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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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30여편 모음집. 허나 이 30여편이 저마다 유기성을 가지고 있어 한편의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재담꾼일세, 이야기 꾼이야. 책의 제목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마냥 번쩍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참신한 소재로 이루어 진 이야기도 아니다.

개인기다. 이건 순전히 소설가 성석제의 개인기다. 같은 얘기도 재밌게 하는 사람이 있듯이, 성석제는 뻔한 소재를 두고서 듣는 사람이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의 재주는 남과 달리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다만 이야기를 끌어가는 펜촉의 질감이 특출나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마음 한구석이 훈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김영하가 추구한다는 '담배같은 소설'은 아니기에 작품이 내게 주는 특이한 파장은 없다. 다만 작가의 개인기를 확인 했기에 작가에 대한 인상은 뚜렷이 각인된다. 나는 성석제 소설을 이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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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막 7장 그리고 그 후 - 멈추지 않는 삶을 위하여
홍정욱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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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처음 만났던 책, 7막 7장. 그때는 영웅이었다. 하버란 타이틀은 절로 숭배와 경외를 표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든든한 뒷배경을 바탕으로 쓰여진 자서전은 판단력이 부족한 중학생에겐 곧 백과사전류로 받아들여져그를 신화 속 인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10여년이 흘렀다. [7막 7장 그리고 그후]란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을 마주하는 순간 '2탄'인줄 알았으나 [7막7장]의 개정증보판이었다. 기존의 [7막7장]에 이후의 삶을 조금 보태 출판한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하지 않았는가? 이제는 책을 비판적으로 읽고 있다. 더군다나 자서전이지 않은가. 그는 정도와 일류만을 향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내장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즉, 우리가 아닌 그들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은 애써 부인하지만 일류에 대한 그의 집착이 타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비춰지는 것은 내 시각의 오류때문은 아니리라.

그러나 다른 세계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그의 열정이 너무도 뜨거웠다. 그중에서도 모르면 통째로 외워버린다는 그의 청소년기 학습관은 본받을만 하다. 게다가 문장 하나하나마다 그의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드러난다. 이러한 자서전을 내 나이즈음에 썼다는 점에서는 절로 홍정욱씨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실용적 자서전의 성격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으나 독자로 하여금 성취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이만한 책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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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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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낄낄... 낄낄...하하하' 혹여나 누가 들을까 무서웠다. 이래도 되는거야? 소설을 보면서 이렇게 웃어도 되는거냐고!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페이지를 한장한장 넘겨나갔다. 칼럼을 통해 박민규씨 글의 위트를 파악했지만 장편소설마져 이럴 줄은 몰랐다. 역시 끼가 어디 가나!

아마 처음이었다. 물론 이번도 완벽하진 않았다. 다만 전과 달리 확연한 차이가 있었음은 자신한다. 책이 중반을 넘기도 전, 의무감에 시달리곤 했었다. '그래 이왕 시작한거니까' '난 똑똑해질거야.' 이리 위안하고 나를 달래며 책장을 덮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재미가 있었다. 이전에도 재밌는 책은 만났다. 하지만 그 재미엔 지식욕이 서려 있었다. 나의 1차적 욕구가 아니었던 것이다.

최근 한국 영화에서 두드러졌던 추잡스런 구성방식. 전반부 웃겨주고 후반부에 눈물짜내기. 이러한 도식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리라. 똥꼬에 털날까 두려워하는, 눈물이 마른
내게 웃음을 강요하는 것에 반감이 들 뿐.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막장을 덮으며 이러한 생각을 했다. 대다수 한국영화 감독들이 '이걸 원했던 거였구나.' 웃음 속에 피어나는 한떨기 꽃, 그 이름 감동.

감동의 정체는 이러하다. 우리는 어떠한 생을 원하는가? 프로가 될 것을 강요하는 세상의 파고 속에 우리는 어떠한 삶을 택해야 하는가. 물론 나는 아직 답을 못내렸다. 주인공 '나'도 철저히 프로를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실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혼 당하기 전만 해도. 프로가 프랜차이즈된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에 충실했다. 꼴찌, 삼미를 좋아했던 것은 인천 출신이란 태생적 한계에 기반했을 뿐이니 이에는 어떠한 역설도 존재치 않았다.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류의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흐름에 끌려다니지 말 것을 스스로 다짐해보지만 프로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내기는 힘이 든다. 프로화 프로그램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언제쯤 오락실 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실직과 이혼의 시련을 겪은 뒤가 그 선택의 지점이 되지 않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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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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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빚이 없다는 작가, 귀걸이를 하고서 문단의 선 작가. 이래저래 친구로부터 주워들은 김영하에 대한 인상은 이상형이었다.

'담배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작가 후기에 밝힌 김영하의 소설론은 그 자체로 문학이다. '유독하고 매캐한, 조금은 중독성이 있는, 읽는자들의 기관지로 빨려들어가 그들의 기도와 폐와 뇌에 들러붙어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호흡을 곤란하게 하며 다소는 몽롱하게 만든 후 탈색된 채로 뱉어져 (여기가 포인트!) 주위에 피해를 끼치는 그런 소설을...'

