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습니다. 전작을 유쾌하게 봤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 작품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어요. 작가님 작품을 처음 접하시는 분은 살짝 당황스러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개가 굉장히 빠른 글입니다.
기상 악화로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고, 남아있는 객실은 고작 하나. 결국 한방에 함께 묶게 된 규원과 태영.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 난생처음 본 사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체념하고 받아들입니다. 고작 하룻밤이니까요.
크게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요. 단지, 태영이 지나친 워커홀릭이란 게 문제였죠.
편히 잠들려는 규원의 뒤로 연신 타닥타닥 일을 이어가는 태영.
보는 사람이 걱정스러울 정도로 일만 하는 그에게 그만 쉬어라 권하지만, 단번에 거절당합니다.
마치 기계처럼 일만 계속하는 그. 건강을 생각해 부모님을 생각해 어떻게든 설득을 해보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그럼 일을 안 하면 뭘 합니까?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건가 싶을 만큼 툭 튀어나온 질문은 그렇다기엔 순수한 궁금증을 담고 있었어요. 규원은 순간 얼이 빠지고. 기막힘을 삼키며 몰려오던 잠을 쫓아냅니다.
어쩌다 말이 길어진 것인지 두 사람은 살짝 언쟁을 하게 되고, 대화 흐름은 순식간에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얼렁뚱땅 함께 밤을 보내게 된 두 사람.
규원에게는 스치는 하룻밤이었지만 태영에게는 아니었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후로도 줄곧 규원의 생각을 떼어낼 수 없는 그. 쳇바퀴와도 같았던 그의 삶이 드디어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와의 재회를 바라마지 않지만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 하지만 첫사랑을 시작한 그에게 운명은 선물을 하나 던져줍니다.
규원의 직업과 이름, 그리고 그가 예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 태영은 곧바로 그를, 스토킹합니다.
벌써부터 놀라시면 안 돼요. 전개는 아주 널을 뜁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에요.
본격 스토킹을 시작했지만 의외로 쉽게 들키고 맙니다. 진심 어린 고백을 하지만 미친 스토커 꺼지라며 단번에 거절당하고, 그런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따라 다닙니다.
규원이 전 남자친구와의 언쟁에 벗어나지 못하고 끙끙대던 때, 태영은 그 모습마저 열심히 관망합니다. 왜 보고만 있냐 좀 도와달라 뻔뻔한 부탁에도 고개를 흔들며 제가 규원 씨의 뭐라고 개입하냐 더 뻔뻔한 답을 내놓습니다.
결국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태영과의 교재를 선택한 규원. 남자친구 자격을 줄 테니 얼른 나를 구해!
막상 연애를 시작했지만 그 이후도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도무지 진도를 나갈 생각이 없는 태영.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없는, 만족스러운 부분이라곤 유일하게 밤 생활 하나뿐인 상대인데 그마저도 이리저리 빠져나가니, 규원의 불만은 쌓여갑니다. 너 대체 이유가 뭐야 불만이 뭐야 홀로 끙끙대며 고민을 거듭하다 꺼내기 힘든 주제를 드디어 건넸더니 한다는 말이, 아직 우린 손잡을 시기도 안 왔다는 것. 알고 보니 연애 초보인 자신을 위해 친히 조언을 건넨 친구의 장난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거였죠. 얼이 빠지는 답에 규원은 할 말을 잃지만, 곧 열이 오릅니다. 연애는 너랑 나 둘이 하는데 무슨 헛소리를 듣고 그러는 거냐, 빠른 설득 후 비로소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하죠.
그 뒤로도 몇 차례 사건 사고가 생깁니다.
너무 다른 두 사람. 심지어 마음의 깊이마저 달라 둘은 쉴 틈 없이 갈등을 겪죠.
가볍게, 우습게 시작한 연애에 깊은 생각 없는 규원과 달리 태영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처럼 절절합니다.
조금씩 서로의 마음이 가까워진다 싶지만, 이번엔 현실의 벽이 둘 사이를 가로막죠.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태영의 일상은 오직 일뿐입니다. 너무 바쁜 태영. 불규칙하게 터지는 야근은 이미 여러 차례 둘의 데이트를 깨트리고 심지어 규원이 잔뜩 기대하고 있던 여행 계획마저 파투내게 만듭니다.
이게 뭐 하는 건지, 편히 웃고 떠들고 놀려던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깊어진 마음은 규원을 상처 입게 만들고 이리저리 휘두릅니다.
순간 그만둘까 싶어지기도 해요. 이쯤 만났으면 됐지, 평소처럼 가볍게 끝내버릴까.
하지만 끝내 그러질 못합니다. 이미 그럴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린 거였죠.
과거, 쉽게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해온 규원은 태영과의 만남 역시 이대로 끝내는 것이 맞을까 잠시 갈등하지만. 곧 그럴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진지해졌음을 인정해요.
마음의 깊이가 달라졌음에도 둘의 관계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연애 이상, 결혼이 가능한 관계는 아니기에 그저 조금 진지한 마음으로 연애를 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죠.
게다가 주변에 밝히지 않고 둘만 재미있게 만나면 된다는 규원은 그 부분에 예민하고 두려움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달리 태영은 둘 사이가 들키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아요. 규원으로서는 태영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런 와중에 태영에게 호감을 표하는 직장 동료까지 등장하게 됩니다.
눈치 빠른 규원은 건너 전해진 정보만으로도 상대에 대해 훤히 알아채지만 실제 호의 표시를 받는 태영은 전혀 모르죠.
답답함에 혼자 속을 끓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보려 하지만, 놀랍게도 이미 태영이 모든 상황을 끝내버린 후입니다.
그 과정에서 규원의 사소한 실수와 태영의 개의치 않음은 두 사람의 앞으로가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태영 때문에 스스로 흔들림도 감수하게 될 규원과 어떤 것도 규원에게 우선하지 않을 태영. 둘의 미래가 깔끔하게 그려졌습니다.
이미 규원을 스토킹할 때부터 태영은 진즉 미래를 단계별로 설정해둔 상태이지만, 비로소 마음이 맞닿게 된 두 사람은 더욱 돈독한 관계를 이어갑니다.
유쾌한 첫 만남부터 웃음이 절로 나오는 좌충우돌 썸을 거쳐 비로소 진지한 마음을 주고받기 까지. 이 작품은 규원과 태영 두 사람의 통통 튀는 연애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가벼운 내용인 데다 현실적인 것과는 살짝 떨어져 있지만, 분위기에 맞게 과정을 잘 그린 이야기였어요.
작가님 특유의 유쾌한 글로 풀어주셔서 저도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