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사회주의 중국과 그 비판자들 - 개혁개방 이후 중국 비판사상의 계보를 그리다 ㅣ 트랜스 소시올로지 28
임춘성 지음 / 그린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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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대학지성>에 개재된 글을 전재했다.)

http://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20



1.

 

마틴 자크(Jacques, Martin)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When China Rules the World)』(2009)에서 ‘서양 세계의 종말(the end of the Western world)’과 ‘새로운 지구적 질서의 탄생(the birth of a new global order)’이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해 학계와 독서계의 광범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6년 만에 조반니 아리기(Arrighi, Giovanni)의 제자인 훙호펑(Hung, Ho-feng)은 ‘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라는 부제의 『차이나 붐(The China Boom)』(2015)을 출간해, 통계자료에 근거해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에서 중국이 미국의 하위 파트너임을 주장했다. 훙호펑은 중국이 1581년 세금의 은납화를 효시로 ‘자본주의 없는 시장’(1650~1850) 단계를 거쳐, ‘자본의 시초 축적’(1850~1980)을 이룬 후, ‘자본주의적 호황’(1980~2008)의 단계를 맞이했다고 논술했다.

 

2.

 

천지개벽에 비견되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변화를 ‘공정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주의 중국이 개혁개방을 통해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인지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인지를 일반 독자가 파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똑같은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을 거쳤지만 소비에트 연방은 해체되었고 소련공산당은 권력을 내주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은 건재하고 중국공산당은 인민의 지지를 받으며 집권을 지속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다. 올해로 창당 100주년을 맞이한 중국공산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중국은 샤오캉(小康)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만천하에 공표했고, 2030년 이전 GDP 1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28년 후 건국 100주년을 준비하며 두 개의 100년이라는 붉은 ‘중국몽’에 흠뻑 빠져있다. 이런 중국이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

이상이 인식 대상의 복잡함과 관련된 것이라면, 인식 주체인 한국인의 문화심리구조의 복잡함 또한 만만치 않다. 한국인의 중국 인식은 전통 중국에 대한 관습적 존중으로부터 서양의 중국위협론의 영향을 받아 중국 혐오로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의 굴기를 ‘슈퍼차이나’로 전유(專有)하는 한국 언론매체의 인식 변화는 가히 상전벽해 수준이라 할 만하지만, 2010년대 이후 ‘반미’(反美)의 자리를 ‘혐중’(嫌中)이 대신했다는 박노자(2020)의 분석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인식 대상의 복잡함은 우리가 면밀히 살펴 공부할 과제지만, 주체의 복잡함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 복잡함에는 단순한 진영 논리가 가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반미는 친중과 연계되고 혐중은 친미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갈등적 상호의존의 역사’를 가진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으므로 친미 대 친중 논쟁은 무의미한 ‘자기파괴적’ 논쟁(박홍서 2020)이 되므로, 우리가 경계할 일이다. ‘균형잡힌 중국관’을 가지고 맹목적인 ‘혐중’을 반대하며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공정한 이해와 동행”(박민희 2021)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급선무이다.

 

3.

 

『포스트사회주의 중국과 그 비판자들』은 21세기 문명 전환 시대 중국의 문화․사회변동(cultural and social change)에 대해,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현재까지 진행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비판 사상(critical thoughts)을 중심으로 분석 고찰했다. 중국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부문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첨예한 화두를 미래 세대에게 던지고 있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이를 통해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 사상의 계보를 그림으로써 한국 사회의 공정한 중국 인식 확립에 일조하고자 했다.

이 책은 세 층위의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

첫째, 제국주의와 봉건제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비판’.

둘째, 중국공산당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비판’.

셋째, ‘비판적 지식인’들의 ‘비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상 세 층위의 ‘비판’은 중국을 공정하게 인식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아울러 ‘비판’이란 명목 아래 임의로 재단(裁斷)하고 단장취의(斷章取義)하며 텍스트를 왜곡·날조하는 사례를 무수히 봐온 필자로서는 충실한 텍스트 독해와 폭넓은 콘텍스트 이해를 최우선으로 삼아 ‘비판적 고찰’을 진행했다.

 

4.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은 다들 일가(一家)를 이룬 사상가다. 이들 각자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는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각 인물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뽑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를테면 첸리췬(錢理群)의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정신사와 민간 이단 사상 연구, 왕후이(汪暉)의 근현대성 역설, 쑨거(孫歌)의 동아시아 인식론 등이 그것이다. 1부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리쩌허우(李澤厚)는 포스트사회주의 시기 비판 사상의 시원이라는 점에서 문화심리구조, 유학 4기설, 서학의 중국적 응용, 심미 적전(積澱), 인류학 역사본체론에 초점을 맞추어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아울러 경제학자 원톄쥔(溫鐵軍)의 백 년의 급진과 비용전가론, 정치학자 추이즈위안(崔之元)의 자유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장이빙(張一兵)의 마르크스 역사현상학 등도 함께 다루었다. 하지만 이들이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가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특히 비판 사상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왕샤오밍(王曉明), 리퉈(李陀), 다이진화(戴錦華) 등 비판적 문화연구 학자들의 비판 사상은 별도의 독립된 저서에서 다룰 예정이므로 이 책에 포함하지 않았음을 밝혀 둔다.

 

 

참고한 글

 

(임춘성, 2021, 『포스트사회주의 중국과 그 비판자들―개혁개방 이후 중국 비판사상의 계보를 그리다』, 그린비.)

마틴 자크, 2011,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 안세민 옮김, 도서출판 부키.

훙호펑, 2021, 『차이나 붐―왜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수 없는가』, 하남석 옮김, 글항아리.

박노자, 2020, 「‘혐중’을 넘어: 균형 잡힌 중국관을 위해서」, 『한겨레신문』2020년 9월 16일.

박홍서, 2020, 『미중 카르텔―갈등적 상호 의존의 역사』, 후마니타스.

