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양장) -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
장이빙 지음, 김태성 외 옮김, 정성진 외 감수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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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원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 해석의 역사적 관점을 재구축하거나 우리로 하여금 마르크스 사상의 개방성과 당대적 가능성을 새롭게 구축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철학사에서 에드문트 후설은 ‘사실 자체로 돌아감’을 현상학의 중요한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훗날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돌아감’은 하이데거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이른바 사유의 본원성으로 돌아감을 통해 현재의 사상사를 새롭게 쓰는 발단이 되었다. 실상 해석학에 있어 그 어떠한 ‘돌아감’도 역사적 관점의 정합(整合)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에서 ‘텍스트로의 돌아감’ 역시 ‘완고한 숭고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마르크스 원전으로의 물러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교조적인 체제 합법성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준비이며 기성의 강제성을 배제시키고 텍스트에 대한 독해를 통해 새로운 ‘도구적 존재성(Zuhandenheit. ready to hand)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중국인들이 과거에 말하곤 했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자체는 우리가 오늘날 얻게 된 최신의 방법과 맥락으로 개방된 시각 속에서 마르크스를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바꿔 말해 해석학적 관점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결코 원초적 대상이 아니라 이미 해석된 역사적 효과가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하지만 근거를 갖는 마르크스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2) 마르크스 철학과 당대성: 마르크스 철학과 당대성의 문제는 결코 새로운 명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지난 1960년대 교조화된 체제에서의 서술 방식을 둘러싸고 구소련의 전통적인 학계가 논쟁을 벌였을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인식틀로써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방식이 완전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한 해석방식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은 구소련의 전통적인 마르크스 철학 해석의 비역사적 성격과 절대적인 담론권력의 불법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실상 마르크스 철학이 반드시 당대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관건은 그와 같은 의도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이전의 경전을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텍스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견실하게 텍스트를 새롭게 펼쳐들어 새로운 역사적 시각 안에서 당대 생활 세계의 새로운 문제들을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장이빙은 마르크스 철학에 관한 텍스트(특히 MEGA2)를 직접 정밀하게 독해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 사상 발전의 맥락을 과학적이고 전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마르크스 철학의 당대성에 대한 언설 역시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 다섯 가지 독해 모델: 그는 우선 마르크스 철학 발전사를 고찰하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다섯 가지 독해 모델’을 추출해낸다. 즉 서유럽 마르크스학 모델, 서유럽 마르크스주의 인간주의 모델, 알튀세르 모델, 구소련과 동유럽 모델, 그리고 중국의 쑨보쿠이 교수 모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가 ‘이끄는 말’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서는 반복하지 않는다.

4) 마르크스의 텍스트의 분류학적 구분: 장이빙은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세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는 책을 읽고 발췌한 노트와 사실을 기술한 노트이고, 둘째는 미완성 수고와 서신이며, 셋째는 이미 완성된 논저와 공개 발표 문헌들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텍스트에 대한 ‘분류학적 구분’이다. 과거 마르크스주의 연구에서 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중시하고 연구에 열을 올렸던 부류는 대부분 셋째 유형의 논저들이었고 둘째 유형의 문헌들 역시 어느 정도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첫째 유형의 텍스트들은 아직 실질적으로 그에 합당한 분석과 연구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장이빙은 첫째와 둘째 유형의 텍스트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서만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과 변혁의 진실한 사유의 맥락과 원인이 되는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을 노트와 수고 등의 텍스트 자체로 돌아가 그에 대한 문헌학적 고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장이빙은 노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르크스의 노트에는 담론의 단절, 범주의 설정, 그리고 이론논리 속의 특이한 이질성이 남김없이 그리고 무형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트 기록은 주로 독서 노트가 중심인데, 이는 마르크스가 독서를 하면서 느낀 점과 해당 도서에 대한 논평을 메모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로부터 학술적 관점의 개요에 실린 이론적 경향성과 최초의 평론, 그리고 논쟁을 통해 형성된 저술 계획과 구상, 그리고 각종 사상이 최초로 형성된 이론적 촉발점과 원초적 단서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첫 번째 텍스트에 대한 ‘상호 텍스트’적 다시 쓰기로, 저자와 일차 텍스트가 만난 후 만들어진 의식적 효과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일반적인 이론 수고와 논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5) 기능적 심층 독해 방법: 장이빙은 ‘기능적 심층 독해 방법’을 제안한다. 이는 알튀세르의 ‘징후적 독해’에서 계시를 받은 것이다. 장이빙의 스승인 쑨보쿠이도 동일한 텍스트에 담긴 이중 논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장이빙은 이 연장선상에서 비교적 성격의 기능적 독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특히 마르크스의 노트를 대할 때, 문자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많은 사고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노트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독해 구조, 예를 들어 전도적인 성격의 텍스트(예를 들어 『파리 노트』), 그리고 수고 텍스트의 복합적인 담론 구조(예를 들어 『1844년 수고』) 등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6) 단어 빈도 통계연구: 텍스트 해석학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단어 빈도 통계연구’이다. 이는 저자가 제3판 수정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책이 근거로 삼는 마르크스의 주요 독일어 텍스트에 대해 불완전하게나마 문헌학적 단어빈도 통계를 진행하면서 명명한 방법론이다. 이는 일본 학자 모치즈키 세이지로부터 얻은 교훈 덕분이다. 단어빈도 통계 방법은 문헌통계학(Biblimetrics)의 전통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단어빈도(term frequency)는 주어진 문헌에서 특정 단어가 그 문헌에 나타나는 횟수를 의미한다. 단어빈도 통계는 연구자가 일정한 연구목표에 따라 통계학 방법을 운용해 서로 다른 문헌 텍스트(예컨대 인터넷 검색엔진, 신문잡지, 역사문건, 개인기록 등)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핵심 어휘들을 수집하고 특수한 기호화 작업을 거친 뒤 정량(定量) 어휘빈도 분석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특정 시기 특정 단어의 사용 빈도수를 통해 마르크스의 개념 형성 과정을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한 사상가의 중요한 텍스트의 모국어 원문에 대해, 지배적 담론 구조에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개념 혹은 범주의 통계와 다른 시기에 발생한 중요한 사상 변이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단어빈도를 통계화해 시기에 따른 비교분석을 진행하고, 아울러 2차원적인 단어빈도 그래프에서 직관의 곡선을 표시해냄으로써 기존의 텍스트학 분석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7) 경제학 맥락의 철학 담론: 부제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책의 새로운 관점의 하나는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이다. 문자 그대로,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의 심층적 맥락에서 그의 철학 담론의 전환을 새롭게 탐색해내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후 최초일 것이다. 1842년 하반기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경제학에 관한 내용이 그의 중후기 학술 연구에서 70% 이상을 차지했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그 비중이 90%에 달했다. 1846년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에게 순수한 철학과 과학적 사회주의는 독자적인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 경전에 대한 텍스트 독해를 통해 경제학이 대면하고 있는 각종 상황이 바로 당시의 사회 현실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로부터 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깊이 있는 탐구를 완성해야 했다. 그리고 이 주도적인 연구 자체의 실질적인 과정을 분명히 해야만 철학과 과학적 사회주의 발전 경로의 진정한 기초를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 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철학, 경제학,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현실적 비판(과학적 사회주의)은 하나의 완전하고 시종일관 분리되지 않는 총체로서, 각종 이론 연구의 상호 간에는 상호 침투하고 포용하는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연구하려면 마르크스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철학적 분석이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와 완전히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이 두 연구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현실적 목적과 분리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장이빙은, 마르크스의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마르크스의 경제학 저작을 진지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이상학적 거품 속에서 헤매게 된다. 이것은 또한 『마르크스로 돌아가다』가 본래 의도한 것이기도 하고 이 책의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 겨냥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8) 마르크스의 3대 담론 전환: 유물론―역사유물론―역사현상학: 장이빙은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세 개의 이론 정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마르크스 철학사상 발전과정의 3대 담론 전환 및 인식의 비약이라 칭하고 있다. 첫째 정점은 1844년으로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청년 마르크스가 수립한 인간주의 사회현상학의 󰡔파리 노트󰡕 가운데 󰡔밀 노트󰡕와 󰡔1844년 수고󰡕다. 둘째 정점은 1845년 1월에서 1846년 12월까지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마르크스의 첫 마르크스주의 문헌들, 즉 광의의 역사유물론을 창립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와 󰡔독일 이데올로기󰡕, 그리고 󰡔마르크스가 안넨코프에게󰡕이다. 셋째 정점은 1847년부터 1858년까지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의 협의의 역사유물론 학설과 역사인식론 위에 역사현상학을 수립한 󰡔57-58 수고󰡕다.

