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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 : 아방가르드의 문화사 - 몽마르트에서 사이버 컬쳐까지
마크 애론슨 지음, 장석봉 옮김 / 이후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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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Avant (맨 앞줄에 선) + Garde (호위대) = Avant-garde
아방가르드의 본래 의미는 전투의 맨 앞에 서, 적군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목숨걸고 진격하는 선발대를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가 예술계로 전이되면서 기존의 구태의연함과 맞짱뜨기 위해 자신의 재능,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이들을 뜻하게 되었다.

책 '도발'은 뒤샹의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나체]가 뉴욕에 가져온 충격을 묘사하는 것으로 페이지를 시작한다. 이러한 미국 아방가르드의 모태였던 유럽의 아방가르드 문화사 -다다이즘, 절대주의,초현실주의 등-를 차례차례 비춰준다. 고교시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등 개념 외우기로 그쳤던 내용에 당시의 역사적 배경, 각 예술가들의 현실적 고뇌, 더불어 이해를 돕는 도판이 합해짐으로써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내용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어떠한 책이든 페이지가 반환점을 돌때면, 잠이 쏟아지기 마련.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조정래가 적재적소에 섹스신을 배치하여 쉼없이 독서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하는 치밀함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은 재즈, 락, 우드스탁 네이션, 팝아트 등 우리의 지적욕구와 관심사를 모두 충족시켜줄 달콤한 초콜릿을 후반부에 선보임으로써 우리의 잠을 앗아간다.

책 '도발'은 아방가르드의 역설을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아방가르드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구태의연함과의 싸움이 아방가르드 예술가의 본질인 이상,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 또한 타도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아방가르드의 첫번째 역설. 상업주의를 배격하던 아방가르드가 되려 상업주의와 공생관계를 유지하게 된 아방가르드의 두번째 역설. 전위적인 메시지가 유행이 되는 순간 피상적인 행동으로 변질되는 아방가르드의 세번째 역설. 이는 항상 극단적이야만 한다는 아방가르드의 숙명과 타인의 행동에 파급을 주려는 아방가르드의 욕망 사이에서 벌어진 끊임없는 줄다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개체 아방가르드는 끊임없는 자기파괴를 통해서만 번식할 수 있음을 자각한다. 이 속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약물과 섹스를 통해 파멸과 환희의 길을 택하곤 했다.

체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 장발, 락, 재즈. 오늘 우리의 일상이 어제의 아방가르드였음을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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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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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못한다. 고전이 현대를 사는 독자들에게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이유일 게다. 한가지를 더 보탠다면, 각 고전의 사상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네 삶 깊숙히 뿌리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 원문(굳이 영어가 아닐지라도)한 줄 읽었을 턱 없는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쥴리엣'의 내용을 모두가 꿰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동물농장. 이 책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위 고전의 유명세로 인하여 작가와 작품이름은 암기식으로 주입되었던 데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고전이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예단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책장을 다 덮었을 때야 처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왜 이 책을 알고 있다 생각했을까? 곰곰히 생각해본 바, 대한민국 최고의 남성 듀오 서수남 하청일의 노래 '동물농장'의 한국 내 파급력이 조지오웰을 앞질렀기때문으로 보여진다.

민음사판 동물농장의 번역자 도정일 경희대 교수가 쓴 작품해설에 따르면 풍자와 우화가 동시에 적절히 조화를 이룬 수작이라고 한다. 풍자라 함은 당시 소비에트사회주의의 전체주의를 비판했기 때문이고 우화라 일컬음은 권력의 부패구조가 어느사회, 어느시대에나 항구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경고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은 도정일씨의 작품 해설을 먼저 읽고 본문을 읽어 나갔다. 그리 좋은 방법이라 생각되지 않지만 책을 한결 수월하게 읽어나갈수 있었고, 도정일씨가 작성한 소련과 소설 [동물농장]의 1:1 함수 비교는 책을 재밌게 읽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고전의 새로운 해석을 모토로 창의적인 독서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생각한 만큼은 알아야겠다는 소시민 근성이 싹을 트나보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은 두가지 생각의 지점을 남겨주었다.

1. 권력의 타락은 인간 사회의 불가피한 조건인가?

메이저(마르크스)가 이론적으로 제시한 유토피아를 현실사회에서 구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스노볼(트로츠키)과 같은 유약한 혁명가는 결국 강력한 야심가 나폴레옹(스탈린)에 의해 제거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 '스노볼' 같은 이가 권력을 쥐는 사회는 올 수 없나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결국 '권력의 속성은 나폴레옹 편이다'고 귀결되었다. 스노볼은 그래서 권력을 못잡았고 그래서 착한 사람으로 기억될 뿐.

2. 사회주의자 작가가 책을 통해 사회주의를 비판한 것은 잘한 일인가?

비판적 지지자들의 고뇌를 반세기전에 겪은 조지오웰을 생각하니 요즘 우리가 새롭게 받아들이는 제도, 문학, 사상 모두 옛것에서 배울게 많다는 겸손한 생각을 오랜만에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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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
밀란 쿤데라 지음 / 청년사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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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밀란 쿤데라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독서에 집착했던 때다. 무언가에 대한 집착은 언제나 괴로움을 낳곤 하는데 그 좋다는 책도 예외는 아니었다. 독서를 즐기거나 흥미롭게 여기기보단 책을 구입하고, 글자를 보았다는 것에 더욱 무게를 두곤 했다. 문맥을 읽기보단 글자를 보았던 데는 스스로에게 버거운 책을 골랐다는 점과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읽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어찌나 책을 열심히 보았던 지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시간에 고감자에게 들켜 혼나곤 했다. 한편으론 고감자에게 책을 가까이 하는 학생으로 각인되는 뜻하지 않은 수확도 있었다.