박민희, 2021, 『중국 딜레마―위대함과 위태로움 사이에서․시진핑 시대 열전』, 한계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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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민주주의 혁명의 성공으로 1949년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인민공화국)이 자본주의를 뛰어넘어 사회주의로 진입한 것은 우리에게 명약관화한 사실이었다.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비판’하며 건국한 인민공화국의 출현은 반봉건·반식민지 사회가 사회주의 국가로 변모했다는 맥락에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사회주의 30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개혁개방 단계로 접어든 중국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현재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로 보기는 어렵다. 많은 학자가 ‘중국 특색의 신자유주의’, ‘국가 발전주의 모델’, ‘국가 신자유주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얼룩덜룩한 자본주의’, 심지어 ‘국가자본주의’ 등의 용어로 현재의 중국을 규정하고 있다. 그 가운데 ‘당-국가 체계(party-state system)’라는 명명은 중국 통치의 내부 메커니즘을 가리키는 용어라 할 수 있다. 국외에서 ‘관료 자본주의 국가이며 압축적 성장을 추구하는 개발주의 국가’로 평가되는 중국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와 많은 문제점을 공유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혐중론자들이 지적하는 노동 착취와 민주 노조의 부재, 공해와 소수자의 문제 등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국가에 공통된 문제다.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비판’하며 건국된 인민공화국은 개혁개방 이후 발생한 많은 문제점으로 인해 새로운 ‘비판’에 직면했다. ‘비판’의 주체는 ‘비판적 지식인’과 ‘기층 민중’이다. 중국공산당(이하 공산당)이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타도하기 위해 혁명의 기초로 삼았던 ‘기층 민중’과 연대의 주축이었던 ‘비판적 지식인’이 언제부턴가 공산당을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비판적 지식인’의 ‘비판’에 주목했다. ‘비판의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제국주의와 봉건제를 ‘비판’한 공산당, 그리고 공산당을 ‘비판’한 ‘비판적 지식인’.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비판의 비판’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제한적이나마 ‘비판적 지식인’의 사상 계보를 정리하고, 제국주의와 봉건제에 대한 공산당의 ‘비판’과, 충분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비판적 지식인’들의 ‘비판’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했다. 이는 중국을 공정하게 인식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이전 단계에 ‘비판적 지식인’은 주로 좌파 지식인을 가리켰다. 그러나 우리는 21세기에 좌파의 존재 여부와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20세기에 좌파를 자처했던 사회주의권이 몰락한 지금 좌파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 존재 조건은 무엇인가? 혁명 좌파의 전위 정당이 ‘마르크스주의 학회’ 학생들을 탄압(천슈에이 2018)하고 좌파 학생들이 ‘중국은 사회주의인가?’라고 묻는(박민희 2020) 현재 중국에서 좌파 지식인의 존재 양상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누가 추궁하고 있는가? 중국은 신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인민공화국을 건립한 이후 ‘중국적 사회주의’ 또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를 70년 넘게 시행해왔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특히 1989년 ‘톈안먼 사건’과 1992년 ‘남방 순시 연설’ 이후의 중국을 과연 ‘진정한 사회주의’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와 더불어 ‘일당전제’의 ‘당-국가 체계’에서 좌파의 존재 여부와 존재 방식은 관심의 초점이다. 이렇게 볼 때 ‘6․4 체제’의 공산당 내에서 좌파는 찾기 어렵게 되고 이른바 ‘신좌파’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신좌파’ 또한 단일하지 않다. 왕후이는 ‘신좌파’라는 고깔을 달가워하지 않고, 간양은 ‘자유 우파’를 자처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비판적 지식인’에 관심을 두게 된다.

‘비판적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시간의 고험(考驗)을 견뎌내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초지(初志)를 잃지 않고 일일신(日日新)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상아탑에 머물며 전공 이외의 것에는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적 실천을 빌미로 자신의 전공을 내던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전공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어설픈 사회적 실천은 또 다른 유혹일 수 있다. 유혹을 거절할 줄 알아야 한다. 또 하나 확실한 사실은 공부를 멈추는 순간 비판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당대 중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첸리췬은 멘토인 루쉰과 스승 왕야오의 훈도에 힘입어 ‘정신계 전사’를 지향했지만, 그 기저에 ‘생존의 문제’와 ‘어느 시점에, 말을 해도 되는지, 어느 정도까지를 말하는지의 분수를 파악’하는 문제가 놓여있다고 털어놓았다. 첸리췬이 대표하는 중국 ‘비판적 지식인’의 존재 방식은 문자 그대로 지식인의 존재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첸리췬이 민간 이단 사상 연구에서 거론한 린시링, 린자오, 천얼진, 리이저, 루수닝 등의 존재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민주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을 치른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의 21세기 존재 방식과 대조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은 다들 일가(一家)를 이룬 사상가다. 이들 각자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는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각 인물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뽑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를테면 첸리췬의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정신사와 민간 이단 사상 연구, 왕후이의 근현대성의 역설, 쑨거의 동아시아 인식론 등이 그것이다. 단 리쩌허우의 경우는 그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 비판 사상의 시원이라는 점에서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아울러 경제학자 원톄쥔의 백 년의 급진과 비용전가론, 정치학자 추이즈위안의 자유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장이빙의 마르크스 역사현상학 등도 함께 다루었다. 하지만 이들이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비판적 사상가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특히 비판 사상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왕샤오밍과 다이진화 등의 비판적 문화연구 학자들의 비판 사상은 별도의 독립된 저서에서 다룰 예정이므로 이 책에 포함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2.

 

 

우리 모두 ‘비판’을 운위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공략하기보다 낙후시켜라!’ 이는 무지한 남성들에 대한 페미니즘 진영의 슬기로운 대응전략이다. 일반적으로 논쟁에서 상대방의 허점과 약점을 공격하다 보면 상대방은 방어 논리를 개발해 다시 반격해오기 마련이다. 그다음은 흔히 보듯 이전투구다. 그보다는 상대방 스스로 자신의 허점과 결점을 인식해 자신이 낙후되어 있음을 자인하게 만드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피지기해야 함은 물론이고,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설 내공을 갖춰야 한다. ‘비판’도 마찬가지다. 지피지기와 높은 내공을 토대로 한 ‘낙후’ 전략을 갖춰야만 제대로 비판할 수 있다.

리쩌허우가 『비판철학의 비판』에서 시도한, ‘칸트와 마르크스의 교차적 읽기’에서 칸트와 마르크스의 주저 표제에 ‘비판’이 명시되어 있고, 리쩌허우는 그 ‘비판’을 다시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비판’은 대상 텍스트의 충실한 독해와 컨텍스트 이해를 전제로 삼아야 한다. 장이빙은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라는 주장의 구체적 방법으로 ‘역사적 텍스트학’을 제창했다. 이는 “역사 자체의 시간과 공간 구조를 가지고 마르크스 텍스트의 본래적 맥락을 드러나게 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이해의 결과를 얻어내”는 텍스트 분석을 가리킨다.(이 책 9장 2절 참조) 흔히 ‘비판’이란 명목 아래 임의로 재단(裁斷)하고 단장취의(斷章取義)하며 텍스트를 왜곡·날조하는 사례를 무수히 봐온 필자로서는 충실한 텍스트 독해와 폭넓은 컨텍스트 이해를 최우선으로 삼아 ‘비판적 고찰’을 진행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 “인간의 사고와 의사전달을 극도로 제한하는 진부한 고정 관념들과 환원적 범주들을 분쇄하는 것”(사이드 1996, 16)을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지식인은 ‘제도들’에 어느 정도 ‘종속’되고 어느 정도 ‘적대적’인 이중성을 가지므로 철저한 비판정신을 가지고 동시다발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은 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는데 이는 투쟁을 통해 현실을 변형시키는 주체가 현실에서 비판을 작동시킬 때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변형과 변화는 개인의 차원에서, 나아가 사회의 차원에서 작동되어야 할 것이다.

 

 

3.

