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로 돌아가다 - 경제학적 맥락에서 고찰한 철학 담론
장이빙 지음, 김태성 외 옮김, 정성진 외 감수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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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맑스 코뮤날레 집행위원회 회의석상에서 만난 정성진 교수가 장이빙 교수의 마르크스로 돌아가다의 번역을 제안해왔을 때, 내가 이 책 번역에 참가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2005년 리쩌허우(李澤厚)중국근대사상사론을 번역 출간한 후 다시는 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역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내 글 쓰는 데 투여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국연구를 하면서 번역과 무관해질 수는 없었고, 그 후에도 여러 권의 책을 엮으면서 감역(監譯)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떠맡게 되었다. 아울러 문화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번역연구(translation studies)’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원에 관련 분야 과목을 개설하고 자연스레 논문 지도를 하게 되었다. 와중에 번역연구와 관련해 몇 편의 글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번역을 하는 것과 감역 및 번역연구를 수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얼마 전 루쉰전집(20) 완역 출간을 지켜보면서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질 책은 어쩌면 루쉰전집과 같은 대가의 글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럼에도 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옮긴이의 말을 쓰게 된 이유는 공동번역자의 하나인 김태성 선생과의 오랜 인연과 의리 때문이다. 석사과정부터 고락을 함께 해온 오랜 친구 김 선생과는 먹고사는 문제로 인해 소식이 끊겼다가 만나는 과정을 두어 차례 겪었다. 그가 중국어 전문 번역가의 길을 걷게 된 이후에는 동업자로서 자주 만나게 되었고, 정성진 교수가 이 책의 번역을 의뢰했을 때에도 중국 정부의 중화도서특별공헌상을 받은 번역자인 만큼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그를 소개했던 것이다. 그런데 철석같이 믿었던 김 선생이 제 시간에 번역을 완료하지 못함으로 인해(중국 출판사와의 계약 문제도 있었던 듯) 소개자로서의 도덕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번역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금년 10월에 열릴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기념 학술토론회에 맞춰 출간하면 좋겠다는 저자의 제안에 부응해야 한다는 주위의 강박에 못 이겨, 부득불 몇몇 동료들과 공동번역팀을 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팀의 일원인 김현석 박사는 번역한 원고를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촉급한 시간은 우리에게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상의 외적인 과정과 더불어, 내가 이 책의 공동번역을 조직해 참여하고 인고(忍苦)를 요구하는 통고(統稿)를 자임한 속내는 따로 있다. 무엇보다 중국학자가 마르크스로 돌아가그의 원초적 텍스트를 새롭게 검토하되, 정치경제학과 철학을 결합해 연구해야한다고 주장하는데, 그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논술되었는지가 궁금했다. 나아가 중국학자가 마르크스를 비판적으로 읽어 낸 결과물에 대해 그간 서양에 경도되어 온 한국 학술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했다. 다행히 이 책은 저자의 학술 파트너인 정성진 교수의 추동에 힘입은 바 크기 때문에 한국 학계의 적극적인 반응이 예상된다. 그리고 더 깊은 층위에는 이 기회를 빌려 그동안 띄엄띄엄 진행해온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습을 정리해보자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이 책의 번역은 주로 중국어 자본론독해 세미나의 구성원이 담당했다. 중국어 자본론세미나는 2017년 제8차 맑스 코뮤날레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이재현 선생의 제안으로 구성되었다. 평소 한국의 진보 진영 학자들이 중국에 대한 이해(Chinese literacy)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관심과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도 모여 중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고 하며 이 세미나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에 20177월부터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선독정치경제학(馬列著作選讀-政治經濟學)(人民出版社, 1988)을 텍스트로 삼아 참세상연구소세미나실에서 격주 토요일 오후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3시간 씩 독해 세미나를 해왔다. 지금은 독해 세미나에서 발제 토론 세미나로 변신한 자본론세미나 팀에게 이 책의 번역은 훌륭한 실천과 자기검증의 장이 된 셈이다.

학제간 융복합과 통섭이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전공 영역의 고유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옮긴이들은 대부분 중국 근현대문학을 기반으로 공부한 터에(경제학 전공의 김현석은 예외) 사회과학, 특히 마르크스주의에 익숙한 편은 아니다. 중국 근현대문학의 전공 특성상 마오쩌둥 사상 및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읽기도 하고 자본론독해의 공동 학습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 전공자라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이에 정치경제학의 권위자인 정성진 교수에게 감수를 부탁했고, 정 교수의 소개로 마르크스주의 철학 전공자인 서유석 교수에게 감수를 의뢰함으로써, 부족함을 보완하고자 했다. 아울러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 여러 차례 저자와 이메일로 확인 과정을 거쳤다. ‘손안에 있음으로 번역한 상수성(上手性)이 대표적인 예다. 상수성이 하이데거의 Zuhandenheit(ready to hand, 도구존재성)의 중국식 번역어라는 사실은 저자와의 메일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오역이 있다면 이는 오롯이 옮긴이들의 몫이다. 3판 서문과 이끄는 글, 그리고 1, 2, 3장은 김태성, 4장은 김순진, 5장은 고재원, 6장은 임춘성, 7장과 저자 해제는 피경훈, 그리고 8장과 9장은 김현석이 맡아 번역했다.

이 책은 정성진 교수의 제안과 추동이 없었다면 출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형식적인 감수에 그치지 않고 거의 모든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전문적인 용어와 내용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판을 대조해 상세한 교정까지 진행해주었다. 특별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2교 교정을 보면서 독일어 표기를 검토해준 서유석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저자가 마르크스 원전을 읽겠다는 일념에 반백이 넘어 독일어를 학습해서 원전을 대조해 병기한 노고를 치하하는 동시에, 독일어 표기에 일부 혼선이 있어 번역본에서 그것을 바로잡는 데 서 교수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밝힌다. 또한 저자와 옮긴이 그리고 중국 출판사 사이에서 정성진 교수와 옮긴이를 믿고 판권 문제를 원활하게 처리해준 난징대학의 쉬리밍(徐黎明) 교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흔연하게 출판을 수락해준 한울 출판사 김종수 사장에게 감사드린다. 아울러 편집부의 신순남 선생에게도 감사드린다. 촉급한 시간과 공동번역으로 인해 난삽(難澁)하게 작성된 초고가 신 선생의 꼼꼼한 교열을 통해, 딱딱한 번역 투 원고에서 벗어나 순통한 우리말 문장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겨진 번역 투의 문장은 당연히 옮긴이들의 책임이다.

지속적으로 학술공동체를 지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작업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각 성원들의 개성과 스타일, 그리고 학문 수준과 중국어 독해력 등을 감안해 하나로 묶는 통고 작업은 경이로운 다양함을 경험하는 과정인 동시에 독자에게 통일된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 인고의 과정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 나를 믿고 공동번역에 참가하고 많은 부분을 위임해준 옮긴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우리들의 이후 공부에 좋은 밑거름이 되기를 충심으로 기대한다. 이 책은 20141월 장쑤런민(江蘇人民)출판사에서 나온 제3판을 저본으로 삼았고, 부분적으로 영역본과 일역본을 참조했다. 영역본은 두루뭉술한 번역이 많았고, 일역본은 설명적인 의역이 많았음을 부기해둔다. 독자 여러분의 생산적인 비판을 기대한다!

 

201810

옮긴이를 대표하여

임 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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