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터베리 이야기 - 하 을유세계문학전집 120
제프리 초서 지음, 최예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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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터베리 이야기(하)권.
상권이 구전 설화같은 느낌의 신화적이며 재미있는 옛날이야기 였다면, 하권은 좀 더 철학적이고 종교적이었다. 탈무트 처럼 교훈적인 내용이 많고 현인들의 격언 인용이 많아(특히 솔로몬 왕) 언더라인을 책이 거메지도록 그어대며 읽었다.
하권의 이야기 역시 상권에서처럼 캔터베리를 향해 순례길을 이어나가며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자신만의 교훈적이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상권에서부터 느낀 점이지만 초서는 각 인물의 업을 통해서 그 인물의 기질이나 행동성향, 이야기의 질적수준(영화관에서 전체 관람가, 15세이상, 19세등 등급을 매기듯)나아가 이야기의 본질적인 방향까지도 생각한 듯 하다. 과거에 흔히 그랬듯 직업의 귀천이 정해져 있고 고귀한 직업일 수록 고귀한 이야기를 미천할 수록 저질스러운 이야기를 그리고 사기를 일컫는 업은 또 그에 마땅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나도 모르는 새 화자의 업을 통해 이야기의 방향성까지 짐작하게 되었다.

하편의 많은 이야기 중 캔터베리순례자 이야기의 화자로 보이는 ‘토파스경의 이야기- 멜리비 이야기’가 가장 좋았다. 멜리비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멜리비의 부인인 프루던스의 이야기다. 멜리비라는 인물은 적들로부터 사랑하는 딸이 공격을 당하자 전쟁을 통해 복수를 할지 말지 결정을 하기 위해 많은 참모꾼들의 조언을 듣게된다. 그러던 중 아내인 프루던스의 장작 28페이지에 달하는 현명한 조언을 받아들여 결국 적들을 용서하게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인데 프루던스의 주언이 얼마나 구구절절 주옥같은지! 물론 그 내용들은 대부분 현명한 현인들의 인용이지만 대화형식으로 적시적소에 인용하며 남편을 설득하는 과정과 방식이 아주 훌륭하여 프로던스의 대사는 정말 다 줄을 긋고 본 것 같다. 또한 이 이야기가 초서 스스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했기에 수많은 순례자 중 ‘제가’로 지칭되는 주인공 화자를 통해 이야기 되도록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가’인 토파스 경의 이야기가 끝나자 이야기 경합 제안을 했던 숙소 주인 역시 감탄하며 내 마누라가 이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이라고 말하는 것만 보아도 초서가 프루던스의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애착을 가졌고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하권은 상권에 비해 분량은 짧지만 앞서 얘기했듯 상권보다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짙어 물흐르듯 읽기보다는 군데군데 복기하며 읽어야 했다. 특히 마지막 교구주임 신부의 이야기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는 마음으로 참회의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읽는 것 만으로 면죄부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앞서 알고 있었듯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가 가장 훌륭했는지 경합의 판결을 내지 않고 갑자기 철회문으로 저자의 작별을 맞이하게 된다. 마치 고해성사와도 같은 회개와 용서의 분위기로 급하게 마무리된다. 이것이 책의 완성에 흠결을 내는 것은 전혀 아니다. 상권 하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릴레이는 지루할 틈 없이, 그리고 많은 교훈과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이야기들로 가득했고 늘 목말라 하는 주옥같은 구절들도 많았다. 다만 그냥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사실에 아쉬웠을뿐. 책을 읽고나면 이 책은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책, 언제고 다시 열어보고 싶은 책이 극명하게 판가름 나는데 이 책은 후자중에서도 ‘언제고 다시 열어보고 교훈과 삶의 방향을 찾고 싶은 책’이다.
이야기의 설정은 캔터베리 순례길에 나선 순례자들의 이야기 경합이지만, 나에게는 내 인생의 순례길에서 방향성을 읽을 때마다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아 보고픈 책이랄까.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고 싶은 꿈이 있다. 순례길에서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당연하게 같은 길을 걷게 되는 동반자들이 생긴다고 하던데 그 때 나에게도 함께 이야기를 나눌 동지들이 생긴다면 캔터베리 이야기가 많이 생각날 것만 같다 ❣️

p109. 전쟁이 뭔지도 모르면서 전쟁을 외치는 사람이 많군요! 전쟁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지요. 하지만 그 결과가 어찌될지 알지란 쉽지 않습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엄마에게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이 전쟁때문에 죽을 것이고 아니면 슬픔속에 살거나 비참하게 죽을것입니다.
👉🏻 러시아vs우크라이나 전쟁이 너무나 생각나 마음 아팠던 구절. 우리는(대부분의 시민들은) 정말 뭔지도 모르며 전쟁을 이야기하고 전쟁을 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p332.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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