 

 

돌아보니, 목포대 부임 첫해 한국연구재단(당시 학술진흥재단. 이하 재단)과 인연을 맺은 후, 네 권의 단독 저서를 모두 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하게 되었다. 우선 감사를 표한다. 지둔한 사람에게 재단의 지원과 핍박은 동력과 활력이 되었다. 재단의 지원 덕분에 학계 동업자 및 타전공 학인과 교류할 수 있었고, 재단의 시한 덕분에 미룰 수도 있었던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재단의 관변적 성격을 우려하는 사람도 많지만 내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음을 밝혀둔다. 물론 재단 공모와 심사 과정에서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연구주제와 방향이 재단으로 인해 억압받은 적은 없었다. 아울러 계획서와 보고서를 읽고 내 연구주제가 지원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준 익명의 심사위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최근 내 공부는 ‘사이노폰 연구’ 세미나와 목포대학교의 ‘포스트휴먼’ 세미나 그리고 ‘적-녹-보라 패러다임’ 세미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모두 내게는 새로운 영역이고 도전이다. 함께 하는 동도(同道)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연구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준 목포대학교에 감사의 말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018년 9월부터 1년간의 연구년은 최종 원고를 마무리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또한 2018년 가을부터 반년간 머물렀던 타이중(臺中)의 중싱(中興)대학은 집중적으로 원고를 집필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방문 기회를 마련해준 추구이펀(邱桂芬) 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중화민국의 국가도서관 한학연구중심(Center for Chinese Studies)의 ‘타이완 펠로우쉽 프로그램’의 지원에도 감사를 표한다.

『루쉰전집』(2018)을 완간한 그린비와의 만남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12인 역자의 글 20권을 10년에 걸쳐 편집 출간한 저력은 학인들의 칭송을 받기에 손색이 없다. 출판사를 연계해준 유세종 선생과 출간 제안을 흔연하게 수용해주신 유재건 대표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임유진 주간과 편집부 홍민기 선생, 원고를 꼼꼼하게 검토해준 김혜미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글들은 국내 번역본을 저본으로 삼았지만, 의미 전달이 어색한 부분은 원전과 대조해 필요할 경우 직접 번역해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호학자의 편의를 위해 번역본과 원전의 쪽수를 함께 적기도 했다. 번역비평에 참고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

코로나19가 1년 넘게 기승을 부리는 ‘새로운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정년퇴직을 앞둔 시점에 내는 책인지라 비판적 중국연구 학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지 조심스럽다. 강호 제현의 아낌없는 질정을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실린 글들의 출처를 밝혀둔다. 일부 수정·보완했고, 4장과 5장은 각각 두 편의 글을 하나로 묶었다.

서장 포스트사회주의 중국의 사회 변동(『마르크스주의 연구』 제14권 4호, 2017. 원제: 중화인민공화국: 국가 사회주의에서 포스트사회주의로)

제1장 문화심리 구조와 서학의 중국적 응용(『중국연구』 제67권, 2016. 원제: 리쩌허우의 ‘문화심리구조’와 ‘역사본체론’)

제4장 첸리췬의 20세기 중국 지식인 정신사 연구와 민간 이단 사상 연구(『문화연구』 6권 2호, 2018. 원제: ‘사회주의 개조’의 관점에서 고찰한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정신 역정: 錢理群의 ‘20世紀中國知識分子精神史三部曲’을 중심으로. 『중국현대문학』 제88호, 2019. 원제: 절망의 땅에서 희망 지키기―첸리췬(錢理群)의 [1977-2005: 절지수망(絶地守望)]을 읽고)

제5장 왕후이의 ‘근현대성 역설’과 루쉰 연구(『중국사회과학논총』 창간호, 2019. 원제: 왕후이의‘모더니티에 반(反)하는 근현대성’과 ‘신계몽주의 비판’에 대한 재검토. 『중국연구』 제79권, 2019. 원제: 루쉰(魯迅)의 ‘개체성 원칙’과 ‘역사적 중간물’―왕후이(汪暉)의 『절망에 반항하라』를 읽고)

제6장 쑨거의 동아시아 인식론(『중국학보』제93집, 2020. 원제: 쑨거의 동아시아 인식론 비판)

 

 

2021년 4월 30일

임 춘 성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른바 ‘비판적 지식인’은 다들 일가(一家)를 이룬 사상가다. 이들 각자에 관한 종합적인 연구는 별도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 책에서는 각 인물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뽑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이를테면 첸리췬의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정신사와 민간 이단 사상 연구, 왕후이의 근현대성의 역설, 쑨거의 동아시아 인식론 등이 그것이다. 단 리쩌허우의 경우는 그가 포스트사회주의 시기 비판 사상의 시원이라는 점에서 종합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아울러 경제학자 원톄쥔의 백 년의 급진과 비용전가론, 정치학자 추이즈위안의 자유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장이빙의 마르크스 역사현상학 등도 함께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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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양장) -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
장이빙 지음, 김태성 외 옮김, 정성진 외 감수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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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글은 옮긴이의 후기인 동시에, 번역과 교정 과정을 통해 텍스트를 몇 차례 꼼꼼하게 읽은 옮긴이가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제공하는 길안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서양에 경도되어온 한국 학술계에서 중국학자의 서양학 관련 연구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중국학자가 칸트의 비판철학을 연구한 결과물인 리쩌허우(李澤厚)의 『비판철학의 비판』을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는 일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 책 또한 중국학자가 마르크스 텍스트를 연구한 책이기에, 중국학자의 연구서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낯선 느낌이 없지 않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수준을 한 마디로 개괄하기는 어렵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비판적 성격이 약화되고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주류가 관변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다소 달랐다. 중국 내 관변적 학자들은 장이빙(張一兵)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에 대해 어느 정도 이론적 급진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를테면 탕정둥(唐正東)은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와 당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발전」(2018)에서, 이 책으로 인해 중국 학계의 많은 학자들이 경전 텍스트 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점, 경전 문헌을 운용할 때 뚜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된 점, 다성악(polyphony)적인 해석 논리로 마르크스 철학 및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심층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 점을 그 긍정적인 점으로 들었다. 하지만 비판적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장이빙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는 주류 이데올로기 범주에서 수행되는 연구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되 우리는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장이빙의 연구 성과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저자 장이빙은 난징대학 부총장, 난징대학 마르크스주의사회이론연구센터 주임, 마르크스주의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는데, 그의 저서 목록은 그의 경력만큼이나 다양하다. 『마르크스 역사변증법의 주체 국면』(2002: 2판)과 『텍스트의 심층 경작―서양 마르크스주의 경전 텍스트 독해』(제1권, 2004; 제2권, 2008)는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와 더불어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서이고, 『무조(無調)식의 변증법적 상상―아도르노 ‘부정변증법’의 텍스트학 독해』(2001), 『문제설정, 징후적 독해와 이데올로기―알튀세르의 텍트스학 독해』(2003), 『불가능한 존재의 참―라캉 철학 영상(映像)』(2006), 『푸코로 돌아가다』(2006) 등은 서양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도르노, 알튀세르, 라캉, 푸코에 대한 연구서이며, 『레닌으로 돌아가다―‘철학 노트’에 관한 포스트텍스트적 독해』(2008)는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와 비슷한 연구를 레닌에 대해 진행한 저서다. 특히 ‘돌아가다’의 표제가 붙은 세 권은 현상학의 취지에서 진행하는 ‘사상의 고고학’ 시리즈다.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는 후배 학자들과 함께 『개념의 맥락과 사상의 고고학: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기』와 『하이데거로 돌아가다』라는 표제의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저자 장이빙이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레닌, 라캉, 알튀세르, 아도르노, 푸코, 하이데거 등을 폭넓게 전문적으로 연구한 경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의 표제로부터 그의 주요한 연구방법이 텍스트 해석학 또는 포스트텍스트학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을 독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주제어를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는 텍스트 해석학이고 두 번째는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경제학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의 전환이며, 세 번째는 저자가 자신의 연구를 명명한 역사현상학이다. 이는 저자가 해제에서 제시한 다섯 개의 키워드―마르크스로 돌아가다, 텍스트학 연구, 경제학 맥락, 잠재적 철학담론, 역사현상학―와 중복된다.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2판의 최신 문헌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대량의 마르크스의 초기 경제학 노트를 독해했고, 이를 철학 이론 분석과 연결시킴으로써 학술적 혁신을 완성한 책”이라는 경제학자 훙인싱(洪银兴)의 평가처럼, 경제학과 철학의 융합적 해석은 이 책의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세 가지 주제와 다섯 개의 키워드를 주요 표지판으로 삼아 아래에서 간략한 길안내를 시작해보겠다.

