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복면을 한 운명 - 릴케의 고통의 해석과 인문학
김재혁 지음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14년 9월
평점 :
점점 깊어가는 이 가을에 너무 좋은 책이었다 오랜만에 읽은 릴케이기도 하고 언제 읽어도 릴케이기 때문에 쌀쌀하고 쓸쓸한 고독의 계절에 릴케의 "고독"이 더 깊이 와 닿는다
이 책의 저자는 30년동안 독일문학 등을 전공하고 강의하면서 릴케를 연구해온 교수이자 릴케에 관한 많은 책을 쓰신 작가님이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릴케의 모든 것을 이 책에 담았다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릴케의 시에서 부터 그가 일생 관심을 가져온 고독이라는 화두와 릴케의 삶의 과정들 릴케가 사랑한 여인들과 릴케의 가난과 그 고통들 그리고 모호하지만 아주 유명한 그의 묘비명에 대해서도 자세한 해설과 함께 여러글들을 싣고 있다 특히 제 6부 마음으로 느껴보는 시에서는 아름다운 시와 함께 해설도 풍부하게 해놓았는데 릴케의 초기작품들은 낭만주의적 성격이 강해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지만 노년에 쓴 시들은 그냥 읽고 느끼기에는 많이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책의 해설과 함께 읽으니 훨씬 이해도 쉽고 몇번이나 다시 읽으면서 시가 의미하는 바를 느낄 수 있을 것같다
젊은 날의 릴케의 사진을 비롯하여 작지만 다양한 사진들도 재밌다 릴케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몰랐는데 책에 나오는 다양한 사진들을 보니 시인 같이 생겼기도 하고 그가 좋아했던 고독이 조금은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아름다운 필체로 쓴 편지들도 작은 사진이지만 좋았다. 릴케가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작가들이나 존경했던 조형작가들과의 서신들의 일부도 실려있어 릴케의 예술에 대한 강한 존경과 신념이 잘 느껴진다
릴케가 사랑한 여인이었던 루 살로메의 아름다운 사진도 있는데 그 사진을 보니 프리드리히 니체가 청혼을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릴케는 루 살로메에게 열열한 사랑의 헌시를 바치는데 그 시가 바로 <내 눈빛을 꺼주소서> 이다 나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이 시를 읽었는데 아름다운 살로메가 마음으르 빼앗길만한 열열한 사랑의 고백을 담고 있는 시이다
사랑 고백의 시도 좋았지만 릴케의 초기작품중에 <나의 축제를 위하여>에 실린 시가 마음에 들어서 여기 옮겨본다
인생이란 꼭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그냥 두면 축제 같은 것이 될터이니,
길을 걸어가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날려 오는
꽃잎들의 선물을 받아들이듯이
매일매일이 네게 그렇게 되도록 하라
꽃잎들을 모아 간직해두는 일 따위에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머리카락 속으로 기꺼이 날아 들어온
꽃잎들을 아이는 살며시 떼어내고
사랑스런 젊은 시절을 향해
더욱 새로운 꽃잎을 달라 두 손을 내민다
아름다운 시와 풍부하고 박식한 해설과 릴케를 이해하고 사랑하고자 노력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정말 읽으면서도 내내 릴케의 삶의 여정을 따라다니는 멋진 책이었다
릴케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도 시와 문학에 대해서 몰라도 이 책 한권이면 그냥 위대한 시인의 일생을 함께 해보는 멋진 가을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