이러한 작가에게 담배를 회피하는 인물은 어떻게 보일까? 소설집의 메인제목이 된 단편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머피의 법칙으로 틈틈히 짜여진 하루를 보내는 주인공 '나'를 보여준다. 아침부터 질레트 면도기가 부러져 면도는 반절만 했고, 지각이 두려워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모른채 지나갔고, 핸드폰이 없어 버스정류장 앞 구조 요청을 하려 공중전화로 달려갔으나 고장났고, 지갑 없이 버스엔 올라탔고, 요금 문제로 기사와 실랑이를 벌이던 중 교통사고가 나 양복은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갈아 탄 버스 안에선 성추행범으로 의심받고, 이제 지각으로 인한 직장상사의 압박이 버티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도착한 '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던 도중 고장나 갇히게 된다. 경리부의 한 여직원과 함께. 이때 담배 한대를 피려는 '나' '담배 피워도 됩니까' 여자에게 양해를 구한다. 여자는 거절한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간접흡연의 폐해에 대해 총론, 각론, 개론을 거쳐 1200자 논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난 화가났다.

미스터리 치정극 '사진관 살인사건', 작가인 남편을 흡혈귀로 의심하는 겹 액자소설 '흡혈귀', 불법 CD 유통업 종사자와 유부녀의 짧은 사랑 '바람이 분다', 욕으로 시작해 섹스로 점철되고, 빽차로 끝나는 '비상구'. 대부분이 좋았다. 단편의 묘미는 역시 쏠쏠해 책을 더디 읽는 나조차 하루만의 모두 읽었다.

그럼에도 가장 큰 재미는 '고압선'이었다. 대학시절 '가슴 큰' 친구 B의 여자를 흠모했던 주인공이 이혼한 '가슴 큰' 그녀와 재회해 사랑을 나누다 투명인간이 되는 작품. 그야말로 판타지다. 마이 판타지 스토리.

맘에 와닿는 몇몇 구절 중 하나를 선별했다.

'여자들은 한번쯤은 바라는 것일까. 어떤 남자가 자기를 위해 남편을 죽여주기를, 목숨을 걸어주기를. 아서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난다 해도 그건 추문이다. 그 흔하디흔한 치정살인.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추잡한 거래로 환원될 뿐이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설계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 단편 '사진관 살인사건'中

빠른 필치로 속도감 있게 소설을 전개해나가는 작가의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티비도 인터넷도 영화도 재미없어진 20대에게 이 소설을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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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광고, 소비의 문화사
제임스 트위첼 지음, 김철호 옮김 / 청년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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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
대학 재학시절 한 선배는 바바리코트로 학교바닥을 청소하고 다닌 명물이었다. 쉽게 말해 숏다리에 훗까시. 그는 어느날 내게 말했다.
'심리학은 학문이 아냐. 인간의 마음을 객관적 지표로 대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이와 함께 비장한 표정을 보이며 철학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episode 2.]
2002년 2학기 '네트워크 마케팅의 허와실'이란 주제로 기사를 썼다. 그들은 다단계 판매라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한 경영학과 교수의 인터뷰가 맘에 와 닿았는데 '불필요한 유통구조를 창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대답이었다.

[episode 1+2]
노동자의 구슬땀이 베어들어간 공장의 상품 VS 화이트 칼라, 펀드매니저가 관리하는 금융상품.
위 두가지 상품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심리학'과 '네트워크 마케팅', 그리고' 금융상품'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철학', '한방울의 땀방울'이 좀 더 소중한 가치라 인식하도록 숙달되어졌다. 이는 각자 삶의 태도와는 무관하다. 도덕 답안지에 '옳은 답'을 적는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본론]
저자에 따르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실제 사용가치는 무의미해졌고, 광고를 통해 의미가 주입된 상품만이 교환가치를 획득하게 됐다고 말한다. 또한 우린 이 조작된 가치를 지닌 상품만을 눈여겨 본다는 것이다.

저자는 '광고는 우리 자신이다'라고 강하게 말한다. '광고가 인위적인 욕망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역사와 인간본성에 대한 씁쓸한 무지의 소치며, 옛날옛적에 순수하게 자연적인 욕구를 지닌 고상한 야만인들의 평화로운 시대가 있었으리라는 막연하고 낭만적인 추측의 소치다. 식량과 피난처가 충족된 이후로 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문화적이었지 자연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 속에 저자가 선정한 스무가지 광고 사례를 통해 야바위 꾼이나 다름없는 광고쟁이들에게 농락당한 무능한 소비자들을 보여준다. 저자가 광고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재를 인정하면서도 '과거의 사례를 통해 본 좋은광고만들기'로 논점이 흐르지 않은 것은 인간의 욕망의 초점을 두고 각 광고를 분석했기 때문이다.

[결론]
인간의 욕구는 언제나 문화적이었다. 자연적이었다고 우겨대며 '신성한 노동'을 강조하는 꼰대와 자본주의의 꽃 '광고'를 두둔하며 광고기법만을 저술한 장사치 사이에 무게중심을 적절히 둔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신성한 가치는 시대에 걸맞게 새로이 재편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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