마르크스 철학사상 발전의 첫 번째 전환은 청년 헤겔의 관념론에서 일반 유물론으로,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전환한 것이다. 장이빙은 이 전환이 마르크스주의로의 전향이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환은 󰡔크로이츠나흐 노트󰡕에서 시작되어 󰡔헤겔 법철학 비판󰡕과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를 거쳐 󰡔파리 노트󰡕 후기와 󰡔1844년 수고󰡕에서 최고점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 시기 마르크스의 사상 전환의 현실적 기초는 마르크스의 역사연구와 사회주의 노동자운동 실천의 접촉이었다. 하지만 이 단계의 후기에 마르크스는 이미 첫 번째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사상 배경과 사고의 맥락을 당시 유럽사상사의 총체적 단면에 놓는다면, 마르크스의 이 사상 전환은 단순한 이론 혁신이 아니라 여러 배경 요소의 제약 아래 발생한 논리적 승인이다. 배경 요소로는 포이어바흐의 일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 외에 청년 엥겔스와 헤스, 프루동 등의 경제학에 기초한 철학 비판과 사회주의 관점도 있다. 그리고 청년 마르크스에게 표면적으로 부정당한 고전경제학의 사회유물론의 사유 경로와 방법도 있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사상 전환의 자료로 삼은 셈이다.

마르크스 철학사상의 두 번째 전환은 바로 마르크스주의 철학혁명, 즉 마르크스의 첫 번째 위대한 발견인 광의의 역사유물론을 수립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두 번째 경제학 연구(󰡔브뤼셀 노트󰡕와 󰡔맨체스터 노트󰡕) 과정에서 발생한 이 철학사상의 혁명은 「포이어바흐 테제」에서 시작하여 󰡔독일 이데올로기󰡕를 거쳐 󰡔마르크스가 안넨코프에게󰡕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전환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기초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비판의 기초가 형성된 것이었다. 장이빙의 새로운 관점은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실천과 기타 철학 관념의 영향을 받은 외에도 고전 정치경제학에서의 스미스와 리카도 사회역사관의 사회유물론에 대한 승인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초월 위에 역사유물론과 역사변증법을 수립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천유물론을 기본 입장으로 한 일정한 사회역사 단계의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의 사회관계에 대한 연구, 특히 과학적인 역사적 존재에 대한 ‘본체’적 규정에 관한 사유는 마르크스 철학 관심의 이론적 초점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연구의 새로운 단계는 사회현실의 경제학 및 역사학에 대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 특별한 혁명 시기에 마르크스주의 철학변혁의 발단과 정치경제학에 대한 과학 연구의 시작은 전통 연구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르크스가 먼저 역사유물론을 창립하고 나서 뒤이어 정치경제학 연구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철학사상의 세 번째 전환은 협의의 역사유물론과 역사인식론으로부터 역사현상학의 창립이라는 위대한 인식의 비약이다. 이러한 변화는 마르크스의 세 번째 경제학 연구에 기초한다. 이 변화는 󰡔철학의 빈곤󰡕에서 시작되어 󰡔런던 노트󰡕에서 크게 발전한 다음 󰡔57-58 수고󰡕에서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그 기초는 직접 마르크스 경제학 혁명의 탐색, 즉 마르크스의 두 번째 위대한 발견인 잉여가치 이론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1847년 이후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를 생산력 발전의 최고점(‘인체’)으로 하는 인류 사회역사에 대해 과학적 비판과 고찰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이전 자본주의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의 연구에서 인류사회 발전의 역사본질이 처음으로 과학적 설명을 얻게 되었고 모든 사회역사 발전의 특수한 운행법칙도 처음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주위환경)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관계가 처음으로 진실한 사회역사의 정경 속에 구체적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창립한 협의의 역사유물론 철학이론의 주요 내용이다. 자본주의 사회화라는 물질 대생산 발전과정에서 분업과 교환이 형성하는 생활조건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노동관계의 객관적 외면화(가치) 및 자본주의 시장조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물에 노예화되는 전도된 관계(자본)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역사적으로 유사 이래 사회생활 분야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차원과 내재구조를 구축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독특한 비직접적 역사인식론의 완전히 새로운 철학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각종 전도와 사물화된 경제관계 가상을 통해 비판적으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물신숭배를 배제하고,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을 설명하게 된다. 이것이 마르크스 역사현상학의 주체적 내용이다.

9) 다섯 번의 전환과 전도: 장이빙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마르크스에게 5차례의 방법론 전환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전환은 단순하고 돌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여러 차례 다차원적인 전진을 거쳐 완성된 복잡한 과정이다.

1838년부터 계산하면 첫 번째는 1843년 청년헤겔학파에서 포이어바흐식의 일반 유물론으로의 전향이었고, 두 번째는 1845년에 일반 유물론에서 방법론상의 역사유물론으로의 전환이었으며, 세 번째는 1847년 철학에서 현실 비판으로의 전향이었고, 네 번째는 1857-1858년에 역사현상학의 비판논리 실현이었으며, 다섯 번째는 경제학 표현 논리방법의 확립이었다.

