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의 영역
최민우 지음 / 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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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의 영역은 할아버지의 예언으로 시작된다.


만나서는 안 될 사람을 만날 거다. 소중한 걸 잃게 된다

힘들 거다. 용기를 잃지 마라. 도망치면 안돼”(p.16.)


 할아버지의 예언은 언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몰랐고 그렇게 내뱉은 예언은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다. 할아버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전한 예언을 주인공은 그저 담담히 받아들인다. 과거 그리스비극에서 보았던 신탁을 떠올리게 하는 도입부에서 작가는 냉큼 시간을 뛰어넘어 현실 속으로 주인공을 던져버린다.


어떻게든 벌어지게 되어있다면 할아버지의 말대로 방법은 없으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오지 않을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듯 오기로 되어 있는 미래를 근심해봤자 소용이 없다.”(p.12.)


 십년 뒤, 할아버지의 예언을 거의 잊고 살던 도중 주인공에게 여러 사건이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그림자를 잃어버린 서진, 도시에 찾아온 정전 등 비현실적인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리스비극을 떠올리게 하는 예언자, 그림자를 잃어버린 여자친구, 잃어버린 그림자로 인해 찾아온 정전 등 이 작품은 비현실적인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그 내용을 읽어보면 실질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삶에 닿아있다.


 사람들은 예언과 종말을 혼동하곤 한다. 예언이 실현되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목숨이 다하지 않는 이상 예언이 이뤄지고 나서도 삶은 이어진다. 예언이라는 확고부동한 점이 있다고 삶이 분명해지지는 않는다. 그 점의 앞뒤에, 위아래에 다른 점을 찍는 건 우리 자신이다.(p.164.)


작품 속에서 예언은 중요한 부분으로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의 인생이 예언에 의해 끝나거나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위의 문장처럼, 예언이 이뤄지고 나서도 삶은 이어진다. 예언이라는 굵은 점이 하나 있으면 그 옆에 또 다른 점이 생기기 마련이다. 


 작품 속에서는 예언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서진이 겪고 있던 취업에 대한 현실, 서진과 주인공의 관계, 잃어버린 그림자를 대하는 서진의 태도, 예언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와 선택 그리고 행동 등 여러가지 것들이 하나의 점처럼 이리저리 놓여져 있다. 인생은 여러 점으로 되어있고, 예언과 같은 하나의 점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여러가지 점들이 나란히 놓여지면 그것이 주인공의 삶이, 그리고 서진의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점을 찍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메세지를 작가는 전달하고자 한다.


<점선의 영역>을 처음 읽었을 때와 마지막으로 다 읽고 책을 덮었을 때의 느낌이 많이 달랐다. 미스테리하게 시작되는 예언에 긴장하다가도 다 덮고 나면 결국 이 이야기는 삶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다. 담담한 문체로 가볍게 풀어내는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나는 어떤 점들로 이루어진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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