 

 

2.

 

 

1) 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원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텍스트 해석의 역사적 관점을 재구축하거나 우리로 하여금 마르크스 사상의 개방성과 당대적 가능성을 새롭게 구축하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철학사에서 에드문트 후설은 ‘사실 자체로 돌아감’을 현상학의 중요한 이론적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훗날 해석학적 의미에서의 ‘돌아감’은 하이데거가 소크라테스 이전의 이른바 사유의 본원성으로 돌아감을 통해 현재의 사상사를 새롭게 쓰는 발단이 되었다. 실상 해석학에 있어 그 어떠한 ‘돌아감’도 역사적 관점의 정합(整合)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에서 ‘텍스트로의 돌아감’ 역시 ‘완고한 숭고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마르크스 원전으로의 물러남’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교조적인 체제 합법성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준비이며 기성의 강제성을 배제시키고 텍스트에 대한 독해를 통해 새로운 ‘도구적 존재성(Zuhandenheit. ready to hand)의 상태’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중국인들이 과거에 말하곤 했던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자체는 우리가 오늘날 얻게 된 최신의 방법과 맥락으로 개방된 시각 속에서 마르크스를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바꿔 말해 해석학적 관점에 의하면 마르크스는 결코 원초적 대상이 아니라 이미 해석된 역사적 효과가 되었다. 완전히 새로운, 하지만 근거를 갖는 마르크스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2) 마르크스 철학과 당대성: 마르크스 철학과 당대성의 문제는 결코 새로운 명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지난 1960년대 교조화된 체제에서의 서술 방식을 둘러싸고 구소련의 전통적인 학계가 논쟁을 벌였을 때부터 존재해왔던 것이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인식틀로써 마르크스를 해석하는 방식이 완전하다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한 해석방식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은 구소련의 전통적인 마르크스 철학 해석의 비역사적 성격과 절대적인 담론권력의 불법성을 은폐하는 것이다.

실상 마르크스 철학이 반드시 당대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관건은 그와 같은 의도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감하게 이전의 경전을 다시 해석하고 새로운 텍스트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견실하게 텍스트를 새롭게 펼쳐들어 새로운 역사적 시각 안에서 당대 생활 세계의 새로운 문제들을 진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장이빙은 마르크스 철학에 관한 텍스트(특히 MEGA2)를 직접 정밀하게 독해하지 않는다면 마르크스 사상 발전의 맥락을 과학적이고 전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마르크스 철학의 당대성에 대한 언설 역시 실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3) 다섯 가지 독해 모델: 그는 우선 마르크스 철학 발전사를 고찰하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다섯 가지 독해 모델’을 추출해낸다. 즉 서유럽 마르크스학 모델, 서유럽 마르크스주의 인간주의 모델, 알튀세르 모델, 구소련과 동유럽 모델, 그리고 중국의 쑨보쿠이 교수 모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가 ‘이끄는 말’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만큼, 여기에서는 반복하지 않는다.

4) 마르크스의 텍스트의 분류학적 구분: 장이빙은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세 종류로 분류한다. 첫째는 책을 읽고 발췌한 노트와 사실을 기술한 노트이고, 둘째는 미완성 수고와 서신이며, 셋째는 이미 완성된 논저와 공개 발표 문헌들이다. 이는 마르크스의 텍스트에 대한 ‘분류학적 구분’이다. 과거 마르크스주의 연구에서 학자들이 보편적으로 중시하고 연구에 열을 올렸던 부류는 대부분 셋째 유형의 논저들이었고 둘째 유형의 문헌들 역시 어느 정도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첫째 유형의 텍스트들은 아직 실질적으로 그에 합당한 분석과 연구의 지위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장이빙은 첫째와 둘째 유형의 텍스트들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서만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과 변혁의 진실한 사유의 맥락과 원인이 되는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 책의 상당 부분을 노트와 수고 등의 텍스트 자체로 돌아가 그에 대한 문헌학적 고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장이빙은 노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마르크스의 노트에는 담론의 단절, 범주의 설정, 그리고 이론논리 속의 특이한 이질성이 남김없이 그리고 무형식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트 기록은 주로 독서 노트가 중심인데, 이는 마르크스가 독서를 하면서 느낀 점과 해당 도서에 대한 논평을 메모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로부터 학술적 관점의 개요에 실린 이론적 경향성과 최초의 평론, 그리고 논쟁을 통해 형성된 저술 계획과 구상, 그리고 각종 사상이 최초로 형성된 이론적 촉발점과 원초적 단서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첫 번째 텍스트에 대한 ‘상호 텍스트’적 다시 쓰기로, 저자와 일차 텍스트가 만난 후 만들어진 의식적 효과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일반적인 이론 수고와 논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5) 기능적 심층 독해 방법: 장이빙은 ‘기능적 심층 독해 방법’을 제안한다. 이는 알튀세르의 ‘징후적 독해’에서 계시를 받은 것이다. 장이빙의 스승인 쑨보쿠이도 동일한 텍스트에 담긴 이중 논리를 파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장이빙은 이 연장선상에서 비교적 성격의 기능적 독해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특히 마르크스의 노트를 대할 때, 문자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많은 사고를 하는 것을 가리킨다. 특히 노트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복잡한 독해 구조, 예를 들어 전도적인 성격의 텍스트(예를 들어 『파리 노트』), 그리고 수고 텍스트의 복합적인 담론 구조(예를 들어 『1844년 수고』) 등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다.