시각을 바꿔보면 상술한 변화들은 마르크스 철학논리의 다섯 차례 전도를 말해준다. 첫 번째는 1843년 마르크스 철학 전제의 전도로서, 감성적 구체에서 출발한(실제로는 아직 비역사적 추상임) 논리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는 1845년 인지방법의 전도로서, 실천과 생산의 역사 ‘본체’라는 현실에서 출발한 논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연구내용의 전도로서, 역사현실에서 출발한 논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는 1857-1858년의 자본주의 사회 대상화의 표상 현상학의 전도였고, 다섯 번째는 경제학 이론 구축의 형식 전도, 즉 추상에서 구체로의 재귀환이었다. 물론 이처럼 복잡한 사상변화의 과정은 본질적으로는 상술한 3대 담론 전환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상의 길안내는 표지판의 위치를 지시할 뿐이다. 자세한 길 찾기는 독자들이 만보객(flâneur)이 되어 수행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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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문화정체성과 문화정치 ㅣ 문화과학 이론신서 74
임춘성 지음 / 문화과학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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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혁개방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보다 8년 이른 1978년 시작되었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지 소련 기준으로는 30년이 갓 넘었지만 중국 기준으로는 40년이 다 되어가는 셈이다. 개혁개방 이후의 사회주의 사회를 지칭하는 포스트사회주의(postsocialism/postsocialist)라는 용어가 출현한 것도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포스트사회주의에 대한 이해는 논자에 따라 다양하다. 아리프 딜릭(Arif Dirlik)은 일찍이 사회주의적 이상이 현실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배제된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한 상황’을 포스트사회주의로 설정하는 동시에 이를 ‘지구적 자본주의’와 대립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개혁개방 시기에 ‘혁명적 사회주의’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으니, 이는 ‘사회주의의 합리성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딜릭이 포스트사회주의를 지구적 자본주의의 대립물로 설정했다면, 폴 피코위츠(Paul Pickowicz)는 포스트사회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적 카운터파트로 설정한다. 사회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포스트사회주의라는 독자적인 사회구성체를 제안한 피코위츠는 중국에서의 포스트사회주의를 일종의 ‘감정구조(structure of feeling)’로 인식했다. 그런가하면, 장잉진(張英進)은 포스트사회주의를 포스트마오 시대의 다양한 문화경관으로 파악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관방에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라고 한 것에 빗대어,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라는 해석도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중국 특색의 신자유주의’라 하고, 앨빈 소(Alvin Y. So)는 중국이 동아시아 발전 모델에 가까운 국가 발전주의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장쥔(ZHANG Jun)의 경우, ‘얼룩덜룩한 자본주의(variegated capitalism)’라고 하여 현재의 중국이 복잡하고 혼종된 발전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회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을 단일한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 자본주의를 적극 수용해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시행하고 있는 중국을 ‘이행(transition)’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설득력 있을 것이다. ‘중국의 장기 근현대(the long-term modern China)’ 시각에서 보면,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반식민․반봉건 사회를 거쳐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즉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했다. 그리고 지금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를 통과하는 중이다. 관점을 바꿔 말하면, 아편전쟁 이후 저급한 자본주의를 거쳐 1949년 이후 국가자본주의,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를 경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행의 관점은 중국이 서양식 시장 자본주의로 이행할 것이라는 가정을 경계한다. 그렇다고 ‘현실 사회주의’가 지속될 것으로 전제하지도 않는다. 현재 중국과 중국인들은 무엇인가로 이행 중이다.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민주로의 이행을 희망하고 언론인들은 언론의 자유와 더 큰 민주로의 이행을 원하며 많은 중국인들은 더 많은 재화와 더 나은 수준의 삶으로의 이행을 원한다. 비자본주의적이면서 현실 사회주의와는 다른 제3의 길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포스트사회주의를 개혁개방 이후 중국을 관찰하는 시야로 설정한다. 포스트사회주의는 문화대혁명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30년’을 부정하고 그것과 단절되는 측면과,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음에도 문혁의 기제가 여전히 관철되는 측면을 동시에 지적한다는 장점이 있다. 즉 사회주의의 지속(after, 後)과 발전(de-, 脫)을 절합(articulation)시키고 있는 중국 ‘개혁개방’ 시기의 특색을 요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효하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아리프 딜릭의 결기를 본받아 지구적 자본주의에 대립하는 그 무엇으로 설정하고 싶지만 새로운 유토피아를 만들어 내기 전에는 그것이 쉽지 않음도 인식하고 있는 수준의 시야임을 밝혀둔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급변하는 추이를 따라가며 문학적으로 분석해 보려 노력한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다. 좌익문학 운동을 주제로 쓴 박사학위논문을 마무리하고 목포대학에 부임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노력은 ‘신시기’ 소설을 통해 시대 상황을 읽는 방법으로 시작되었고, 학제간 만남이 빈번해지면서 ‘문학 너머’를 넘보게 되었다. 그 와중에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만난 것이 1996년 무렵이었다. 인문대 동료교수들과 문학이론 공부를 시작하며 자연스레 문화연구에 입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 후 20년간 문화연구와 중국연구(Chinese studies)를 결합한 공부의 결과물이다.

‘문화연구로의 전환(cultural studies' turn)’은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 전환은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학자들 사이에서 1970년대 초반부터 문화를 당대 토론의 초점으로 만들기 시작한 운동이다. 그것은 이전 사회과학의 주변 분야에서 나오게 된 다양한 새로운 이론적 충격에서 비롯된 광범한 분야를 포함한다. 포스트구조주의로부터 비롯된 지적 혁명은 바로 ‘문화적 전환’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진행되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화적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는 문화연구 외에도 ‘공간적 전환(spatial turn)’ ‘번역 전환(translation turn)’ 등이 포함된다.

‘문화연구로의 전환’은 유독 한국의 중문학계에서는 그 반향이 더뎠다. 문화연구의 특징인 학제간 융복합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개혁개방 이후 중국 대륙에서 성과를 낸 학자들은 대부분 ‘한 우물 파기’ 식의 분과학문 연구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학제간 대화를 진행하며 연구에 전념했다는 면에서 넓은 의미의 ‘문화연구’ 종사자라 할 수 있다.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리쩌허우(李澤厚)는 미학과 철학, 사상사 등을 넘나들며 마지막 양식(late style)으로 ‘인류학 역사본체론’을 제창했고, 첸리췬(錢理群)은 문학과 사상을 넘나들며 루쉰(魯迅) 연구부터 마오쩌둥(毛澤東) 연구까지를 아울렀다. 루쉰 연구에서 시작해 사상과 문화연구를 넘나드는 왕후이(汪暉), 중국문학과 일본사상사를 오고가며 동아시아 시야를 확보한 쑨거(孫歌), 그리고 문화연구로의 전환을 분명하게 표명한 왕샤오밍(王曉明)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하나의 분과학문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실천적 아젠다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의 전통 분야인 문사철(文史哲)을 토대로 삼아,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 범주와 문화연구, 지역연구, 포스트식민연구, 인지과학 등의 신흥 학문까지 아우르면서 융복합적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문화연구의 발원지인 영국 버밍햄학파는 리비스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되었다. 리비스주의는 ‘문화의 연구(study of culture)’를 주장했는데, 이는 대중문화를 무정부 상태로 간주하고 비판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버밍햄학파의 문화연구는 대중문화 연구에 중점을 두었다. ‘문화의 연구’에서 대상으로 삼은 것은 고급문화였고, ‘문화연구’에서는 고급문화 위주의 전통을 비판하면서 대중문화를 연구 시야에 넣었던 것이다. 새로운 단계의 문화연구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장벽을 타파하고 양성문화에 대한 학제간 융복합적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리비스주의의 ‘문화의 연구’로부터 버밍햄학파의 ‘문화연구’로, 이제 다시 ‘문화에 대한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of culture)’ 단계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분, ‘문화의 연구’와 ‘문화연구’의 장벽을 타파하고,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문화 개념을 새롭게 제출하면서 그것을 ‘문화적으로’ 연구하자는 것이다. 고급문화 중심의 리비스주의가 1단계였고, 이를 비판하고 대중문화 중심의 문화연구를 제창한 버밍햄학파가 2단계였다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구분하지 말고 양성문화를 발굴하고 악성문화를 지양하는 새로운 3단계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는 기존의 ‘문화연구’의 입장에서 보면 연구의 대상을 확장하는 것이고, ‘문화의 연구’ 입장에서 보면 연구 방법론을 확립하는 장점이 있다.

