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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포성
바바라 터크먼 지음, 이원근 옮김 / 평민사 / 2023년 6월
평점 :
퓰리처상을 수상한, 여기저기서 언급되는 명저의 한국어판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것 만큼 안타까운 일이 있을까요?
그래서 이 책이 다시 출간됐다는 소식에 큰 설렘으로 사서 읽게 됐습니다.
이 책은, 역사가의 글이라기 보다는 이야기꾼이나 만담가가 사람들 모아놓고 옛 이야기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느 부분에선 박진감 넘치게 몰입감을 주며 이야기를 끌고가지만, 잦은 인물 묘사나 비유, 교양 과시에선 살짝 발목이 잡힙니다. 옮긴이가 선택한 익숙하지 않은 고유명사들(예: 쌍 페쩨스부르크)도 부담되고요.
그런데, 대한민국 출판시장 어려운 거 뻔히 알기에 재출간은 그저 감사한 마음 뿐이지만 ‘개정판’이 맞을까요?
p469 경계심을 결명(경멸)했던, p557 무장섹력(세력), p602 파난(피난)갔다 등의 오자가 있는 것은 그렇다치고, 오역이라고 표현하기도 좀 그런 무성의한 오류들이 많은 점은 좀 아쉽습니다.
역자 후기에서도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전공자도 전문 번역가도 아닌 옮긴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오류들이 너무 많네요.
책 앞날개 저자소개
…1912년 1월 30일 뉴욕에서 태어난 바바라는…그녀의 할머니는 주 터키 미국대사를 지냈으며 숙부는 루스벨트 대통령 밑에서 재무상을 지냈던 유명한 집안의 딸이다.
>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주 오스만투르크 미국대사를 지낸 헨리 모겐소 시니어는 남성이고, 저자의 외조부 인데 왜 갑자기 할머니가 됐는지 모르겠네요.
p136 무정부주의자가 된 크로포트킨(Kropotkin, 1842-1921, 러시아의 지리학자 겸 무정부주의자, Mutual Aid라는 저서가 있음; 역주) 왕자,
> 크로포트킨은 공작의 4번째 아들인데, 적어도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왕자’는 아니죠.
,its Prince Kropotkin who became an anarchist,
원문의 Prince가 왕자뿐 아니라 제후, 공작, 후작, 대공 등에 널리 쓰이는 표현인데 말이죠.
p138 1915년 러시아 혁명이 터져 자신의 보호자가 실각하자 미아소에데프는…
> 1915년은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난 해가 아닌데 이상합니다.
In 1915,when his protector had finally lost office as a result of Russian reverses,
Russian reverses은 1915년의 대퇴각(Great Retreat)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군사적 후퇴를 했으니 국방장관이 실각했을테고요. 혁명은 뜬금없네요.
p178 평범한 애국자는 그 당시 진행 중이던 아일랜드 위기에 자신의 열정과 분노를 쏟을 만큼 이미 다 쏟아버렸다. “큐렉(Curragh)반란”은(1912년…;역주)
> 아일랜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 하나이며 이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되는 Curragh Munity(혹 incident)가 발생한 장소인 Curragh은 [커라]로 읽습니다. 원어 발음도, 국내 문서에서도 어디서도 [큐렉]으로 읽지 않네요.
p179 로이드 죠지는 “스튜어트 왕 이래 가장 중대한 문제가 이 나라에 일어났다”고 불길하게 말하면서, “내전”과 “반란”이라는 단어를 거론했다.
> 영국 역사에서 스튜어트 왕이란 왕은 들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스튜어트 왕조 시기는 내전과 혁명의 시기로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도 배우죠.
Lloyd George talked ominously of the “gravest issue raised in this country since the days of the Stuarts,” the words “civil war” and “rebellion” were mentione…
p190 그는 바바리아 공작의 딸로 독일 태생인 자신의 엘리자베스 왕비와 의논해 가며 편지를 작성했는데(중략)
그러나 알버트 국왕의 왕후인 호헨졸렌-지그마링겐의 공주 마리에가 프러시아 왕실의 가톨릭계 후손의 먼 친척이라는 왕실 간의 혈연 관계는 카이저가 회답을 하도록 움직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왕후? 왕후는 사용상 위상의 차이는 있지만 왕비와 같은 의미인데? 왕비가 둘이야 뭐야?
The kinship in question, which stemmed from
King Albert’s mother, Princess Marie of Hohenzollern-Sigmaringen, a
distant and Catholic branch of the Prussian royal family, failed to move the
Kaiser to reply.
알버트왕의 mother인데 왜 왕후입니까! 알버트왕은 전임 네오폴드2세의 조카고 아버지 필리프가 왕이 아니니 어머니 마리는 우리식의 ‘‘대비’도 아니고 그냥 ‘어머니’라고 번역했으면 되는건데 뜬금 왕후가 뭡니까.
그리고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은 공국이라 마리는 흔히 공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카를 안톤은 후작이고요. 위에 크로포트킨의 경우처럼 princess를 그냥 공주라고 쉽게 번역해버렸네요. 공주랑 공녀는 끝발차이가 많이 느껴지잖아요.
p399 야전의 무대를 인솔했던
> 야전 의무대인데, 갑자기 우정의 무대처럼 됐네요.
p414 왕립 공정대의 라이트 대위는
> royal engineers 즉 공병대네요.
공정대는 공수부대와 유사한 의미이고 주로 일본에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공병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P489 동맹국을 위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 원문은 a sacrifice for an ally,
‘희생양(scapegoat)’은 현대에서 흔히,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무죄한 대상의 의미가 강한데, 러시아가 그런 역할은 아니였으니 약간 무리한 표현이라 생각되네요.
sacrifice에 희생 제물의 뜻이 있으니, 그냥 희생 제물이라고 있는 그대로 번역했어야 옳다고 보입니다.
P491 국가주의가 난폭한 돌풍처럼 일어나면서,
> 원문은 nationhood인데 한국어에 명확한 어휘가 없지만, 국가주의는 부적절한 것 같네요. 1914년의 전쟁에 대한 지지와 열광(그게 사실인지는 논란이지만)는 민족주의나 애국주의와 좀더 가까운 양상이였으니까요.
P585 발칸전쟁과 만주사변에 대한 연구를 통해
> 원문이 Man-churian wars인데, 일본의 만주침략이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소련군의 일본 제국 하 만주 공격의 뜻도 있지만, 1914년 8월 시점에서 Manchurian war는 Manchurian war 1904, 즉 러일전쟁 뿐인데, 만주사변으로 번역한 건 당혹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