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앨범은 정말 타이틀곡 뿐만 아니라 수록곡들도 정말 좋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트랙들이 적절하게 수록된 것 같다. 특히 4번 트랙 휘리휘리, 6번 Bye가 정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1. Intro(Daytime)에서부터 들어보면 기획된대로 낮에서 다음트랙이자 타이틀곡인 밤으로의 연결이랄까, 전개를 느낄 수 있다. 덕분에 역대 여자친구 Intro곡들 중에 제일 많이 들었다. 이젠 빈말로가 아니라 진짜 인트로도 좋다.
2. 밤(Time for the moon night). 분명 기존에 있던 여자친구의 타이틀곡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작곡가가 바뀌었고, 분위기가 바뀌었고, BPM도, 곡 길이도 기존과 다르게 빠르고 길어졌다. 물론 뮤직 비디오에서 보여지는 컨셉도 그렇고 안무가도 바뀌었으니 안무도 느낌이 달라졌을 것이다. 써 놓고 보니 이 정도면 거의 미니 4집(Fingertip)이래 최대의 변화라고해도 될 것 같다. 분명 청순 컨셉에서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어왔기 때문에 여자친구와 쏘스뮤직 입장에서 어찌보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미니 4집에서의 (개인적으로는 처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했다던 모 기업이 연상될 정도의) 컨셉부터 심지어 앨범구성에까지 걸친 대격변 이후에 상대적인 부진을 겪었고 청순으로의 회귀였던 미니 5집(귀를 기울이면)에서조차 그렇게 되면서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곡과 앨범은 쏘스뮤직과 여자친구의 고민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곡을 놓고 봤을때, 처음부터 귀에 꽂히기보다 은근히 계속 듣게 되면서, 들을수록 좋아지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밤(Time for the moon night)이 역주행을 하면서 커뮤니티에 몇몇 팬들이 ‘사실 처음에는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로 시작하는 고백을 털어놓은 걸 보면 나만 그렇게 느낀건 아닌가보다. 들을수록 아련함이 느껴지고 묘하게 중독성도 있다. 댄스 장르니까 낮에 들어도 좋을 것이고, 제목처럼 밤에 들어도 좋은 노래같다. 개인적으로는 ‘격정아련‘이라는 새로운 컨셉이 단어자체는 새롭지만 원래부터 좋아하던 곡들의 느낌과 매우 닮아있어서 정말 반가웠다. Cash Cash의 Aftershock나 Mako의 Our Story같이 일렉트로닉하거나 신나는 곡임에도 어딘가 슬프고 아련한 감정이 묻어나는 곡들이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고 계속 듣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은 곡들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자신있게 소개하고 싶어지는 곡들이었다. 밤도 그런 느낌과 가까웠다.
처음에는 다소 느리게 전개되는 (어떻게 생각하면 처지는) 느낌을 받게 될 수 있지만 1절 후렴 이후부터는 적당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해 나가면서 BPM 170에 걸맞게 빠른 진행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절 후렴 이후 브릿지와 고음 애드리브, 하이라이트 부분(기다렸던!순!간!)의 폭발적인 느낌까지 귀를 사로잡는 전개로 음원 사이트 스트리밍 창에서 붉게 빛나는 하트가 아깝지 않게 한다.
노주환, 이원종님이 작사,작곡을 했던 Trust나 그루잠은 모두 발라드였는데 이런 느낌의 곡이 나오고 보니 새롭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전향한 쇼트트랙 선수가 메달을 따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발라드의 아련한 감성과 댄스곡 장르가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3.Love Bug. 댄스팝 장르의 곡으로 원곡이 따로 있는 걸로 알고있다. 밝고 신나는 곡이고, 가사도 반딧불이를 연상시키면서 밤의 분위기를 잘 이어나가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서브 활동곡으로, 안무가 있는 노래인데 제목과 가사에 충실한 안무였던것 같다. 싫다는 얘기는 아니다.
4.휘리휘리 (Flower Garden). 미오(MIO) 형님들이 또 한 건 해냈다!! 기존에 있던 여자친구의 곡들과 유사한 분위기의 일렉트로닉 댄스곡인데 많은 팬들이 타이틀곡 감으로 거론하고 있다. 같은 쏘스뮤직 식구라서 여자친구 특유의 느낌을 잘 잡아낸건지는 모르겠다. Mermaid, 나의 지구를 지켜줘에 이어서 미오 특유의 동화같은 감성의 곡이 나올 것을 기대했고 실제로 기대이상의 명곡이 나왔다. 이제 미오 작사,작곡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5.틱틱 (Tik Tik). 7번의 타이틀곡과 그 밖의 수록곡들에서 작사, 작곡을 맡았던 이기용배 팀의 곡. 버디라면 느껴질지 모르는 특유의 사운드가 들린다.