 

‘혁명의 80년대’가 저물어갈 무렵 뜻이 맞다고 생각했던 동업자 몇과 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다. 당시 타이완 유학파들의 반공 실증주의적 학풍에 식상해 새로운 검을 주조하자는 취지에서 그 모임을 ‘주검회(鑄劍會)’라 명명했다. 얼핏 ‘주검’을 연상케 하는 이 단어는 루쉰의 단편소설 「주검(鑄劍)」에서 따온 것이었다. ‘검을 벼리다’라는 동빈(動賓)구조는 ‘벼린 검’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나에게는 검을 제대로 벼리려면 ‘주검’을 각오해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때 벼리던 검은 몇 년 되지 않아 폐기처분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때 벼리려던 검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곤 다짐한다. 언젠가 다시 제대로 된 검을 벼려보겠노라고.

이 책을 마무리하는 시간은 탄핵정국의 촛불혁명 진행과 맞물려 있었다. 지난 가을부터 시작된 촛불혁명은 나를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혁명의 80년대’에 후배들과 함께 공덕동 로터리와 남대문로 등에서 격렬하게 시위하며 맡았던 최루탄 가스가 ‘1987년 체제’로 귀결되었던 기억이 새로워, 여러 차례 동료와 후배, 그리고 마침 한국을 방문한 외국 친구들과 광화문 네거리 현장에 나가곤 했다. 한 개인에게 30년은 반생(半生)에 가깝지만 역사에서는 한 순간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1987년이 그러했듯이 2016년 가을부터의 시간은 특별한 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역사가 단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1987년을 반면교사로 삼아 촛불혁명을 진정한 ‘발란반정(撥亂反正)’의 단계로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근대 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 실행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녀가 보기에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인민민주 원칙’을 위해 ‘대의제’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의제’가 ‘인민민주 원칙’을 억압하는 현상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민주주의의 역설’이라 명명했다. 우리는 이 ‘역설’을, 인민이 민주적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한 지도자가 당선 이후 인민의 뜻을 대표하지 않는 상황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은 어지러움이다. 마침내 우리는 그러한 ‘어지러움을 평정(撥亂)’했다. 이제 ‘정의로 돌아가야(反正)’ 한다.

 

돌이켜 보면 이 책에 묶인 글들은 혼자 썼지만 그 과정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먼저 ‘문화기호학’ 세미나를 함께해온 목포대학교 동료 교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강내희 교수가 주관하는 ‘인지과학’ 세미나는 ‘문화기호학’ 세미나와 함께 최근 내 공부를 견인하는 쌍두마차다.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두 분야를 조만간 글에 녹여내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맑스 코뮤날레’ 중국세션 멤버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의 일부는 2015년과 2016년 지식순환협동과정 대안대학 4쿼터에서 강의 자료로 활용했었다. 어려운 내용을 경청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내던 대안대학 학생들과의 만남은 전에 없던 신선한 자극이었다.

지속적으로 읽고 쓸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준 목포대학교에도 감사드린다. 이 책에 실은 글들은 대부분 단편논문으로 발표한 것들이다. 게재를 허락해준 󰡔중국현대문학󰡕과 󰡔문화/과학󰡕을 비롯한 여러 간행물에 감사를 표한다. 아울러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은 이 책을 완성하게 한 주요한 계기이자 동력이었음을 밝혀둔다. 글의 출판을 흔연히 허락해 주신 문화과학사의 손자희 선생께 감사의 말을 드린다. 특히 출간에 임박해 생각지 못한 암초를 만났을 때 따듯한 격려와 믿음을 보내주신 덕분에 난관을 헤쳐 나올 수 있었다. 󰡔문화/과학󰡕과의 만남에 다리를 놓아주고 ‘맑스 코뮤날레’ 및 지식순환협동조합을 함께 하는 심광현 선생에게도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3년 전 ‘문학사 담론’ 책을 낼 무렵 사우(師友) 이재현 선생이 ‘나름의 목소리’를 내라고 충고했을 때 ‘학이사(學而思)’의 경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었다. 지금 새로운 책을 내면서 돌아보니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자평하면서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갈수록 박람강기가 쉽지 않지만 새롭게 가다듬으며 발분(發憤)을 기약해 본다.

2017년 3월 31일

임 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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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통속문학사 - 상 ㅣ 중국학술총서 27
판보췬 지음, 임춘성 외 옮김 / 차이나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옮긴이 후기

 

 

