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읽을 때는 '이게 뭐야'라고 생각했던 「상실의 시대」를, 두 번째로 읽은 후에 '꽤 괜찮은 걸걸'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늘 그렇듯이, 나는 한 책을 여러 번 읽는 습관이 있다. 세 번, 네 번, 거듭해서 읽을수록 나는 이 소설에 강렬하게 매혹되었고, 그리하여 현재 상실의 시대는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소설 중 하나다. 하루키가 이 소설에서 와타나베의 입을 빌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어느 페이지를 펴서 읽어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는 멋진 소설이라고 말했듯이, 내게는 이 책이 그렇다. 

어떤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에게 존경심을 느끼기도하고, '분명히 이 사람은 천재일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많지만, 하루키에게는 인간적인 친밀감을 함께 느꼈다.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가 쓰는 글만을 보고도 '난 이 사람이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좀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지만.

그래서 이번 한국에 갔을 때 사온 건 하루키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였다. 이 책을 사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고 싶었던 책은 이미 다 사고 난 후였는데, 친구를 교보문고 근처에서 만났다가 서점에 들르게 되었다. 남은 돈은 딱 8,000원. 책 하나를 살까 했지만 이 가격에 맞는 책이 잘 없어서 헤메던 중, 눈에 띈 것이 이 책이었다. 아주 아주 반가워서, 기쁜 마음으로 계산을 했다.

진구 구장에서 야구를 보다가, 문득 소설을(매우 쓰고 싶어져서) 쓰기로 결심한 하루키가 쓴 첫 소설이다. 뭐니뭐니해도 첫 작품이라 그런지 이 소설은 굉장히 신선하다. 상실의 시대와 같이 세련되고, 완성미가 있는 문체는 아니지만 그 신선함,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느낌이 오히려 귀엽다고 할까, 정이 간다고 할까... 짧고, 심플한 소설이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제법 깊이가 있는 소설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진가가 느껴졌다고 할까.

하버드의 어느 교수가 그의 저서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두고 '하루키의 언어는 음악이다' 라고 말했단다. 그 말이 정말 맞다.

하루키의 소설은 언제나 변화하고 발전해 나간다. 이 작가는 한 곳에 머무르는 법이 없구나하고 새 소설을 읽을 때면 생각한다. 그야 물론 '하루키다움'은 어느 소설에나 남아있지만. 때로 다시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나 '상실의 시대'와 같은 소설이 이 사람에 의해 쓰여질 일은 없겠지(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지만, 없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하고 생각하면 상당히 아쉽다. 그래도 좋다. 지금, 하루키는 '더 아름다운 말로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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