도서는 자음과모음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무상 제공과는 관계없이 진솔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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