이 책은 판보췬范伯群 선생의 󰡔중국현대통속문학사中國現代通俗文學史(揷圖本)󰡕(北京大學出版社, 2007年)를 번역한 것이다. 1931년생인 판보췬 선생은 1955년 푸단(復旦)대학을 졸업했고 200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수십 년간 쑤저우蘇州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했으며 퇴직 이후에는 푸단대학 고대문학연구중심에서 연구 활동을 지속했었다. 중국 현대 작가 위다푸郁達夫에 대한 연구로 본격적 연구 활동을 시작한 판 선생은 이후 루쉰魯迅, 빙신冰心 등으로 지평을 넓혔고,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중국 사회 전반에 억압 분위기가 사라지는 등 학문 연구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에 통속문학으로 연구 방향을 전향하여 학문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판 선생의 학문적 성과는 현대 통속문학 연구라는 분야를 개척하여 연구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속문학 연구의 가치와 의미를 제고했고 중국 근현대 통속문학을 문학사 연구 시야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든 것이다. 문학사 양날개론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주장을 이제 대다수의 문학연구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원앙호접파문학자료鴛鴦蝴蝶派文學資料󰡕(1984), 󰡔예배육의 호접몽禮拜六的蝴蝶夢󰡕(1989), 󰡔중국근현대통속작가평전총서中國近現代通俗作家評傳叢書󰡕(1994), 󰡔중국근현대통속문학사中國近現代通俗文學史󰡕(2000) 그리고 󰡔중국현대통속문학사󰡕(2007) 등 그가 직접 저술하였거나 주편을 맡아 내놓은 저서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데 지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중 󰡔중국현대통속문학사󰡕는 판 선생 일생의 열정과 노력, 학문의 깊이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최대 역작이다. 판 선생은 2001년도 쑤저우대학을 퇴임한 후 5년의 시간을 공들여 이 저서를 내놓았다. 중국에서 이 책이 각광받는 이유 중 하나는 300여 장에 이르는 각종의 희귀 사진과 그림 때문이다. 이 사진과 그림을 수집하기 위해 판 선생은 수없이 발품을 팔았을 것이며 먼지 쌓인 자료를 끊임없이 뒤졌을 것이다. 노학자의 열정과 노고가 느끼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사진과 그림 자료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내용이 부실하다면 그리 환영 받지 못할 것이다. 베이징대학 쿵칭둥孔慶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판 교수가 25년 동안 이 책의 사진과 그림을 모았다면 내용을 위해서는 30년 가량의 시간을 준비했다고. 외면적으로만 보면, 이 책은 판 선생이 주편한 󰡔중국근현대통속문학사󰡕보다 소략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따지면, 이 책이 오히려 더 정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번잡하고 잡다한 내용이 덜어지고 정리되었다는 느낌이 확연하며 작품 외적인 상황, 말하자면 작가간의 교류 관계, 문학잡지 발행의 내막에 관한 서술 등 통속문학계 전반의 작동 기제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학문적 정합성과 엄정성을 넘어 판 선생의 자유로우면서도 유연한 학문적 태도와 깊이 있고 너른 학문의 품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편 이 책이 각광 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후학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준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간 중국현대문학사에서 다루지 않았거나 잠시 이름만 거론하고 지나친 수많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 소개하고 있으며, 일반 독자 혹은 서민과 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세계(말하자면, 통속문화계와 그 밑바탕이 된 도시의 일상 사회)를 비교적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잃어버렸던 한쪽 세계를 되찾은 듯한 느낌이랄까. 이런 이유로 앞으로 중국에서 이 책에서 다뤘던 작가와 작품, 문학 및 문화적 사건에 대한 재조명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판 선생은 2004년 「나그네: 석양 노을 아래에서의 방황」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학술 경력을 ‘성가(成家)―전환―회귀’의 세 단계로 나눈 바 있다. 루쉰, 위다푸, 빙신 등의 작가를 연구하던 ‘성가’ 단계에서 통속문학 연구로 ‘전환’해 이제 총체적 근현대문학사 연구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제3단계 ‘회귀’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문학사 담론의 의의에 대해서는 「해제」에서 언급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중국현대통속문학사』의 독특함은 매체 관련 서술에 구현되어 있다. 상하이는 중국 근현대 도시문화의 최초 발상지이자 서식지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중국 근현대문학과 예술은 최소한 그 탄생과 발전의 초기 단계에 자연스레 상하이를 중심으로 삼았다. 일반적으로 근현대문학은 대도시의 시민을 주요 독자로 삼기 마련이고 도시 대중을 기본 독자로 삼자면 매체의 힘을 빌어야 한다. 경제 발전은 상하이 도시문학 흥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우선 독자층이 증가했고 그와 비례해 문학 간행물이 성행했다. 판보췬 선생에 따르면, 1949년 이전 중국에 세 차례의 문학 간행물 붐이 있었다고 한다. 1902-1907년의 『신소설新小說』과 『수상소설繡像小說』 등, 1909-1917년의 『소설시보小說時報』와 『소설대관小說大觀』 등, 그리고 1921년의 『소설월보(小說月報)』와 『토요일(禮拜六)』 그리고 『자라란(紫羅蘭)』 등이 그것이다.(3장, 6장, 9장 참조) 이 잡지들은 대부분 상하이에서 발간되었다. 사실 루쉰이 4대 견책譴責소설의 하나로 지목했던 『관장현형기官場現形記』의 작가 리보위안李伯元은 대형신문 『지남보指南報』(1898.6.6. 창간)의 주필을 이어받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 최초의 소형신문(小報)인 『유희보遊戱報』(1897.6.24. 창간)의 주편을 맡아 소형신문 붐을 일으켰다. 이후 신해혁명 이전까지 상하이에는 약 40종의 소형신문이 간행되었는데, 위의 4대 견책소설은 바로 이 소형신문에 연재되면서 근현대 상공업의 번영과 대도시의 흥성을 반영하고 피드백 하는 사회소설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매체와 관련된 문학사 서술은 다른 어떤 문학사도 범접할 수 없는 독특함이다. 판 선생의 문제의식을 20세기 중국문학 전반에 확장시키는 것은 이후의 과제일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출판사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2007년 당시 중국학 전문 신흥 출판사로 주목받던 차이나하우스의 이건웅 사장이 베이징대학출판사로부터 직접 판권을 입수해 당시 내가 회장으로 있던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에 번역을 제안했던 것이다. 이미 3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 중국현대문학학회’는 초창기의 ‘셴다이(現代: 1917-1949)’문학에 치우쳤던 상황을 극복하고 이른바 진다이(近代: 1917년 이전)와 당다이(當代: 1949년 이후) 문학을 아우르고 있던 참이었고, 그동안 엄숙문학 위주의 연구 관행에 통속문학의 문제의식을 아우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판사의 제안을 흔연히 수락했다. 그리고 통속문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6명으로 구성된 번역팀을 구성했다. 46배판의 본문 596쪽의 분량을 한두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모두 6명이 나누어 번역하였다. 한국어판 서문과 자즈팡과 리어우판의 서문 두 개와 서론, 제1장은 임춘성이, 제2장과 제4장은 신홍철이, 제3장, 제6장, 제9장, 제14장은 신동순이, 제5장, 제8장, 제20장, ‘후기를 대신하여’는 김봉연이, 제7장, 제11장, 제15, 16, 17장은 유경철이, 제10장, 제12, 13장, 제18, 19장은 전병석이 맡아 번역했다. 나눠서 번역한 후 용어와 작품명 등을 통일하고 유경철이 한 차례, 임춘성이 두 차례 통고(統稿)했다. 그럼에도 미진한 부분은 옮긴이의 책임이다.

번역을 시작한 후 마냥 미뤄지는 작업을 기다려준 이건웅 사장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아울러 수많은 도판과 번거로운 고유명사 표기 등을 꼼꼼하게 작업해준 편집부 식구들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강호 제현의 질정을 기대한다.

2014년 8월 24일

두 번째 통고를 마치고, 옮긴이를 대표해

임 춘 성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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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현대통속문학사 - 상 ㅣ 중국학술총서 27
판보췬 지음, 임춘성 외 옮김 / 차이나하우스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중국 ‘근현대’문학사에서 ‘신문학(新文學)’은 이른바 ‘구문학’을 비판함으로써 성립하였다. 그러므로 신문학 제창자들은 과장된 목소리로 ‘신문학’이 아닌 문학을 일괄적으로 ‘지주사상과 매판의식의 혼혈아’, ‘반봉건(半封建)․반식민지(半植民地) 십리양장(十里洋場)의 기형적인 태아’, ‘유희와 소일거리(消遣)의 금전주의’라는 식으로 매도하였고 자신을 그들의 대립항에 놓았다. 그러나 21세기 통속문학의 문제제기는 ‘신문학’이 ‘구문학’ ‘지우기(erasion)’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했던 것이 과연 정당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

1949년 본격화된 ‘셴다이’문학사 연구단계에서 연구자들은 5`4 이래의 ‘셴다이’문학을 ‘좌파문학’으로 축소 해석했다. 그 결과 ‘셴다이’문학은 혁명문학논쟁 이후 급속하게 좌경화되었고 동반자문학이나 우파문학은 그 존립 자체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으며, 특히 ‘옌안(延安) 문예좌담회’에서 ‘인민문학’ 이념형이 제출된 후에는 라오서(老舍), 바진(巴金) 등의 이른바 ‘민주주의 작가’들조차 ‘셴다이’문학사에 발붙이기 어려웠다. 이는 1949년 이후 ‘좌파문학’ 독존의 관점에서 1917-1949년까지의 문학을 해석한 것이다. 류짜이푸는 이런 시대 분위기를 ‘독백의 시대’라고 개괄하였다. 이 용어는 1949년부터 문화대혁명 종결까지의 시기를 개괄한 것으로, 중국 ‘셴다이’문학사 연구시기와 일치한다. ‘20세기 중국문학사’의 공헌의 하나는 바로 ‘셴다이’문학사가 억압했던 동반자문학과 우파문학을 ‘근현대’문학사의 연구시야로 복원시킨 것이다.

