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살피고 멀리 바라보기 - 왕샤오밍 문화연구
왕샤오밍 지음 / 문화과학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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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이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저의 두 번째 저서로 11편의 길고 짧은 글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언급하고 있는 주제들이 문학, 도시건축, 농촌문화, 국가정체성, 지적재산권, 대학교육, 새로운 이데올로기 등 다양하지만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최근 20여 년간의 중국 사회에 대한 강한 관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각과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새로이 부상한 중국사회상을 추적, 분석한 것으로 기본적인 착안점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으로 요약됩니다. 이 사회는 대체 어떠한 사회인가, 이 사회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 중국 사회에 관심이 있는, 특히 중국 정치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어느 정도 유용한 분석과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다분히 주관적인 사람인데다가 제 경험과 사상의 편향으로 말미암아 최근 30년 동안 일어난 중국 사회의 추이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은, 화폐로 표시할 수 있는 사회적 부는 지난 30년간 몇 배 증가했지만 화폐로 표시할 수 없거나 근본적으로 가치를 표기할 수 없는 삶의 내용들, 즉 상상력과 이상주의에서부터 공기와 강산에 이르기 까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다른 생물계간의 관계 등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더 심각한 것은, 중국의 경제규모가 신속하게 팽창함에 따라 중국에서 발생한 일들이 주변지역과 전 세계에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주변지역과 세계 다른 지역들에서 만들어진 크고 작은 위기와 재난 역시 중국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오랜 옛날부터 인류가 끊임없이 강해질 수 있기를 희망하며 만들어온 상호부조와 공동성장의 이상은 분명 보편적인 현실이 되지 못했으며, 오히려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상호 경계, 경쟁하며 피해를 주는 일이 날로 심화되고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20세기 대부분 시기에 비해 인류의 진보는 별로 뚜렷하지 않은 반면 퇴보는 점점 더 가팔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실망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싸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더 심혈을 기울여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아주 가망 없는 싸움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모두 과거에 숱한 암흑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암흑은 결코 영원히 하늘을 덮어버릴 수 없습니다. 봄날의 햇빛은 결국 대지를 비추고 초목도 결국엔 활짝 만개하게 마련입니다. 비록 그 후에 다시 혹독한 추위와 어두운 밤이 온다고 해도 말입니다.

각자가 내면의 의기소침함과 외부의 어두움에 저항할 때, 분투하는 사람들끼리 상호 소통하고 서로 격려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같은 지구화시대에, 스모그 발생이든 방사능 누출이든, 정치적 단견이든 자본주의의 곪은 상처든 이 모두는 지구적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앙에 저항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싸움 역시 반드시 지구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을 번역해준 역자들, 김명희, 변경숙, 고재원, 김소영과 고윤실에게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제 글들은 내용도 각양각색이고 규범에 벗어난 부분도 있기 때문에 번역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굉장히 바쁜 와중에도 이 책 번역을 이끌어 직접 감수 작업을 맡아주시고 한국 독자들에게 제 저작을 소개하는 해제까지 써준 임춘성 교수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2012년 상하이에서 출판된 자선집(自選集)의 제목입니다. ‘가까이 살피고(近視)’는 근자에 쓴 글에 대한 자신의 요약입니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했다 생각하지만 능력 부족으로 여전히 고도 근시인 사람처럼, 진정으로 통찰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제한적이었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멀리 바라보기(遠望)’는 제 자신에 대한 격려입니다. 앞으로 제 시야가 더욱 넓어져서 더욱 많이, 그리고 더 깊이 볼 수 있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20141월 툰먼(屯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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