이러한 독서벽의 와중에, 신문의 게재된 베스트셀러 목록은 먹잇감을 선택하는 데 참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먹잇감을 고를만한 눈을 지니지 못했던 내게 베스트셀러 목록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최악으로 향하진 않을 나침반 역할을 해준 셈이다. 물론 베스트셀러가 베스트북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정주영 일대기 '이땅에 태어나서'를 구입했던 일은 참으로 안타깝다. 현대그룹에 가면 공짜로 나눠줬을 법한 책이니 말이다. 그래도 정주영씨 참 열심히 살았더라.

한번은 밀란쿤데라의 '정체성'이 베스트 셀러 6위에 올랐던 적이 있다. 밀란쿤데라와 내가 접속하는 순간이다. 서점에서 발견한 '정체성'은 문고판 크기의 얇은 양장본의 모습을 하고서 내게 허영의 세계로 손짓했다. 백발을 한 서구의 한 작가가 쓴, 이 책을 난 읽을 수 없었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그림책을 보듯 글자를 마구 본 후에야 겨우 책을 덮었을 뿐이다. 그래도 그 뿌듯함은 실로 괜찮았다.

1년쯤 지나, 집안 책꽂이에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꽂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제목부터 지적허영을 피울 소지가 다분했던 쿤데라의 책장을 다시금 넘기게 된다. '정체성'을 봤던 시기로부터 정신적 성장은 제로에 가까웠기에 나의 뇌세포는 이번 책 역시 그림 동화책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쿤데라의 소설을 처음 접한 98년 이래 3년이 지난 2001년에서야 비로소 쿤데라의소설을 읽게 되었다. 책을 보던 그때, 그리고 읽는 지금. 둘 사이에 차이점을 보면 쿤데라의 소설을 재밌게 읽는 팁이 드러난다.

우선 무거운 주제를 한없이 가벼운 깃털로 만들어버리는 허무주의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기관차처럼 고등학생, 그의 목표는 오직 대학뿐이다. 일정한 철로를 벗어난 삶은 낙오자란 이름으로만 기억했다. 국가, 어른, 학교, 사랑, 우정 등 세상 모든 것에 '진지함 이상의 비장함으로 임해야 한다'는 생각의 틀로는 쿤데라 소설의 위트를 받아들일 수 없기 떄문이다.

둘째 68혁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서구의 틈바구니 속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체코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당시 유럽은 모든 권위에 대한 도전을 기치로 한 문화혁명의 시기였다. 유럽전반에 퍼진 '일상 속의 혁명'의 기운이 체코에도 전해졌지만 '프라하의 봄'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실현코자 했던 체코정부를 소련이 좌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째, 다소 지엽적이지만 새로운 소설형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단일 시점의 소설만 접해온 내게 쿤데라 소설의 변화무쌍한 시점은 벅차게 다가왔다.

이제는 미디어에 의존하지 않고 내게 맞는 책을 서점에서 직접 고를 수 있다. 세월의 흐름때문인지, 국문과 서당개로 3년을 보내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장차 도서관을 만들 생각인지, 구입한 책을 책꽂이로 보내면 끝이다. 글자에 집착했던 어리석은 그때가
되려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집착은 괴로움을 남기지만, 지금과 다른 나 또한 남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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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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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느라 혼났다. 나의 감수성이 메말랐기 때문인가? 코드가 맞지 않았던 것인가?

미사여구가 넘실대는 문장가라 극찬받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단순한 만연체로 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감수성을 한탄했다.

더군다나 베르테르, 알베르트, 로테. 이 세사람의 관계가 지금의 우리에겐 어떠한 파격도 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고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엔 메스를 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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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거장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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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의 차이는 단순 원고분량에 있지 않다'
1학년 문학원론 시간에 배운, 아니 자습한 내용이다.
(수업 한방으로 매학년 10퍼센트는 재수하게 만든다는 명재씨덕에)

지금껏 전경린의 작품을 장편소설로만 만나왔기에 이번 소설집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이는 위에 인용된 소설 구분의 정의, 그 간단명료한 사실조차 잊고 지냈기 때문일게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전경린에 대해 여전히 또는 새로이 느낀 점은,

1. 부부싸움 묘사에 탁월하다.

영화 [밀애]의 원작이었던 [내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서 처음 맛본, 부부싸움 장면은 가히 날 실제상황에 서 있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방관자가 아닌 주체자로써. 이 느낌을 이번 소설집 수록 작품 [二月 荒凉的 脚步]에서 재차 받게 된다.

남편과 부인이 건네받는 한마디, 한마디 대사가 갖는 힘도 있지만, 아무래도 클라이막스는 남편의 물리적 폭력이 단 한 순간 섬광처럼 폭발하면서부터다. 이후 부인의 정신적인 흐름을 세세하게 묘사하는 단락을 읽을 때면, 내 머리는 멍해진다.

2. 이 사람, 쿤데라와 하루키를 좋아하는구나.

'어차피 인생에서 더 나은 것 따위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단지 더 모르는 것에 끌릴 뿐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이 없어질수록 삶의 열정도 사라진다.'
-소설집 수록 작품,[바다엔 젖은 가방들이 떠다닌다] 중-

낌새는 차렸지만 한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위 두 소설가를 좋아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니, 전경린만의 독특한 색깔이 '결국 다 표절이 아니겠느냐?' '얄팍한 술수로 날 매혹시킨것 아니겠느냐?' 란 괜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허나 허무주의 계열 가운데서도 여성을 주소재로 다룸으로써 자신만의 색깔을 잃을 염려는 없는 듯 하다.

결국, 난 괜한 걱정을 한 셈이다. 지 할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이래서 평론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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