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간단한
최예지 지음 / 프로젝트A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길에서는 오늘 뭐하지가 통하지 않았다. 지금 내딛고 있는 발걸음 하나에 모든 게 달려 있었다. 돌 하나라도 잘못 밟으면 오늘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게 된다.


28-31
˝인생이 원래 그래. 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내가 보이잖아. 나도 네가 이렇게 선명히 보이는 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분명 보이는게 있었다. 그동안 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만 집착하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왔을까. 문득 세상 사람들이 ˝이렇더라.˝ 한 것들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나만이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지나쳐왔을까.


34
길 위에서 모든 아픔은 온전히 내 몫이다. 내게는 투정부릴 누군가가 없다. 아파도 내 몫, 울어도 내 몫, 힘들어도 내 몫. 그렇게 홀로 나를 감당하는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스물다섯 살, 혼자 다 감당하며 살아왔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37
˝만날 때마다, 밝게 웃으며 인사해주는 너로 인해 행복했어.˝

그저 작은 미소였다. 그저 조금만 더 힘차게 웃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오늘도 조금 더 힘차게, 조금 더 밝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전해야겠다. 내겐 `그저` 할 뿐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51
그런 순간이 있다. 북적이는 소음이 작아지고, 숨소리는 커지며, 세상이 잠시 멈춘 듯한. 그런 몰입의 순간. 그건 바로 내가 지금, 여기에 충실히 머물고 있음을 말한다. 보는 것에 집중하면, 시간이 점점 느려져 결국엔 시간이 흐르는 것조차 잊게 된다.


62:63
길에서조차 내 속도를 유지하는게 힘든데, 한평생 사는 인생, 내 페이스대로 내 뜻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오늘의 동행자였던 그가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열정적으로 살아봤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중요한 건 균형이었다고.

오늘



78
˝우린 정말, 단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거잖아.˝

아빠와 나이가 같은 캐나다 친구 잭이 말한다. 한번뿐인 인생. 네가 얼마나 가치있는 사람이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깨닫고 가라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네 존재를 너 스스로 깨닫는 거라고. 너는 참 예쁜 아이라고 말이다.


85
어떠한 이유와 목적으로 그 길에 올랐건, 우리는 비슷한 감정과 비슷한 충만함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먹고 자고 걷는 것이 그곳의 전부였다. 우리는 원초적인 생활 속에서 원초적인 행복을 맛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이 세상에서, 뭐 하나 쉬운 게 없는 복잡한 도시에서는 쉬이 할 수 없는 그건 어쩌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비워보니 알 수 있었다. 행복해지는 것은 참 간단한 일이라는 걸 말이다. 관건은 욕심이었다.


86:87
무거운 배낭을 지고 흙길을, 아스팔트 위를, 산을, 끊임없이 걷고, 자고, 먹는 삶은 단순했다. 단순한 일들의 반복이었지만, 길을 걷는 건 간단하지 않았다. 그 길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110
스쳐가는 인연들이 있다. 옷깃만 스칠 뿐이어도, 정을 주고 싶은 사람에겐 마음껏 정을 주었다. 스쳐가는 인연들이기에, 그 정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한들 괜찮았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 순간 진심이었으니까, 괜찮다.˝



111
섞이지 않는 것들이 둥둥 떠다닌다 해도 그냥 공존했던 그 시간들.
...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청춘이니까.



126
우리 모두 각자의 생김대로 산다. 문득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이해하지 못할 혹은 이해받지 못할, 아니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는 저마다의 색과 향이 있다.



147
예술가는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다. 창작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뭔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다양하게 보고 느끼며 그걸 설명하기 위한 연결고리를 짓는 일이다. 창작은 세상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숨지 않고 그것과 대면하는 일이다.
-데니 그레고리, `창작면허프로젝트`(세미클론) 중에서




154
햇살과 물이 만나 반짝이는 순간이 좋다. 물의 힘과 햇빛의 힘, 그리고 바람의 힘이 모여 생기는 그 반짝거림. 구름의 도움도 필요하다. 해을 가리던 구름이 잠시 비켜나야 그 찰나의 순간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힘으로 되는게 없다고, 그래서 뭐든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거 같아좋다.
찰나의 반짝거림이 좋다.



156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애정을 주면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거라고. 사랑이 마냥 좋을 수 없는 이유는 그만큼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라고. 좋은 만큼, 지탱해야 할 무게가 생기는 거라고.

많이 사랑했으면, 딱 그만큼 아파야 하는게 정상이고, 그게 이별을 마주하는 자세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