6.Bye. 노주환 작곡가의 또다른 수록곡. 원래 보여주던 발라드 장르인데 확실히 이번 곡은 정말 좋다. 5분에서 6초 모자라는 다소 길이가 긴 곡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아련한 이별의 감성을 끌어나간다고 느꼈다. (사실 일렉트로닉을 자주 듣게되면 한 곡이 5분을 넘어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오히려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곡을 풀어나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음악에도 페이드 아웃이라는 말이 쓰이는지는 모르겠지만 곡의 마무리에서 아련한 애드리브와 함께 반주가 점차 페이드 아웃되면서 여운을 남긴다.
7.별 (You are my star). 팬송은 주로 여름에 발매되는 앨범에만 수록됐었는데 이번 앨범에는 이례적으로 수록됐다. 타이틀곡 제목인 밤과 떼놓을 수 없는 별을 팬송의 제목으로 정한 것에서 여러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팬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내용과 직접 팬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내용의 가사가 인상적이다. ZigZag Note 님이 작곡에 참여하신 Neverland나 나침반은 댄스나 하우스 기반의 신나는 곡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잔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8.밤inst. 노래를 빼고 곡만을 갚이있게 듣고 싶다면 들어볼 수 있겠다.

나는 위에서 썼듯이 이 앨범이 상당한 고민끝에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앨범소개나 기사에서 자주 보이는 ‘컨셉적 스펙트럼을 넓힌다‘ 라는 표현이 기존의 청순한 컨셉을 등지고 배수의 진을 치는 듯한 간절함을 느끼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이 앨범으로 실제로 컨셉적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성공했고 미니 4집에서 의도한 바도 결국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작인 미니 5집(귀를 기울이면)과 리패키지 앨범(여름비)이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점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떤 컨셉으로 진행될지 기대가 된다. 이제는 노래의 반응에 민감해져 있지 않고 쏘스뮤직이 기획한 것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리고 앨범의 분위기를 고려해 수록하지 않은 미발표곡들이 분명히 있어보이는데 어떤 곡들인지 궁금하다. 다음앨범을 기다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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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슬픔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뭔가 군데군데에 슬픔이 묻어있는 듯한, 담담하게 슬픔을 풀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의 정서와 닮은 듯한 책이다.
미인은 누구인가. 연화는 누구인가. 그점이 궁금해졌다. 이름이라는 단어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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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 the World : 힐 더 월드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지구행복 프로젝트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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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57 모든 사람이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지는 않는다. ... 그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학대받거나 착취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 세상의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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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사서 읽어 본 적이 거의 없는데 흔치 않게 최민석 작가님의 에세이 《베를린 일기》를 사서 읽었다. 아무래도 《풍의 역사》가 인상깊었거나, 최민석 작가님의 글솜씨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베를린(과 기타 유럽지역)에서 90일 동안 지내면서 매일 쓴 일기라고 한다. 일단 매일 (사실은 밀려서)일기를 쓴 그 성실함에 박수를 주고 싶다. 뭔가 컨셉을 잡고 시작한 일기 같았는데 계속 읽다보니 어디까지가 컨셉이고 어디까지가 작가님 고유의 문체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만큼 작가님이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잘 풀어냈기 때문인지, 원래부터 작가님의 문체가 거품(...)이 많아서 위화감이 없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재밌고 너무 무겁지 않아서 500페이지에 가까운 내용에도 읽기가 아주 수월했다(물론 사진들과 날짜표시 등으로 실제 글이 있는 페이지는 절반 정도다.). 가독성이 좋다고나 할까, 쉽게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최민석 작가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최민석 작가님의 책들은 대체로 빨리 빨리 잘 읽히는 것 같다(역시 최민석 작가님의 글은 재밌다는 인상을 준다.).
  내용에 있어서는 뭔가 실용적인 정보가 많다기보다는 그저 재미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원래 그렇게 나온 책이니 괜찮다. 70년대 문인들의 문체로 쓰는 수필을 표방했지만 다 읽고 보기에는 문인의 수필과 ‘유럽여행 갔다온 썰푼다.txt‘ 사이 쯤에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마냥 웃기지만은 않고 묵직한 명언이랄까, 깊은 생각에서 나오는 글들이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오오 여기서 이걸?).
