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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사는 남자 - 괴짜 의사 토이셸의 수상한 진료소
페터 토이셸 지음, 이미옥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근무 중 머리를 식히고자 잠시 웹서핑을 하던 도중 그날따라 블로그에 접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우연히 누른 포스팅에서 꼭 신청해야 할 것만 같은 책제목을 발견했다.
그게 <미쳐야 사는 남자>다.
사람은 원래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한 가지에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제목 아래 붙어 있는 '괴짜 의사 토이셸의 수상한 진료소'에 한 번 더 눈이 갔다.
심리학과 관련된 도서인가? 페터 토이셸은 어떤 치료를 하는 사람인가?
거기에 책 소개에 등장하는 얼룩말 여자란 망상을 쫓는 사례에 마음이 끌렸다.
이건 읽어야겠다, 재밌겠다. 그리고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에 지금 이 서평을 쓴다.
일단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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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상을 떠난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을 진솔하게 그려내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은 ‘독일의 올리버 색스’라 불리는 정신과 의사 페터 토이셸이 쓴 망상과 현실의 경계에 선 환자들에 대한 상담기록이다.
저자 페터 토이셸은 30여 년 동안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면서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했고 그 치유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결코 삶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환자들의 모습은 그에게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더불어 의사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해준 특별한 환자들의 사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한 명인 요한 마이링어는 사십 대부터 수십 년간 요양원에서 살았다. 정신병 증상이 급작스럽게 악화된 그는, 급기야 뮤직비디오 속에 등장하는 얼룩말 복장을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만다. 저자는 요한을 치료하면서 그가 현실 세계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지만, 망상 속에서 얼룩말 복장을 한 여인과 만나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 과정에서 저자는 환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광기라면 이를 꼭 치료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후 진단과 처방만이 치료가 아님을 깨닫고, 눈에 보이는 증상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도록 곁을 지켜주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진정한 치료임을 알게 되었다.
저자 약력
지은이 소개_페터 토이셸Peter Teuschel
정신과 및 심리치료 전문의인 페터 토이셸은 1959년 뮌헨에서 태어났다. 뮌헨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 1988년 정신병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에는 내과를 희망했지만, 박사 논문을 준비하는 모임에서 우연히 1,000장 정도의 정신과 환자의 기록을 읽고 난 후 정신과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 이후 30여 년 동안 다양한 신경장애 및 심리장애를 지닌 환자들을 상담·치료하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정신과 전문병원에서 조교수와 정신과 과장을 역임했고, 이후 바이에른 주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병원장으로 지내다가 1996년 뮌헨에서 정신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을 세워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직장에서 발생하는 집단 따돌림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쓴 《모빙Mobbing》(2009), 저널리스트 클라우스 베르너Klaus Werner와 함께 쓴 어린이와 청소년의 따돌림에 관한 책 《불링Bullying》(2012), 가족 간의 분열과 소외를 다룬 《별난 사람Das schwarze Schaf》(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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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토이셸의 독특한 치료법
여담을 하나 하자. 나는 정신과 상담은 아니었지만, 서평단 모집 덧글에 적었듯 심리 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 어떠한 문제로 인해 상담소를 방문했고, 심리 상담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던 나는 그저 상담사가 끝났다고 해서 끝난 줄만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후에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변하는 부분이었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해답을 찾고 난 후에 나는 상담가에게 실적과 연구 사례를 제공하기 위한 실험용 쥐에 불과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심리상담을 받아 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의사는 조금 다른 치료법을 사용한다. 얼룩말 여자를 쫓아 병원을 나가려는 환자를 내버려두거나 방구석에 처박혀 온라인게임만 하는 환자와 함께 게임을 하는 등의 희한한 치료말이다.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저자인 페터 토이셸이 여느 정신과 의사나 상담가와는 조금 다른 치료법을 시도한다는 것. 굳이 말하자면 상대를 그저 환자로만 보지 않고, 말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려 애쓴다는 게 토이셸의 서술에서 드러난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자신의 약한 면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환자들은 자신의 정신병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며 그 원인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그는 정상인일 테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해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대의 상담가들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망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정신병과 정상인의 경계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환자들의 본질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 진짜 의사가 아닐까. 의사가 마음을 열고 환자를 대할 때, 환자 역시 그에 상응하는 치유를 스스로 행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상 깊은 케이스
옮긴이의 말에도 적혀 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케이스는 역시 5장 '차가운 대리석 도시의 소녀'였다. 무의식의 발현인 꿈에서 그녀는 대리석 도시를 마주한다. 감정불감증. 최면까지 사용하여 들어간 내면에서 그녀는 지하실, 알 수 없는 소녀 등을 발견하고 감정을 되찾는 무엇과 마주한다.
6장 '사랑의 결사단을 조직한 수녀'도 흥미로웠다. 수녀원 내부의 혼란을 제거하고 싶은 원장 수녀와 환자를 돕기 위해 애쓰는 카타리나 수녀, 그리고 조증을 앓고 있던(?) 엘리자베스 수녀까지. 이 장은 수녀에 대한 편견을 깨트릴 수 있게 해 주는 좋은 케이스로 보인다(+엘리자베스가 선택한 결정에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외에도 각각의 장들은 잡동사니 증후군, 감정도착 등 다양한 정신병과 이를 치료해 나가는 토이셸의 기록들은 보통 책처럼 놓쳐도 되는 장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심리학 관련 도서를 찾아보면서 서점 평대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결론적으로 최근 진열된 평대에서 이 책보다 재밌는 책은 없었다. 이론적인 원리만을 나열하는 딱딱한 심리학 책이나 사례들만을 나열하고 분석하는 임상심리 책들과 이 책은 다르다. 정신과 의사의 시점에서 환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물론 그는 여느 정신과 의사와는 조금 다르다) 환자마자 다른 처방을 하려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들이 저자의 시점에서 솔직하게 서술되어 진실성을 더하고, 재미도 배가시킨다. 최근 읽은 심리학 책 중에 가장 재밌다고 단언할 수 있다.
드문 경우라고 하면서, 선생님이 자주 이런 방식으로 치료를 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어요.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고 그 선생님에게 말했죠. 그분은 이런 치료가 다섯 명을 치료하는 것보다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그 선생님은 뭔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마를 찌푸리며,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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