6) 단어 빈도 통계연구: 텍스트 해석학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단어 빈도 통계연구’이다. 이는 저자가 제3판 수정작업을 진행하면서 이 책이 근거로 삼는 마르크스의 주요 독일어 텍스트에 대해 불완전하게나마 문헌학적 단어빈도 통계를 진행하면서 명명한 방법론이다. 이는 일본 학자 모치즈키 세이지로부터 얻은 교훈 덕분이다. 단어빈도 통계 방법은 문헌통계학(Biblimetrics)의 전통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이른바 단어빈도(term frequency)는 주어진 문헌에서 특정 단어가 그 문헌에 나타나는 횟수를 의미한다. 단어빈도 통계는 연구자가 일정한 연구목표에 따라 통계학 방법을 운용해 서로 다른 문헌 텍스트(예컨대 인터넷 검색엔진, 신문잡지, 역사문건, 개인기록 등)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핵심 어휘들을 수집하고 특수한 기호화 작업을 거친 뒤 정량(定量) 어휘빈도 분석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특정 시기 특정 단어의 사용 빈도수를 통해 마르크스의 개념 형성 과정을 고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한 사상가의 중요한 텍스트의 모국어 원문에 대해, 지배적 담론 구조에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개념 혹은 범주의 통계와 다른 시기에 발생한 중요한 사상 변이의 텍스트에 나타나는 단어빈도를 통계화해 시기에 따른 비교분석을 진행하고, 아울러 2차원적인 단어빈도 그래프에서 직관의 곡선을 표시해냄으로써 기존의 텍스트학 분석에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7) 경제학 맥락의 철학 담론: 부제에서도 밝힌 것처럼, 이 책의 새로운 관점의 하나는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이다. 문자 그대로,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의 심층적 맥락에서 그의 철학 담론의 전환을 새롭게 탐색해내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사후 최초일 것이다. 1842년 하반기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경제학에 관한 내용이 그의 중후기 학술 연구에서 70% 이상을 차지했고 만년에 이르러서는 그 비중이 90%에 달했다. 1846년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에게 순수한 철학과 과학적 사회주의는 독자적인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정치경제학 경전에 대한 텍스트 독해를 통해 경제학이 대면하고 있는 각종 상황이 바로 당시의 사회 현실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로부터 출발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학에 대한 이해와 깊이 있는 탐구를 완성해야 했다. 그리고 이 주도적인 연구 자체의 실질적인 과정을 분명히 해야만 철학과 과학적 사회주의 발전 경로의 진정한 기초를 근본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 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의 철학, 경제학, 그리고 사회와 역사에 대한 현실적 비판(과학적 사회주의)은 하나의 완전하고 시종일관 분리되지 않는 총체로서, 각종 이론 연구의 상호 간에는 상호 침투하고 포용하는 관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연구하려면 마르크스의 철학적 관점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철학적 분석이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와 완전히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이 두 연구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현실적 목적과 분리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장이빙은, 마르크스의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반드시 마르크스의 경제학 저작을 진지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형이상학적 거품 속에서 헤매게 된다. 이것은 또한 『마르크스로 돌아가다』가 본래 의도한 것이기도 하고 이 책의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 겨냥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8) 마르크스의 3대 담론 전환: 유물론―역사유물론―역사현상학: 장이빙은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세 개의 이론 정점을 지적하고, 그것이 마르크스 철학사상 발전과정의 3대 담론 전환 및 인식의 비약이라 칭하고 있다. 첫째 정점은 1844년으로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청년 마르크스가 수립한 인간주의 사회현상학의 󰡔파리 노트󰡕 가운데 󰡔밀 노트󰡕와 󰡔1844년 수고󰡕다. 둘째 정점은 1845년 1월에서 1846년 12월까지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마르크스의 첫 마르크스주의 문헌들, 즉 광의의 역사유물론을 창립한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와 󰡔독일 이데올로기󰡕, 그리고 󰡔마르크스가 안넨코프에게󰡕이다. 셋째 정점은 1847년부터 1858년까지로,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는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의 협의의 역사유물론 학설과 역사인식론 위에 역사현상학을 수립한 󰡔57-58 수고󰡕다.

마르크스 철학사상 발전의 첫 번째 전환은 청년 헤겔의 관념론에서 일반 유물론으로,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전환한 것이다. 장이빙은 이 전환이 마르크스주의로의 전향이 아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환은 󰡔크로이츠나흐 노트󰡕에서 시작되어 󰡔헤겔 법철학 비판󰡕과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를 거쳐 󰡔파리 노트󰡕 후기와 󰡔1844년 수고󰡕에서 최고점에 이르렀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 시기 마르크스의 사상 전환의 현실적 기초는 마르크스의 역사연구와 사회주의 노동자운동 실천의 접촉이었다. 하지만 이 단계의 후기에 마르크스는 이미 첫 번째 경제학 연구를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사상 배경과 사고의 맥락을 당시 유럽사상사의 총체적 단면에 놓는다면, 마르크스의 이 사상 전환은 단순한 이론 혁신이 아니라 여러 배경 요소의 제약 아래 발생한 논리적 승인이다. 배경 요소로는 포이어바흐의 일반 유물론과 헤겔의 변증법 외에 청년 엥겔스와 헤스, 프루동 등의 경제학에 기초한 철학 비판과 사회주의 관점도 있다. 그리고 청년 마르크스에게 표면적으로 부정당한 고전경제학의 사회유물론의 사유 경로와 방법도 있다. 마르크스는 이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사상 전환의 자료로 삼은 셈이다.

