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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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buy) 것이 달라지면 사는(live) 것도 달라진다."라고 한다. 물건의 구매보다 경험을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한다. 경험을 사는 대표적인 활동이 여행이자 가장 빨리 여행하는 방법이 바로 독서다. 더운 여름 문소영이 이끄는 42가지 다채로운 경험을 땀 흘리지 않고 책 한 권으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여행인가! (호캉스가 별건가)


어릴 때는 에세이, 산문을 읽지 않았다. 읽고 싶고 읽어야 할 훌~륭한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데 다른 사람이 끄적인 파편들을 읽는 시간을 낭비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에세이라면 언제나 대환영이다.(결코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언젠가 책을 쓴다면 '이런 책을 쓰고 싶다'던 생각의 실체가 이 책의 어딘가와 닮아있다.

모든 내용에 100% 공감이란 있을 수 없지만 전체적인 짜임새와 구성이 좋았고 대상을 객관화 할 수 있는 카메라 같은 눈과 기사화로 끝날 수 있는 사건사고, 책, 영화를 비롯한 폭넓은 매체들을 일상으로 끌어들여 공감을 자아냈다. 그 중 [불편하게]는 '내말이~ 내말이~'라며 무릎을 치며 읽었다.



1. 게으르게
무엇을 보고 듣고 읽고 그린다고 꼭 무엇이 되어야 하나? 꽃을 피워야 하나? 하면서도 인간은 늘 누군가의 (특히 자기 자신) 인정욕구에 메말라 있기에 어느 정도 수긍하기도 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과 (굳이 천재들과 비교해서 자학하지 말길) 모두 꽃피는 시기는 다르다는 것! 예능 프로그램에서 '훌륭한 사람은 무슨.. 아무나 돼!"라고 했던 이효리의 말이 생각난다. (난 그래서 그냥 행복한 '문화백수'로 남으련다)


2. 불편하게
피해자 비난, 성폭력,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사람들, 미투,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 모성애에의 강요를 넘어선 모성신화를 부추기는 사회, 동물학대, 가족내 폭력, 성의 상품화(틀을 깨는 예술 영화라고 치부하는 특히 김기덕 영화를 볼때마다 들던 드~러운 기분의 실체) 등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들이 좋다.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만 당할 수 없으니 모두 읽고 불편했으면 좋겠다.


3.엉뚱하게
김영민 교수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를 읽으며 '왜 우리 명절은 재미없을까?', '시월드', '꼰대'라는 단어와 혐오, 피로사회 등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고서와 민속화 들을 보여주는 진정한 명절을 되새기는 글이 신선했다. 제목처럼 전혀 '엉뚱하게'가 아니란 것이 흠이라고...ㅎㅎ


4. 자유롭게
요즘 안사요 열풍인 일본 보이콧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두 나라간의 뿌리 깊은 문제에 눈길이 갔다. 그 외에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는 끝나지 않을 비교와 비교의 대상이 되어 피로한 사회를 살아간다. <멋진 신세계>를 향해 폭주하는 설국열차에 탑승하지 않으려면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을 관조할 수 있는 자유와,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게 아닌 사회적 시스템도 보완되어야 균형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5. 광대하게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이 다 사실일까? 한동안 SNS를 뒤흔들었던, 흰색-금색으로도 보이고 파란색-검정색으로도 보이는 한 장의 드레스 사진에서 부터, 사진이 나오면 그림은 살아남을 수 없을거라던 시대에 모네, 뭉크, 피카소의 성취를 논한다. 요즘 유난히 유행하는 무분별한 '먹방'에 대한 생각과 고전 속 등장하는 음식, 고흐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소박한 식사 장면을 포착해 내는 통찰력이 공감됐다.


6.행복하게
늘 그렇듯 언제나 거기 있어서 당연한 것들이 사라진 후 우리는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와 카르페 디엠(오늘을 잡아라)의 균형을 잡는게 중요하다.


글에서 일방적인 감정이 묻어나면 거부감이 들고 어린 아이 한 명 조차 설득할 수 없는데 그런 점에 있어 균형잡기를 잘 하는 글이다.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을 깨우려 농담을 던지는 그녀의 스승처럼 툭툭 던지는 뼈개그(일명 자학개그)와 에피소드들 역시 책을 단숨에 읽게 하는 MSG이자 질문을 던지고 있어 매력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게으르지'만 '광대한' 이야기 속에서 때로는 '엉뚱하고' 가끔은 '불편함'을 느낄 선택적 '자유'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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