‘신문학’이 ‘구문학’의 즉자적인 대립 개념이고 ‘셴다이’문학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신민주주의혁명기의 좌파문학과 동일한 개념이라면, ‘20세기 중국문학’의 개념은 첸리췬(錢理群)과 천쓰허 등이 나름의 고민과 전망을 담은 참신한 개념이었다. 천쓰허는 이를 “셴다이문학의 연구 대상을 해방시켰을 뿐만 아니라 연구자 자신의 학술 시야도 해방시켰다”고 평가했다. 이후 ‘20세기 중국문학’이라는 용어는 중국문학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이 되었고, 한국의 중문학계에서도 낯설지 않은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20세기 중국문학’이라는 기표는 ‘세계문학으로 나아가는 20세기의 중국문학’이라는 양적인 규정과 ‘민족영혼의 개조’라는 사상계몽적 주제를 가진 ‘반제반봉건 민족문학’이라는 질적인 규정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상의 맥락에서 고찰할 때 판보췬(范伯群)의『중국 ‘셴다이’ 통속문학사(中國現代通俗文學史)』의 문학사적 의미가 자명해진다. 그것은 ‘20세기 중국문학사’가 ‘우파문학’을 해방시킨 것에 뒤이어, ‘신문학사’가 배제시켰던 ‘통속문학’(구문학, 전통문학, 특히 전통 백화문학, 본토문학, 봉건문학)을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연구 시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판보췬은 2000년 4월 󰡔중국 진셴다이 통속문학사(中國近現代通俗文學史)󰡕(상․하)를 주편했는데, 이는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의 새로운 단계를 알리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본문만 1,74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사회․언정(社會言情), 무협․당회(武俠黨會), 정탐․추리(偵探推理), 역사연의(歷史演義), 골계․유모(滑稽幽黙), 통속희극(通俗戱劇), 통속간행물(通俗期刊編) 등 일곱 분야와 대사기편(大事記編)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이는 하위장르의 상대적 독립성을 감안(勘案)하고 존중한, 장르별 문학사의 대작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진셴다이(近現代) 시기에 ‘열등하긴 하나’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좋아했던’ 통속문학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중국 ‘진셴다이’ 통속문학은 청말민초(淸末民初)의 대도시 상공업 경제 발전을 기초로 삼아 번영․발전한 문학을 가리킨다. 그것은 내용면에서 전통의 심리기제를 핵심으로 삼았고 형식면에서 중국 고대소설전통을 양식으로 하는 문인의 창작물 또는 문인의 가공을 거쳐 재창조된 작품을 계승했다. 그것은 기능면에서 흥미와 오락, 지식성과 가독성(可讀性)을 중시했지만 ‘즐거움에 가르침 얹기(寓敎於樂)’의 권선징악의 효과도 고려했다. 그것은 민족의 감상습관에 부합하는 것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시민층 위주의 독자군을 형성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정신적 소비품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그들의 사회`가치관을 반영하는 상품성 문학이 되었다.

 

위 인용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 ‘진셴다이’ 통속소설이 대도시의 상공업 경제의 발전을 토대로 번영`발전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도시통속소설’이라는 명명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셴다이’문학사 또는 ‘20세기 중국문학사’의 주요한 유파인 ‘사회해부파’ 도시소설이나 ‘신감각파’의 심리분석소설과 달리, 현대 도시생활에서 광범위한 제재를 선택하여 재미있고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다양한 사회 풍경화를 제공하였다. 이 작품들은 중국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심태(cultural mentality)를 잘 파악함으로써 사회의 각종 세태와 인간을 반영하는 데 뛰어났다. 이 소설들은 고대 백화소설의 언어 전통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문학에서 배운 기교를 적당히 융합할 줄도 알았다. “그들은 민족의 전통형식을 숭상하는 동시에 외국문학에서 창작기교와 살아있는 문학언어를 배웠다.”(范伯群 2000, 21쪽)

특히 문학사 연구와 관련된 아래의 언급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20년 동안 ‘진셴다이’문학사 연구자들은 한 가지 공통 인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진셴다이’ 통속문학을 우리의 연구 시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순문학과 통속문학은 우리 문학의 두 날개이므로, 이후 편찬되는 문학사는 두 날개로 함께 나는 문학사여야 한다.

최근 20년 동안 ‘진셴다이’문학사 연구자들은 모두 한 가지 관점을 수용하고 있다. 과거 ‘진셴다이’문학에서 통속문학의 중요한 유파인 ‘원앙호접-󰡔토요일󰡕파(鴛鴦蝴蝶-󰡔禮拜六󰡕派)’를 역류(逆流)로 본 것은 좌경사조의 문학사적 표현이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판보췬이 제시한 공통 인식(共識) 변화의 대표적인 예를 첸리췬 등이 펴낸『중국 ‘셴다이’문학 30년(中國現代文學三十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초판본(1987년, 上海文藝出版社)과 수정본(1998년, 北京大學出版社) 사이에 11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와 상하이에서 베이징이라는 출판공간의 변화가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정’ 내용이다. 저자들을 대표하여 첸리췬은「후기」에서 “총체적인 변동” 없이 “개별적인 조정”(665쪽)을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 ‘상당한’ 조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판보췬이 말한 ‘공통 인식’과 관련된 사항을 들자면, 초판본에서는 장(章)과 절(節)의 제목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통속소설’에 대해 수정본에서는 세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첫 번째 10년’(1917~1927년), ‘두 번째 10년’(1928~1937년 6월), ‘세 번째 10년’(1937년 7월~1949년 9월)에서 각각 ‘문학사조와 운동’, ‘소설’, ‘신시’, ‘산문’, ‘희극’ 등의 장이 서술되고 있는데, ‘통속문학’은 바로 이들 장르와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요컨대 통속소설을 문학사 연구 범주로 받아들여 매 시기 그 주요 사항을 서술하게 된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근본적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이다.『중국 ‘셴다이’문학 30년』의 저자들은 통속문학을 연구 대상의 일부로 편입시킨 정도에 그쳤을 뿐, 아직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두 날개로 함께 나는 문학사의 인식에까지 이르지는 않은 듯하다.

 

류짜이푸는 ‘본토문학’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고찰했다. 진융(金庸) 소설의 문학사적 지위를 논하면서 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초 중국문학은 사회 변화와 외래문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신문학’과 ‘본토문학’이라는 두 가지 다른 문학 흐름(流向)으로 분열되었다. 후자는 전자와 함께 ‘20세기 중국문학’의 양대 실체 또는 흐름을 구성하여 완만한 축적과정을 거쳐 자신의 커다란 문학 구조물을 세웠다. 그것은 20세기 초의 쑤만수(蘇曼殊), 리보위안(李伯元), 류어(劉鶚), 1930~40년대의 장헌수이(張恨水)와 장아이링(張愛玲) 등을 거쳐 진융에 이르렀다. 진융은 홍콩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본토문학의 전통을 직접 계승하여 집대성(集大成)하고 그것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켰다. 여기서의 ‘본토문학’이 바로 5`4시기 ‘신문학’에 의해 문단에서 축출된 ‘구문학’이고 ‘원앙호접파’ 소설이었는데, 류짜이푸는 그것을 ‘신문학’과 대등한 수준에서 20세기 중국문학의 한 축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제기된 ‘통속문학’의 문제의식은 그동안 ‘중국 신문학사’, ‘중국 셴다이문학사’, ‘20세기 중국문학사’라고 명명되었던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렸다. ‘신문학사’는 ‘구문학’을 배척하였고 ‘셴다이문학사’는 ‘우파문학’을 탄압하였으며 심지어 ‘20세기 중국문학사’도 ‘통속문학’을 홀시하였다. ‘통속문학’의 문제제기는 바로 배척과 탄압으로 점철된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주류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중국 근현대문학사 담론’에서 ‘통속문학’의 문제제기는 ‘타자들’의 복권의 대미라는 차원에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전통적인 ‘문이재도(文以載道)’ 문학관의 연장이랄 수 있는 5․4 계몽문학관은 과거와 단절하는 ‘신문학’을 주장하면서 ‘구문학’을 비판했지만, 그것은 아속(雅俗)을 구분하는 전통을 답습하고 있었으며 공공연하게 ‘아(雅)’를 추켜세우고 ‘속(俗)’을 ‘타자화’시켰다. ‘통속문학’은 낡고 퇴폐적인 것으로 단죄되어 문단에서 추방되었다. ‘인민 해방’을 구호로 내세웠던 중화인민공화국의 문학사는 ‘인민문학’을 위해 ‘우파문학’과 ‘동반자문학’을 타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그들을 탄압하였다. 그리고 ‘좌파들’은 서로 경쟁하며 ‘극좌’로 치달았다. 해방이라는 구호는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자신들조차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1985년 ‘20세기 중국문학’의 제창은 바로 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그리고 ‘셴다이문학’에 의해 탄압되었던 ‘우파’와 ‘동반자’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다시 15년이 지난 후 ‘통속문학’이 제기되면서 ‘신문학’에 의해 추방되었던 ‘구문학’을 복권시킨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파문학’의 해방과 ‘통속문학’의 복권 자체가 아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문학사를 아와 속,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어 기술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점이다.