마르크스 철학사상의 두 번째 전환은 바로 마르크스주의 철학혁명, 즉 마르크스의 첫 번째 위대한 발견인 광의의 역사유물론을 수립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두 번째 경제학 연구(󰡔브뤼셀 노트󰡕와 󰡔맨체스터 노트󰡕) 과정에서 발생한 이 철학사상의 혁명은 「포이어바흐 테제」에서 시작하여 󰡔독일 이데올로기󰡕를 거쳐 󰡔마르크스가 안넨코프에게󰡕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전환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기초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마르크스의 과학적 비판의 기초가 형성된 것이었다. 장이빙의 새로운 관점은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실천과 기타 철학 관념의 영향을 받은 외에도 고전 정치경제학에서의 스미스와 리카도 사회역사관의 사회유물론에 대한 승인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적 초월 위에 역사유물론과 역사변증법을 수립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천유물론을 기본 입장으로 한 일정한 사회역사 단계의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의 사회관계에 대한 연구, 특히 과학적인 역사적 존재에 대한 ‘본체’적 규정에 관한 사유는 마르크스 철학 관심의 이론적 초점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 철학 연구의 새로운 단계는 사회현실의 경제학 및 역사학에 대해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이 특별한 혁명 시기에 마르크스주의 철학변혁의 발단과 정치경제학에 대한 과학 연구의 시작은 전통 연구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르크스가 먼저 역사유물론을 창립하고 나서 뒤이어 정치경제학 연구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철학사상의 세 번째 전환은 협의의 역사유물론과 역사인식론으로부터 역사현상학의 창립이라는 위대한 인식의 비약이다. 이러한 변화는 마르크스의 세 번째 경제학 연구에 기초한다. 이 변화는 󰡔철학의 빈곤󰡕에서 시작되어 󰡔런던 노트󰡕에서 크게 발전한 다음 󰡔57-58 수고󰡕에서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그 기초는 직접 마르크스 경제학 혁명의 탐색, 즉 마르크스의 두 번째 위대한 발견인 잉여가치 이론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1847년 이후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사회’를 생산력 발전의 최고점(‘인체’)으로 하는 인류 사회역사에 대해 과학적 비판과 고찰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이전 자본주의 사회,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역사에 대한 마르크스의 연구에서 인류사회 발전의 역사본질이 처음으로 과학적 설명을 얻게 되었고 모든 사회역사 발전의 특수한 운행법칙도 처음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인간과 자연(주위환경)의 관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관계가 처음으로 진실한 사회역사의 정경 속에 구체적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창립한 협의의 역사유물론 철학이론의 주요 내용이다. 자본주의 사회화라는 물질 대생산 발전과정에서 분업과 교환이 형성하는 생활조건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노동관계의 객관적 외면화(가치) 및 자본주의 시장조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물에 노예화되는 전도된 관계(자본)를 유발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역사적으로 유사 이래 사회생활 분야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차원과 내재구조를 구축하게 되고, 이는 필연적으로 독특한 비직접적 역사인식론의 완전히 새로운 철학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각종 전도와 사물화된 경제관계 가상을 통해 비판적으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물신숭배를 배제하고, 최종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을 설명하게 된다. 이것이 마르크스 역사현상학의 주체적 내용이다.

9) 다섯 번의 전환과 전도: 장이빙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마르크스에게 5차례의 방법론 전환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 전환은 단순하고 돌발적인 변화가 아니라 여러 차례 다차원적인 전진을 거쳐 완성된 복잡한 과정이다.

1838년부터 계산하면 첫 번째는 1843년 청년헤겔학파에서 포이어바흐식의 일반 유물론으로의 전향이었고, 두 번째는 1845년에 일반 유물론에서 방법론상의 역사유물론으로의 전환이었으며, 세 번째는 1847년 철학에서 현실 비판으로의 전향이었고, 네 번째는 1857-1858년에 역사현상학의 비판논리 실현이었으며, 다섯 번째는 경제학 표현 논리방법의 확립이었다.

시각을 바꿔보면 상술한 변화들은 마르크스 철학논리의 다섯 차례 전도를 말해준다. 첫 번째는 1843년 마르크스 철학 전제의 전도로서, 감성적 구체에서 출발한(실제로는 아직 비역사적 추상임) 논리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두 번째는 1845년 인지방법의 전도로서, 실천과 생산의 역사 ‘본체’라는 현실에서 출발한 논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연구내용의 전도로서, 역사현실에서 출발한 논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는 1857-1858년의 자본주의 사회 대상화의 표상 현상학의 전도였고, 다섯 번째는 경제학 이론 구축의 형식 전도, 즉 추상에서 구체로의 재귀환이었다. 물론 이처럼 복잡한 사상변화의 과정은 본질적으로는 상술한 3대 담론 전환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상의 길안내는 표지판의 위치를 지시할 뿐이다. 자세한 길 찾기는 독자들이 만보객(flâneur)이 되어 수행할 몫이다.

 

 

3.

 

3년 전 맑스 코뮤날레 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만난 정성진 교수가 장이빙 교수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의 번역을 제안해왔을 때, 내가 이 책 번역에 참가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2005년 리쩌허우(李澤厚)의 『중국근대사상사론』을 번역 출간한 후 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내 글 쓰는 데 투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국연구를 하면서 번역과 무관해질 수는 없었고, 그 후에도 여러 권의 책을 엮으면서 감역(監譯)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아울러 ‘문화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번역연구(translation studies)’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원에 관련 분야 과목을 개설하고 자연스레 논문 지도를 하게 되었다. 와중에 ‘번역연구’와 관련해 몇 편의 글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번역을 하는 것과 감역 및 번역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얼마 전 『루쉰전집』(20권) 완역 출간을 지켜보면서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질 책은 어쩌면 『루쉰전집』과 같은 대가의 글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옮긴이의 말을 쓰게 된 이유는 공동번역자의 하나인 김태성 선생과의 오랜 인연과 의리 때문이다. 석사과정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오랜 친구 김 선생과는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소식이 끊겼다가 만나는 과정을 두어 차례 겪었다. 그가 중국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된 이후에는 동업자로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정성진 교수가 이 책의 번역을 의뢰했을 때에도 중국 정부의 ‘중화도서특별공헌상’을 받은 번역자인 만큼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그를 소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김 선생이 제 시간에 번역을 완료하지 못함으로 인해(중국 출판사와의 계약 문제도 있었던 듯) 소개자로서의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번역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년 10월에 열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 맞춰 출간하면 좋겠다는 저자의 제안에 부응해야 한다는 주위의 강박에 못 이겨, 부득불 몇몇 동료들과 공동번역팀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팀의 일원인 김현석 박사는 번역한 원고를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촉급한 시간은 우리에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의 외적인 과정과 더불어, 내가 이 책의 공동번역을 조직해 참여하고 인고(忍苦)를 요구하는 통고(統稿)를 자임한 속내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중국학자가 ‘마르크스로 돌아가’ 그의 원초적 텍스트를 새롭게 검토하되, 정치경제학과 철학을 결합해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술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나아가 중국학자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읽어 낸 결과물에 대해 그간 서양에 경도되어 온 한국 학술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했다. 다행히 이 책은 저자의 학술 파트너인 정성진 교수의 추동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에 한국 학계의 적극적인 반응이 예상된다. 그리고 더 깊은 층위에는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띄엄띄엄 진행해온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습을 정리해보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은 주로 ‘중국어 『자본론』 독해 세미나’의 구성원이 담당했다. 중국어 『자본론』 세미나는 2017년 제8차 맑스 코뮤날레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재현 선생의 제안으로 구성되었다. 평소 한국의 진보 진영 학자들이 중국에 대한 이해(Chinese literacy)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관심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도 모여 중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며 이 세미나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2017년 7월부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선독―정치경제학(馬列著作選讀-政治經濟學)』(人民出版社, 1988)을 텍스트로 삼아 ‘참세상연구소’ 세미나실에서 격주 토요일 오후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시간 씩 독해 세미나를 해왔다. 지금은 독해 세미나에서 발제 토론 세미나로 변신한 『자본론』 세미나 팀에게 이 책의 번역은 훌륭한 실천과 자기검증의 장이 된 셈이다.

