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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지만 - 큰딸로 태어난 여자들의 성장과 치유의 심리학
리세터 스하위테마커르.비스 엔트호번 지음, 이상원 옮김 / 갈매나무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도 맏이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내 동생, 주위의 둘째들과 막내들을 보면 귀염성있게, 요령 있게, 나보다 효율적으로 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나도 오빠 밑에서 든든한 백을 느끼며, 혹은 언니 밑에서 조언을
얻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철 없게도 서른까지 이런 생각을 해왔는데 이 책은 제목부터 마음에
똑똑 노크를 하고 들어온 것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가족 중 맏딸들은 세상 사랑을 온전히 받는 갓난 여왕처럼
지내다, 동생이 태어나면 귀여움받는 왕좌를 넘겨주고 돌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엄마의 짐이 되지 않을 것, 동생을 돌봐줄 것.” 같은 책임을 맡게 된다.
이러한 맏딸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하면서, 이
책은 맏이로써 자기연민에만 빠지게 하지 않았다. 맏딸인 나의 등장은 신혼이었던 엄마아빠를 부모로 만든다. 모든 것이 아기인 맏딸 중심으로 결정되면서, 기대와 관심을 받아 지능발달과 가족관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된다.
이 책 중 한 자매의 일화로, 어렸을
때 부모가 자기를 언니만큼 사랑해주지 않으며 자신을 “2등급자식”이라 느끼며 자란 둘째가 나온다. 언니와의 경쟁이 될 일이라면 회피하고 살아 직업을 결정하고 다른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산다. 뒤늦게,언니와 갓난 동생에게 사랑을 빼앗겼을 때의 언니의 감정과
질투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며 비로소 화해하게 됐을 때는 자매가 70대일 때. 원해서 정해진 것이 아닌 자매의 서열은 맏이 뿐만 아니라 가족의 평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것.
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와 과정도 재미있다.
오랜시간 친구로 지낸 맏딸인 저자 둘이서 ‘맏딸의 날’ 행사를 조직해, 수백명의 맏딸들이
공유해준 성격과 경험을 연구해 이 책을 써냈다. 맏딸들이 공유하는 특징은 주로 다섯 가지. 책임감, 성실성, 효율적인
일처리, 진지함, 보살핌.
이것들이 맏딸의 특징이며 계속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은 그녀들의 바람이다.
“왜 다들 나에게 맡기지?”
“우리 일이 곧 자기 일이라는 생각을 안 하는거야?”
“내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할 셈인가?”
어떤 역할을 맡으면 자주 이런 불만에 싸일 때가 많았다. 투덜대면서 “어휴 내가 한다. 내가 해!” 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 이게 자라면서 내재되어 온 맏딸의 책임감이라는
강점, “나 아니면 누가 해?” 걱정꾼이라는 단점 때문인걸까!
‘ - 가족의 일이 아니더라도, “이번엔 어떤 일에도
나서지 않고 남들이 나설 때까지 기다릴거야” 라는 다짐에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상황이 되면 결국 맏딸이 떠맡게 된다. - ‘ 라는 구절에서는 공감에 웃음이
나왔다.
책임을 지는 삶. 맏딸 우피
골드버그가 가족 문제로 진행하던 쇼에서 하차했다가 복귀 했을 때 동료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잘 돌아왔어요. 이 배의 진짜 선장은 당신이니까요.” 이런 말은 맏딸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칭찬이다.
이 책을 지하철에서 읽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힐끔힐끔 보던 50대 여성분이 내가 책을 덮고 일어나려하자 책제목을 물었다. 이 책의 구절들을 잠깐 같이 읽은 것 만으로도 우리는 맏딸로서의 삶을 살짝 공유한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공유와 치유와 자신감과
해방감. “첫째 딸로 태어나고 싶지만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