판보췬의『중국 ‘셴다이’ 통속문학사』‘서론’은『중국 ‘진셴다이’ 통속문학사』‘서론’을 전제로 삼고 있다. ‘진셴다이’를 ‘센다이’로 통합하고 ‘역류’와 ‘조연’의 고깔을 과감하게 벗어던지며, 중국 ‘셴다이’ 통속문학의 역사를 시간, 원류, 독자, 기능 면에서 개괄하고 있다. 특히 통속문학이 지식인문학의 배척을 받으면서도 그 자양분을 취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을 ‘상극(相剋) 가운데 상생(相生)’이라 요약했다. 나아가 만청 견책소설을 사회통속소설로 분류해 외연을 넓히면서 계몽주의와 통속문학의 관계를 고찰했고, 전통의 계승이라는 기능을 재해석했다. 전통 가운데 봉건적 요소를 양기(揚棄)하면서 ‘효’ 문화와 같은 전통 미덕의 계승을 통속문학 생존의 근거이자 의의로 받아들였다. 판보췬의 궁극적인 목적은 ‘셴다이’ 통속문학을 제대로 연구해서 중국 ‘셴다이’문학사의 ‘대가족’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두 날개 문학사’의 내함이다.

판보췬이 말한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두 날개로 함께 나는 문학사’라는 ‘공통 인식’을 1920년대에 가질 수 있었더라면, ‘신문학사’는 ‘신문학’과 ‘구문학’의 두 날개로 날아, 독자들을 ‘구문학’에 빼앗겨 ‘인문학의 위기’ 운운 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공통 인식’을 1950년대에 가질 수 있었더라면, ‘셴다이문학사’는 ‘셴다이문학(즉 좌파문학)’과 ‘우파문학’의 두 날개로 비상하여 세계문학과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자신의 정원을 더욱 아름답게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두 날개로 함께 나는 문학사’가 실현되기 위해 여러 가지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 아(雅)의 속화(俗化), 속(俗)의 아화(雅化) 등도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지만, 아속공상의 핵심은 아와 속의 동시적 감상이라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고아(高雅)한 작품도 감상하고 통속(通俗)적인 작품도 읽는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한 작품에서 고아한 측면과 통속적인 측면을 동시적으로 감상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를 감당할 만한 두터운 텍스트(thick text)의 출현이고 그 두터운 텍스트를 감상하고 유통시키는 독자 대중의 존재다.

 

‘두 날개 문학사’ 담론은 판보췬(范伯群)에 의해 제기되었다. 그 문학사적 의미는 ‘20세기 중국문학사’가 ‘우파문학’을 해방시킨 것에 뒤이어, ‘신문학사’가 배제시켰던 ‘통속문학’(구문학, 전통문학, 특히 전통 백화문학, 본토문학, 봉건문학)을 중국 ‘근현대’문학사의 연구 시야로 끌어들인 점이다. 판보췬의 문학사 편사 이전에도 통속문학의 문제의식은 천핑위안(陳平原 1993), 류짜이푸(劉再復 1998) 등에 의해 제기된 바 있었다.

통속문학의 대표 장르인 소설은 중국 고대문학에서 대아지당(大雅之堂)에 오르지 못한 채 줄곧 주변부에 머물러 있었다. 소설이 문학의 최고 지위에 오른 것은 량치차오(梁啓超)의 ‘소설계 혁명’을 통해서였다. 이후 주변부에 있을 때는 문제되지 않았던 고급소설과 통속소설의 구분이 시작되었고 이는 문단권력의 문제와 맞물려 양자를 화해할 수 없는 형국으로 몰아갔다. 천핑위안은 20세기 중국문학에서 통속소설의 세 차례 부상(浮上)에 주목한다. 1차는 신해혁명부터 5·4 이전까지, 2차는 1940년대, 3차는 1990년대 초이다. 5·4신문학 제창자들이 공격한 것이 바로 1차 시기의 통속소설로, “이 시기에 소시민의 구미에 맞는 양식화되고 오락성이 짙은 소설의 대량 출간은 ‘봉건문학의 복벽(復辟)’, ‘원앙호접파의 범람’이라고 불렸다.”(陳平原 2004, 374) 5·4신문학은 이들의 ‘사상적, 예술적 약점을 파악’하여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목표인 “서유럽 근현대소설을 수입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같은 책, 375)했다. 천핑위안은 이를 고급문학의 통속문학에 대한 ‘타도’라고 명명했다. 이에 반해 1940년대는 장헌수이(張恨水)의 ‘통속문학’의 고아화(高雅化)와 자오수리(趙樹理)의 ‘고급문학’의 통속화로 대표되는데, 이는 당시 주류문학의 문예정책이었던 ‘보급과 제고’의 두드러진 예라 할 수 있다. 통속소설의 3차 부상은 홍콩과 타이완의 무협소설과 애정소설의 열풍 이후 각종 통속소설이 고급소설과 지위를 다툰 시기다. 이는 1980년대 문예창작에 다원적 공존과 다원적 탐색의 국면이 출현함으로써 통속소설에 대한 문예이론가들의 태도도 대범한 이해나 관용으로 바뀌게 되었다(같은 책, 375). 천핑위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술 발전 법칙의 측면에서 통속소설 부상의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고급소설의 예술적 탐색이 심원해지면서 소설의 가장 기본적 특징인 오락 기능을 무시하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일반 독자들은 미적 수준은 높지 않지만 재미있는 통속소설을 환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20세기 중국문학에는 다음과 같은 순환이 형성되었다. 량치차오의 정치소설--원앙호접파 소설--5·4 신문학--1930-40년대 무협소설--1980년대 초 신시기 소설--통속소설. 그러므로 천핑위안은 소설계의 이상적인 국면을 ‘고급소설’, ‘고급 통속소설’, ‘통속소설’의 세 가지로 구성된 것으로 본다.(같은 책, 378) 이른바 ‘신소설’ 연구를 통해 얻은 성찰을 근현대문학사 전 국면에 확대 적용한 천핑위안의 견해는 판보췬의 ‘두 날개 문학사’와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속문학의 문제의식은 류짜이푸(劉再復)에게서 ‘본토문학’으로 제기된 바 있다. 그는 진융(金庸) 소설의 문학사적 지위를 논하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20세기 초 중국문학은 사회 변화와 외래문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신문학’과 ‘본토문학’이라는 두 가지 다른 문학 흐름(流向)으로 분열되었다. 후자는 전자와 함께 ‘20세기 중국문학’의 양대 실체 또는 흐름을 구성하여 완만한 축적과정을 거쳐 자신의 커다란 문학 구조물을 세웠다. 그것은 20세기 초의 쑤만수(蘇曼殊), 리보위안(李伯元), 류어(劉鶚), 1930~40년대의 장헌수이(張恨水)와 장아이링(張愛玲) 등을 거쳐 진융에 이르렀다. 진융은 홍콩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본토문학의 전통을 직접 계승하여 집대성(集大成)하고 그것을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켰다.(劉再復 1998, 19-20) 여기서의 ‘본토문학’이 바로 5·4시기 ‘신문학’에 의해 문단에서 축출된 ‘구문학’이고 ‘원앙호접파’ 소설이었는데, 류짜이푸는 그것을 ‘신문학’과 대등한 수준에서 20세기 중국문학의 한 축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류짜이푸의 신문학과 본토문학은 판보췬의 순문학과 통속문학에 대응하고 있다.

