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 정운영 선집
정운영 지음 / 생각의힘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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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을 돌려 주러 도서자료실에 갔다가 신영복씨의 글자가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도서자료실에 자주 들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만에 다시 읽어보는 선생님의 글이 있고 또 처음 접하는 글도 적지 않다. 긴 서문을 쓴 조정래씨의 선생님에 대한 애뜻한 마음은 그분들 사이의 사귐의 방식과 깊이에 경외감을 준다.


동서의 역사를 자유롭게 사유하는 선생님의 폭넓은 지식과 맛깔스럽게 쓰는 그의 문장이야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에 읽게되는 것은 선생님의 젊음에 대한 태도이다. 정운영 선생님이 64학번이고 우리를 가르친 것이 88년이었으니 이제 우리의 나이는 당시의 선생님보다 네살이나 많은 셈이다. 선생님은 60년대 학창시절을 엘리엇의 싯구와 함께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하고 김수영을 읖는다. 가난은 그저 남루할 뿐 비굴할 이유가 없다며 현실에 불만만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왜 혁명에 나서지 않는냐고 등을 떠민다. 나이를 먹고서 그때를 돌이켜 보는 것은 선생님의 글들에서 묻어나는 여전히 젊고 치열한 사유 때문이다.


선생님은 사회대 대형강의실에서 러시아 혁명사를 강의했었다. 당시 트로츠키주의에 대해서 한참 관심이 많은 때라 선생님께 여쭈었더니 별로 신통한 대답을 해주지 않아서 약간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대신 선생님은 쉬는 시간에 불러서 자판기 커피를 사주며 당신의 점심이었던 바께트를 조금 나누어 주었다. 소보루빵 맘모스빵의 설탕 맛 밖에 몰랐던 나에게 선생은 유럽문화의 세련이었다. 강의중에 우리들에게도 뭔가를 써보기를 요구하셨고 발표시키기도 했었다. 얼마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때를 회상했는데 창녕이는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을 자기 나름대로 설명했었고 나는 우리에게 마르크스는 유신의 몽매함을 깨우는 계몽주의에 다름이 아니라는 에세이를 써서 수업시간에 읽었었다.


알튀세르를 위한 추도사 서문은 이제는 잊어버린 이론논쟁에 대한 추억이고 체 게바라에 대한 글은 선생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체의 최후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선집의 마지막 글에서 선생님은 실로 그 이념이니 제도니 하는 화상들이 우리의 삶과 사랑에 제법 근사한 세계를 선물한 적이 별로 없다. 정의와 평화보다는 압제와 수탈이 본령이었다라고 쓰고 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었고 선생님에게서 배우던 우리 그 시절도 이제는 아주 먼 이야기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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