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 그림이야
유럽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대구 부제를 읽으면서 응? 대구? 우리나라 대구는 아닐꺼고. 대구?? 그러면서 읽었는데 생선 대구 가 맞았다. 그 옛날에 냉장고도 발달하지 않았을 시기에 생선은 썩기 밖에 더 하나. 했는데 염장의 방법을 사용하여 결국 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중세 유럽을 장악하고 있던 카톨릭에서는 사순절, 부활절을 포함해 1년에 1/3이 넘는 140여일을 금식 기간으로 정해놓고 육류와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빵 같은 음식의 섭취를 금지하였다. 때문에 금식기간에도 섭취가 가능한 청어나 대구의 인기가 치솟았다. 청어가 최대 저장기간이 2년정도라면 대구는 5년까지 가능하였다. 덕분에 유대인들은 염장 대구를 통해 부를 쌓을 수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쌓은 부로 대학을 설립하고 장학제도 등 학교 운영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교육에 투자하여 지금의 유대인의 사회적 위치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스위스의 용병을 읽으며 좀 슬펐다. 스위스가 신뢰의 이미지가 있어 진짜 부자들은 스위스의 비밀금고를 다 갖고 있다고 하던데,,, 스위스 시계가 정확하기로 소문난 것도 있고 말이다. 근데 아마 그 시작은 스위스의 용병이지 않을까 싶다.
스위스는 말이 좋아 유럽의 지붕이지 알프스 만년설로 인해 여름에도 식물이 웃자라는 냉해를 입어 가난한 나라였다. 때문에 있는 인력을 수출하는 산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용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노동력 전술력을 제공하고 돈을 받아 고국에 보내는 등의 업무를 했는데 반면 란츠크네히트 용병은 오로지 돈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 어제의 동료를 오늘 가차 없이 벨수 있는 그런 잔인한 용병들이었다.
그들이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돈을 받지 못해 로마로 쳐들어간 뒤, 모든 것을 파괴하고 약탈했다. 이 과정에서 교황청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싸웠던 스위스 용병 189명 중 147명이 전사했다. 교황이 남은 42명의 용병에게 스위스로 돌아가라고 명령했지만 이들은 교황의 명령게 불복하고 교황이 안전하게 피신 할 수 있도록 끝까지 남아 싸우다 '모두' 전사했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 용병인데... .교황청에서 임금은 지급했을까?? 전사했더래도 지급했겠지?? 나 너무 돈 밝히나...
또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루이16세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600여 명의 병력도 스위스 용병이었다고 한다.. 루이 16세가 '이만 떠나도 좋다'라고 허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혁명군에 맞서싸워 '모두' 전사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스위스 출신의 용병은 용맹함을 넘어 오늘날 신뢰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제 1848년 이후 스위스가 경제적으로 좋아지면서 용병수출은 금하고 있지만 예외가 한군데 있는데 교황의 안전을 책임지는 바티칸 교황청 근위대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들로 로마교황청의 안전은 스위스 용병들에게만 맡긴다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로마 교황 지키다 어쨌든 목숨을 잃은 분들은 너무 안타깝지만 그걸 잊지 않고 계속 의리를 지켜준 바티칸 교황청도 멋지다.
이 외에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친 일화? 에 대한 과거 역사적인 설명이 쉽게 쉽게 씌여져있다. 그림도 물론 한 챕터마다 들어가 있어 그때 당시의 생활상을 그림으로나마 추측할 수 있다. 글 설명이 무슨 소설 읽듯이 술술 읽히니 세계사에 관심있으신 분들 뭔가 정사 보다는 야사에 관심있으신 분(=나)들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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