판보췬은 2000년 4월 󰡔중국 진셴다이 통속문학사(中國近現代通俗文學史)󰡕(상․하)를 주편했는데, 이는 중국 근현대문학사 연구의 새로운 단계를 알리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본문만 1,74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사회․언정(社會言情), 무협․당회(武俠黨會), 정탐․추리(偵探推理), 역사연의(歷史演義), 골계․유모(滑稽幽黙), 통속희극(通俗戱劇), 통속간행물(通俗期刊編) 등 일곱 분야와 대사기편(大事記編)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이는 하위 장르의 상대적 독립성을 감안(勘案)하고 존중한, 장르별 문학사의 대작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진셴다이(近現代) 시기에 ‘열등하긴 하나’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좋아했던’ 통속문학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

 

중국 ‘진셴다이’ 통속문학은 청말민초(淸末民初)의 대도시 상공업 경제 발전을 기초로 삼아 번영․발전한 문학을 가리킨다. 그것은 내용면에서 전통의 심리기제를 핵심으로 삼았고 형식면에서 중국 고대소설전통을 양식으로 하는 문인의 창작물 또는 문인의 가공을 거쳐 재창조된 작품을 계승했다. 그것은 기능면에서 흥미와 오락, 지식성과 가독성(可讀性)을 중시했지만 ‘즐거움에 가르침 얹기(寓敎於樂)’의 권선징악의 효과도 고려했다. 그것은 민족의 감상습관에 부합하는 것을 토대로 하여, 수많은 시민층 위주의 독자군을 형성하였으며 그들에 의해 정신적 소비품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보니 필연적으로 그들의 사회·가치관을 반영하는 상품성 문학이 되었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중국 ‘진셴다이’ 통속소설이 대도시 상공업 경제의 발전을 토대로 번영·발전했다는 지적이다. 그러므로 ‘도시통속소설’이라는 명명이 가능해진다. 그것은 ‘셴다이’문학사 또는 ‘20세기 중국문학사’의 주요한 유파인 ‘사회해부파’ 도시소설이나 ‘신감각파’의 심리분석소설과 달리, 현대 도시생활에서 광범위한 제재를 선택하여 재미있고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다양한 사회 풍경화를 제공하였다. 이 작품들은 중국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심태(cultural mentality)를 잘 파악함으로써 사회의 각종 세태와 인간을 반영하는 데 뛰어났다. 이 소설들은 고대 백화소설의 언어 전통을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외국문학에서 배운 기교를 적당히 융합할 줄도 알았다. “그들은 민족의 전통형식을 숭상하는 동시에 외국문학에서 창작기교와 살아있는 문학언어를 배웠다.”(范伯群 2000, 21쪽)

특히 문학사 연구와 관련된 아래의 언급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20년 동안 ‘진셴다이’문학사 연구자들은 한 가지 공통 인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진셴다이’ 통속문학을 우리의 연구 시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순문학과 통속문학은 우리 문학의 두 날개이므로, 이후 편찬되는 문학사는 두 날개로 함께 나는 문학사여야 한다.

 

통속문학을 순문학과 함께 문학사의 두 날개로 받아들이는 공통 인식의 변화는 판보췬의 바람만큼 순탄치는 않았다. 우리는 대표적인 예를 20세기 중국문학의 주요 제창자인 첸리췬 등이 펴낸『중국 ‘셴다이’문학 30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초판본(1987년, 上海文藝出版社)과 수정본(1998년, 北京大學出版社) 사이에 11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와 상하이에서 베이징이라는 출판공간의 변화가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정’ 내용이다. 저자들을 대표하여 첸리췬은「후기」에서 “총체적인 변동” 없이 “개별적인 조정”(665쪽)을 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들을 보면 ‘상당한’ 조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판보췬이 말한 ‘공통 인식’과 관련된 사항을 들자면, 초판본에서는 장(章)과 절(節)의 제목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통속소설’에 대해 수정본에서는 세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첫 번째 10년’(1917~1927년), ‘두 번째 10년’(1928~1937년 6월), ‘세 번째 10년’(1937년 7월~1949년 9월)에서 각각 ‘문학사조와 운동’, ‘소설’, ‘신시’, ‘산문’, ‘희극’ 등의 장이 서술되고 있는데, ‘통속문학’은 바로 이들 장르와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요컨대 통속소설을 문학사 연구 범주로 받아들여 매 시기 그 주요 사항을 서술하게 된 것은 커다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근본적이라기보다는 부분적이다.『중국 ‘셴다이’문학 30년』의 저자들은 통속문학을 연구 대상의 일부로 편입시킨 정도에 그쳤을 뿐, 아직 순문학과 통속문학의 두 날개로 함께 나는 문학사의 인식에까지 이르지는 않은 듯하다. 20세기문학사 담론의 또 다른 제창자인 천쓰허도 ‘민간문학’이라는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통속문학 범주에 들어갈 만한 작품은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판보췬은 최근『중국 셴다이 통속문학사』라는 단독 저서를 출간하여 통속문학에 관한 2기 공정을 마무리했다. 그는 중국 ‘셴다이’ 통속문학으로부터 ‘역류’와 ‘조연’의 고깔을 과감하게 벗기고, 그 역사를 시간, 원류, 독자, 기능 면에서 개괄하고 있다. 특히 통속문학이 지식인문학의 배척을 받으면서도 그 자양분을 취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을 ‘상극(相剋) 가운데 상생(相生)’이라 요약했다. 나아가 만청 견책소설을 사회통속소설로 분류해 외연을 넓히면서 계몽주의와 통속문학의 관계를 고찰했고, 전통의 계승이라는 기능을 재해석했다. 전통 가운데 봉건적 요소를 양기(揚棄)하면서 ‘효’ 문화와 같은 전통 미덕의 계승을 통속문학 생존의 근거이자 의의로 받아들였다. 판보췬의 궁극적인 목적은 ‘셴다이’ 통속문학을 제대로 연구해서 중국 ‘셴다이’문학사의 ‘대가족’에 통합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말한 ‘두 날개 문학사’의 내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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