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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
정기린 지음 / 달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이 편지는 끝내 부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요.
_정기린 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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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계절과는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당신이라는 시절을 살게 되었으니, 내게 이 계절의 이름은 끝내 당신이고 말아버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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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당신에게 정말로 고백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차오릅니다. 스스로를 허황되고 요란하게 만들던 간절함과 그리움을 벗어나 그대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헤아리고 존중할 때, 오직 그것만이 당신을 사랑하는 올바른 방법이겠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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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주볼 수 있게 된 그대의 두 눈에서, 거기에 비친 내 모습이 아니라 당신의 영혼을 만납니다. 당신이라는 타자를 온전히 헤아릴 때에야 비로소 나는 간신히 나 자신일 수 있을 것임을, 그리고 또한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일 때 비로소 당신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임을, 이제는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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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바다만큼 널따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당신이라는 이름의 바람과 하늘만큼 널따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시라는 이름의 구름은, 어떻게 그 좁쌀만한 모래 알갱이 하나가 우주만큼 우주보다 더 무한하고 광활한 의미를 품어낼 수 있는 건지, 그 비밀만큼은 끝내 우리에게 일러주지 않았었으니까요.
_정기린, 「당신이라서 가능한 날들이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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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하지만, 끝이라는 이별 앞에서 그 어느 누구도 바로 설 수가 없다. 이렇듯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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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아픔을 마주한 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와 방식으로 이별을 대한다. 작가는 글로 이별을 대한 듯하다. 당신이라는 사람을 향하여 글을 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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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순식간에 책을 읽지 못하였다. 작가가 당신이라는 사람에게 글을 쓰듯이,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자꾸만 말을 건네고 말았으니 말이다. 때문에 작가의 글 중 일부는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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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향한 작가의 글은 무던히도 애잔하고 아팠다. 동시에 아름답고 소중했다. 유일무이한 감정을 담은 이 편지를, 어쩌면 당신이라는 그 사람만이 읽기를 원했을지도 모를 이 편지를, 용기를 내어 세상에 공개해 준 정기린 작가님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