학제간 융복합과 통섭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전공 영역의 고유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옮긴이들은 대부분 중국 근현대문학을 기반으로 공부한 터에(경제학 전공의 김현석은 예외) 사회과학,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중국 근현대문학의 전공 특성상 마오쩌둥 사상 및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읽기도 하고 『자본론』 독해의 공동 학습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전공자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에 정치경제학의 권위자인 정성진 교수에게 감수를 부탁했고, 정 교수의 소개로 마르크스주의 철학 전공자인 서유석 교수에게 감수를 의뢰함으로써, 부족함을 보완하고자 했다. 아울러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 여러 차례 저자와 이메일로 확인 과정을 거쳤다. ‘손안에 있음’으로 번역한 상수성(上手性)이 대표적인 예다. 상수성이 하이데거의 Zuhandenheit(ready to hand, 도구존재성)의 중국식 번역어라는 사실은 저자와의 메일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오역이 있다면 이는 오롯이 옮긴이들의 몫이다. 3판 서문과 이끄는 글, 그리고 1, 2, 3장은 김태성, 4장은 김순진, 5장은 고재원, 6장은 임춘성, 7장과 저자 해제는 피경훈, 그리고 8장과 9장은 김현석이 맡아 번역했다.

이 책은 정성진 교수의 제안과 추동이 없었다면 출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형식적인 감수에 그치지 않고 거의 모든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판을 대조해 상세한 교정까지 진행해주었다. 특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2교 교정을 보면서 독일어 표기를 검토해준 서유석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저자가 마르크스 원전을 읽겠다는 일념에 반백이 넘어 독일어를 학습해서 원전을 대조해 병기한 노고를 치하하는 동시에, 독일어 표기에 일부 혼선이 있어 번역본에서 그것을 바로잡는 데 서 교수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밝힌다. 또한 저자와 옮긴이 그리고 중국 출판사 사이에서 정성진 교수와 옮긴이를 믿고 판권 문제를 원활하게 처리해준 난징대학의 쉬리밍(徐黎明)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흔연하게 출판을 수락해준 한울 출판사 김종수 사장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편집부의 신순남 선생에게도 감사드린다. 촉급한 시간과 공동번역으로 인해 난삽(難澁)하게 작성된 초고가 신 선생의 꼼꼼한 교열을 통해, 딱딱한 번역 투 원고에서 벗어나 순통한 우리말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겨진 번역 투의 문장은 당연히 옮긴이들의 책임이다.

지속적으로 학술공동체를 지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작업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각 성원들의 개성과 스타일, 그리고 학문 수준과 중국어 독해력 등을 감안해 하나로 묶는 통고 작업은 경이로운 다양함을 경험하는 과정인 동시에 독자에게 통일된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인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 나를 믿고 공동번역에 참가하고 많은 부분을 위임해준 옮긴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우리들의 이후 공부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2014년 1월 장쑤런민(江蘇人民)출판사에서 나온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고, 부분적으로 영역본과 일역본을 참조했다. 영역본은 두루뭉술한 번역이 많았고, 일역본은 설명적인 의역이 많았음을 부기해둔다. 독자 여러분의 생산적인 비판을 기대한다!

 

2018년 10월

옮긴이를 대표하여

임 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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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양장) -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
장이빙 지음, 김태성 외 옮김, 정성진 외 감수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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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옮긴이의 후기인 동시에, 번역과 교정 과정을 통해 텍스트를 몇 차례 꼼꼼하게 읽은 옮긴이가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제공하는 길안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서양에 경도되어온 한국 학술계에서 중국학자의 서양학 관련 연구서는 낯설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중국학자가 칸트의 비판철학을 연구한 결과물인 리쩌허우(李澤厚)의 『비판철학의 비판』을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는 일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 책 또한 중국학자가 마르크스 텍스트를 연구한 책이기에, 중국학자의 연구서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낯선 느낌이 없지 않을 것이다.

