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세트] [BL] 가로지나 세로지나 꽃은 핀다 (총3권/완결)
카르페XD 지음 / B&M / 2017년 10월
평점 :
쉽지 않은 장르라 구입 전 고민을 제법 했습니다. 작가님 글이 긴 편이다 보니 더 부담이 컸어요. 평범하게 현대 배경을 한 작품도 제법 시간을 소요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과연 읽을 수 있을까. 이벤트 기간이 촉박하다 보니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다 읽고 나선 떠밀리듯 한 선택이 다행이다 싶네요.
같은 장르 글은 한 두 작품 정도 봤을 뿐이라 시작점에선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소개글 확인을 하지 않는데 이 작품은 등장인물과 줄거리 파악을 하고 다시 와야 했어요. 익숙하지 않은 문장에 한참을 헤맸습니다.
소재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무협 장르라고만 생각했는데 판타지도 섞이고, 해당 장르에서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제법 등장하더라고요. 여러 장르가 혼합된 것 같더군요.
설정이 독특해서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기도 했어요. 영혼 이동이나 회귀 설정은 제법 흔하게 보았지만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것이 아닌 단순 이동인 경우는 이 작품이 처음이었습니다. 또 다른 내가 존재하고 다른 인물로 10년을 살다 다시 돌아간다는 설정, 와중에 그 다른 인물은 또 다른 세계를 헤매다 돌아온다는 설정. 단순 요약을 했음에도 굉장히 강렬하죠. 복잡하기도 하고요.
사실 설정만 던져놓았을 뿐 뒷받침하는 설명은 부족해 살짝 엉성하다 싶은 감도 있었지만, 기본 설정은 빠르게 지나는 부분이라 크게 거슬리진 않았습니다. 작가님이 만든 새로운 세계관을 조금 더 풀어주셨으면 싶은 아쉬움만 있네요. 매력있는 부분인데 너무 쉽게 지나가버린 것 같아서요.
1권은 두 사람의 관계와 배경 설명 위주로 진행돼요. 앞으로 진행될 사건 사고들을 위한 서술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 보니 제법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관계 진행은 많이 더뎌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에서 비교적 빠르게 주인공들의 관계진행이 이뤄지고 갈등이나 설정이 풀리는 식이라면 이 작품은 모든 것이 중후반으로 미뤄집니다. 초중반은 모든 설정을 풀어놓는 식이에요.
독특한 설정이 하나 더 나오는데, 몸이 약해진 주인공을 치료하는 과정이 평범하지 않습니다. 사실 해당 장르에서는 새롭다 할 정도의 설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독특해요. 이러다 어느 세월에 연애할래 슬쩍 걱정이 들던 차였는데. 평범하지 않은 치료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집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빠른 진행이었어요. 성격 상 벽이 단단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성격이어서 잔뜩 신경질 내고 취할 건 취하며 받아들이는 쪽이었어요. 물론 주인공이 능구렁이처럼 능수능란하게 다가가기도 했고요.
몸부터 가까워지게 되면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해서 걱정을 조금 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이미 치료 명목으로 이것저것 쏟아부어줄 때부터 한쪽은 이미 명백한 거였고, 반대쪽 역시 설득이 되었든 어쨌든 수긍할 때부터 확정이 된 거였어요. 이미 두 사람 모두 마음 한 곳에 애정, 최소 관심이 싹트고 있었으니 속도가 빨랐습니다. 1권에서 메말랐던 연애 부분이 여기서 넘치게 채워져요. 마음을 자각하고 상대의 마음 역시 확신하고 싶어 질투 작전을 실행할 땐 몹시 즐거웠습니다. 뻔한 설정이지만 등장인물은 뻔하지 않다 보니 상황이 유쾌했어요. 작전 성공을 했는데 왜 눈치채질 못하니...
이미 진즉부터 아낌없이 주는 주인공이었기에 두 사람 사이의 위기랄 건 크게 없었어요. 둘의 성격이 많이 달라 순조로운 와중에도 큰 산 하나가 남아있겠거니 걱정을 했는데 예상과 달랐습니다. 한바탕 충돌이 있긴 하지만 걱정과 정반대의 결과로 마무리돼요. 내가 둘의 마음을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새삼 반성했습니다.
두 사람 만남 전 입에서 입으로 스쳐지나가는 이물질의 존재(등장도 안함)가 있고 살랑살랑 연애를 시작할 무렵 주변이 시끌시끌 한바탕 뒤집어지긴 하지만 정작 둘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일사천리로 서로의 반려가 되기로 약속하죠. 상대의 설명을 듣자마자 성격답게 곧장 청혼을 해서 흐뭇했어요. 늦을새라 곧장 낚아채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로 웃음이 나왔고요.
두 사람의 관계는 장애물 없이 쭉쭉 나아갔고, 그 와중에 사건 사고 역시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습니다. 쓰고 보니 분량이 속도를 논하기엔 지나치게 많네요. 그래도 글 자체가 쓱쓱 잘 읽혀서 분량을 체감할 일이 없었어요. 온갖 설정들이 꽉 들어차 있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서 마지막권까지 금방이었습니다.
던져놓은 설정들이 많아 어떻게 해결이 되려나 싶었는데(걱정은 전혀 되지 않았어요. 주인공 능력이 워낙, 표현 그대로 차원이 다른 수준이니까요)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다소 길었던 1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어요. 등장인물이 제법 많은 편에 속하는데 모든 인물이 제 쓰임을 다했어요. 냉정한 표현이지만 정말 그렇습니다. 쏟아지는 등장인물에 살짝 걱정을 했는데 어느 인물 하나 버릴 것 없이 잘 다뤄주셨어요.
두 사람의 연애에 그치지 않고 마무리까지 완벽하게 해주셔서 깔끔했습니다. 연리화를 피우는데 만족하지 않고 기어코 혼인까지 마친 두 사람의 모습에 한참 웃었어요. 물론 정작 서두른 사람은 둘이 아니었지만(그래도 시기를 고르는 양심 정도는 있었는 데요), 어찌됐든 여러 이들을 뒤통수치고 기어코 서로의 반려가 되어 소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짧은 분량에 아쉬운 마음은 들지만 내용은 만족스러운 후일담이었어요.
시작 전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푹 빠져 읽었네요. 전작에서도 생각했었지만 작가님 글은 장르 불문 참 유쾌한 것 같아요. 이번 작품 역시 생소한 표현들이 범람했지만 아주 편하게 읽었습니다.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