현재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연구 수준을 한 마디로 개괄하기는 어렵지만,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비판적 성격이 약화되고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주류가 관변적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책은 다소 달랐다. 중국 내 관변적 학자들은 장이빙(張一兵)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에 대해 어느 정도 이론적 급진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를테면 탕정둥(唐正東)은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와 당대 중국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발전」(2018)에서, 이 책으로 인해 중국 학계의 많은 학자들이 경전 텍스트 의식을 가지기 시작한 점, 경전 문헌을 운용할 때 뚜렷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된 점, 다성악(polyphony)적인 해석 논리로 마르크스 철학 및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심층적인 내용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된 점을 그 긍정적인 점으로 들었다. 하지만 비판적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장이빙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는 주류 이데올로기 범주에서 수행되는 연구의 일환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되 우리는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장이빙의 연구 성과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저자 장이빙은 난징대학 부총장, 난징대학 마르크스주의사회이론연구센터 주임, 마르크스주의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했는데, 그의 저서 목록은 그의 경력만큼이나 다양하다. 『마르크스 역사변증법의 주체 국면』(2002: 2판)과 『텍스트의 심층 경작―서양 마르크스주의 경전 텍스트 독해』(제1권, 2004; 제2권, 2008)는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와 더불어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연구서이고, 『무조(無調)식의 변증법적 상상―아도르노 ‘부정변증법’의 텍스트학 독해』(2001), 『문제설정, 징후적 독해와 이데올로기―알튀세르의 텍트스학 독해』(2003), 『불가능한 존재의 참―라캉 철학 영상(映像)』(2006), 『푸코로 돌아가다』(2006) 등은 서양의 마르크스주의자인 아도르노, 알튀세르, 라캉, 푸코에 대한 연구서이며, 『레닌으로 돌아가다―‘철학 노트’에 관한 포스트텍스트적 독해』(2008)는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와 비슷한 연구를 레닌에 대해 진행한 저서다. 특히 ‘돌아가다’의 표제가 붙은 세 권은 현상학의 취지에서 진행하는 ‘사상의 고고학’ 시리즈다. 그 연장선상에서 현재는 후배 학자들과 함께 『개념의 맥락과 사상의 고고학: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의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기』와 『하이데거로 돌아가다』라는 표제의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저자 장이빙이 마르크스뿐만 아니라, 레닌, 라캉, 알튀세르, 아도르노, 푸코, 하이데거 등을 폭넓게 전문적으로 연구한 경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저서들의 표제로부터 그의 주요한 연구방법이 텍스트 해석학 또는 포스트텍스트학임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책을 독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세 가지 주제어를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는 텍스트 해석학이고 두 번째는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경제학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의 전환이며, 세 번째는 저자가 자신의 연구를 명명한 역사현상학이다. 이는 저자가 해제에서 제시한 다섯 개의 키워드―마르크스로 돌아가다, 텍스트학 연구, 경제학 맥락, 잠재적 철학담론, 역사현상학―와 중복된다. 그 가운데서도 “이 책은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제2판의 최신 문헌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대량의 마르크스의 초기 경제학 노트를 독해했고, 이를 철학 이론 분석과 연결시킴으로써 학술적 혁신을 완성한 책”이라는 경제학자 훙인싱(洪银兴)의 평가처럼, 경제학과 철학의 융합적 해석은 이 책의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세 가지 주제와 다섯 개의 키워드를 주요 표지판으로 삼아 아래에서 간략한 길안내를 시작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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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로 돌아가다 (양장) -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
장이빙 지음, 김태성 외 옮김, 정성진 외 감수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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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맑스 코뮤날레 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만난 정성진 교수가 장이빙 교수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의 번역을 제안해왔을 때, 내가 이 책 번역에 참가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2005년 리쩌허우(李澤厚)의 『중국근대사상사론』을 번역 출간한 후 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내 글 쓰는 데 투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국연구를 하면서 번역과 무관해질 수는 없었고, 그 후에도 여러 권의 책을 엮으면서 감역(監譯)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아울러 ‘문화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번역연구(translation studies)’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원에 관련 분야 과목을 개설하고 자연스레 논문 지도를 하게 되었다. 와중에 ‘번역연구’와 관련해 몇 편의 글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번역을 하는 것과 감역 및 번역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얼마 전 『루쉰전집』(20권) 완역 출간을 지켜보면서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질 책은 어쩌면 『루쉰전집』과 같은 대가의 글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옮긴이의 말을 쓰게 된 이유는 공동번역자의 하나인 김태성 선생과의 오랜 인연과 의리 때문이다. 석사과정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오랜 친구 김 선생과는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소식이 끊겼다가 만나는 과정을 두어 차례 겪었다. 그가 중국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된 이후에는 동업자로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정성진 교수가 이 책의 번역을 의뢰했을 때에도 중국 정부의 ‘중화도서특별공헌상’을 받은 번역자인 만큼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그를 소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김 선생이 제 시간에 번역을 완료하지 못함으로 인해(중국 출판사와의 계약 문제도 있었던 듯) 소개자로서의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번역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년 10월에 열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 맞춰 출간하면 좋겠다는 저자의 제안에 부응해야 한다는 주위의 강박에 못 이겨, 부득불 몇몇 동료들과 공동번역팀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팀의 일원인 김현석 박사는 번역한 원고를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촉급한 시간은 우리에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의 외적인 과정과 더불어, 내가 이 책의 공동번역을 조직해 참여하고 인고(忍苦)를 요구하는 통고(統稿)를 자임한 속내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중국학자가 ‘마르크스로 돌아가’ 그의 원초적 텍스트를 새롭게 검토하되, 정치경제학과 철학을 결합해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술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나아가 중국학자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읽어 낸 결과물에 대해 그간 서양에 경도되어 온 한국 학술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했다. 다행히 이 책은 저자의 학술 파트너인 정성진 교수의 추동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에 한국 학계의 적극적인 반응이 예상된다. 그리고 더 깊은 층위에는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띄엄띄엄 진행해온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습을 정리해보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은 주로 ‘중국어 『자본론』 독해 세미나’의 구성원이 담당했다. 중국어 『자본론』 세미나는 2017년 제8차 맑스 코뮤날레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재현 선생의 제안으로 구성되었다. 평소 한국의 진보 진영 학자들이 중국에 대한 이해(Chinese literacy)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관심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도 모여 중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며 이 세미나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2017년 7월부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선독―정치경제학(馬列著作選讀-政治經濟學)』(人民出版社, 1988)을 텍스트로 삼아 ‘참세상연구소’ 세미나실에서 격주 토요일 오후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시간 씩 독해 세미나를 해왔다. 지금은 독해 세미나에서 발제 토론 세미나로 변신한 『자본론』 세미나 팀에게 이 책의 번역은 훌륭한 실천과 자기검증의 장이 된 셈이다.

학제간 융복합과 통섭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전공 영역의 고유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옮긴이들은 대부분 중국 근현대문학을 기반으로 공부한 터에(경제학 전공의 김현석은 예외) 사회과학,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중국 근현대문학의 전공 특성상 마오쩌둥 사상 및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읽기도 하고 『자본론』 독해의 공동 학습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전공자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에 정치경제학의 권위자인 정성진 교수에게 감수를 부탁했고, 정 교수의 소개로 마르크스주의 철학 전공자인 서유석 교수에게 감수를 의뢰함으로써, 부족함을 보완하고자 했다. 아울러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 여러 차례 저자와 이메일로 확인 과정을 거쳤다. ‘손안에 있음’으로 번역한 상수성(上手性)이 대표적인 예다. 상수성이 하이데거의 Zuhandenheit(ready to hand, 도구존재성)의 중국식 번역어라는 사실은 저자와의 메일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오역이 있다면 이는 오롯이 옮긴이들의 몫이다. 3판 서문과 이끄는 글, 그리고 1, 2, 3장은 김태성, 4장은 김순진, 5장은 고재원, 6장은 임춘성, 7장과 저자 해제는 피경훈, 그리고 8장과 9장은 김현석이 맡아 번역했다.

이 책은 정성진 교수의 제안과 추동이 없었다면 출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형식적인 감수에 그치지 않고 거의 모든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판을 대조해 상세한 교정까지 진행해주었다. 특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2교 교정을 보면서 독일어 표기를 검토해준 서유석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저자가 마르크스 원전을 읽겠다는 일념에 반백이 넘어 독일어를 학습해서 원전을 대조해 병기한 노고를 치하하는 동시에, 독일어 표기에 일부 혼선이 있어 번역본에서 그것을 바로잡는 데 서 교수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밝힌다. 또한 저자와 옮긴이 그리고 중국 출판사 사이에서 정성진 교수와 옮긴이를 믿고 판권 문제를 원활하게 처리해준 난징대학의 쉬리밍(徐黎明)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흔연하게 출판을 수락해준 한울 출판사 김종수 사장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편집부의 신순남 선생에게도 감사드린다. 촉급한 시간과 공동번역으로 인해 난삽(難澁)하게 작성된 초고가 신 선생의 꼼꼼한 교열을 통해, 딱딱한 번역 투 원고에서 벗어나 순통한 우리말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겨진 번역 투의 문장은 당연히 옮긴이들의 책임이다.

지속적으로 학술공동체를 지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작업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각 성원들의 개성과 스타일, 그리고 학문 수준과 중국어 독해력 등을 감안해 하나로 묶는 통고 작업은 경이로운 다양함을 경험하는 과정인 동시에 독자에게 통일된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인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 나를 믿고 공동번역에 참가하고 많은 부분을 위임해준 옮긴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우리들의 이후 공부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2014년 1월 장쑤런민(江蘇人民)출판사에서 나온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고, 부분적으로 영역본과 일역본을 참조했다. 영역본은 두루뭉술한 번역이 많았고, 일역본은 설명적인 의역이 많았음을 부기해둔다. 독자 여러분의 생산적인 비판을 기대한다!

 

2018년 10월

옮긴이를 대표하여

임 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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