 책의 특성상 솔직하게 적힌 글들이기 때문에 여행에서 느끼는(혹은 객지살이에서 느끼는) 감상들이 잘 드러나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고향(혹은 와이파이)에 대한 그리움, 평범했던 일상들에 대한 재평가, 여행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감정들, 여행을 마치기 전의 아쉬움 같은 게 잘 담겨있는 것 같다. 특히 사람들을 만나며 겪은 불편함, 고마움, 용서 등등의 감정들이 표현된 부분들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을 떠나는 건, 특히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건 특별하고 설레는 일이지만 항상 신나기만 할 수도, 즐거운 일만 있기도 어렵다. 오히려 불편하고 답답한 순간이 많을 것임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여행을 떠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멋진 풍경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일들은 여전히 멋지고 설레는, 매력적인 일이다. 그리고 여행같은 일탈을 통해서만 잊고 있던 일상의 가치를 실감하게 되지 않나 싶다. 일상에 지쳐 떠난 여행에서 얻는게 일상의 소중함이라니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여행에서 쌓게될 추억들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이 책을 읽고서 그냥 그런 생각을 해봤다. 여행을 갔다온 것도 아닌데 여행얘기를 하고 있다니... 글을 쓰다보니 부러워져서 나도 다음에 해외여행이나 다녀오고 싶어진다. 다음에  진짜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다면 나도 일기를 써봐야겠다. 알찬 여행얘기를 할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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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경찰은 위험인물을 잡아들여 자백을 받고 처형한다. 그것도 단두대에서. 벌써 뭔가 안 좋은 기분이 든다. ˝딱 보기에도 단두대를 세우는 사람을 믿어선 안 돼˝라는 대사가 떠오른다.(p.350) 게다가 여기에서 위험인물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위험인물로 지목된 순간 끝이다. ‘마녀사냥의 부활‘이라고 부를 만하다. 위험인물 제거라는 명목상의 취지보다 일종의 잔인한 오락으로 변질된 것 같다. 평화경찰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은 물론 위험인물이 되어 처형된다. 예로 TV토론에서 논거를 펼치며 강력히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아라시야마‘라는 평론가는 스치듯 언급되었지만 위험인물로 처형되었다.(p.46) 무소불위의 독재 권력, 독재 정치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당연히 독재 세력은 불만과 반대를 야기하게 마련이다. 검은 복장을 한 ‘정의의 편‘이 나타나 평화경찰을 방해하고 심지어는 평화경찰 형사 2명을 죽이는 일까지 벌인다. 그 이후로 책의 내용은 ‘정의의 편‘이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하게 됐는지, 평화경찰제도는 어떻게 될 지와 관해 재밌게 진행된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다양한 것 같다. 이 책의 교훈점에 대해 꼽으라면 독재정치는 무너지기 쉽다는 것부터 ‘상사에게 잘하자‘ 나 ‘정보를 미끼로 비아그라를 판매하려는 사회에 대한 풍자(...)(p.170, 심지어 비아그라를 사고 싶어도 그 페이지에서는 안 팔 가능성이 높단다...)‘까지 다양하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우선 정의와 위선에 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책의 내용 중에 흥미로운 점이 몇 있다. 그 중 하나는 정의를 대변해야할 경찰이, 책에서는 특히 ‘평화‘라는 단어까지 명칭에 포함하고 있는 평화경찰이 ‘정의의 편‘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점이다. 독자입장에서는 평화경찰이 못 된 짓을 일삼으니 ‘정의의 편‘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도쿄에서 파견됐다고 하는 마카베 고이치로라는 수사관 역시 ‘정의의 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흥미롭지 않았나 싶다. 이쯤에서 책에서도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책에서 정의에 관해 언급한 대목을 보면 ‘정의는 없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옮긴이의 말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마카베 고이치로의 말대로 ‘세상에 악 같은 건 없으며 전부가 정의라고 해도 될 정도‘(p.167)라는게 이 책에서 보이는 정의에 대한 입장인 것 같다. 여러가지 인물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그려낸 전개방식도 그런 입장에 한 몫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정의의 편‘은 불충분한 근거를 들어 시민들을 자의적 구금하고 고문, 처형하는 평화경찰로부터 시민을 구하는 일을 하지만 경찰인 니헤이가 보기에 ‘정의의 편‘이라고 불리는 검은 작업복 남자는 정의의 편도 아니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데다 취조 중인 동료 경찰까지 죽인 악인인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개념도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상당히 주관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인 호불호를 보편적인 정의의 잣대로 삼는 착각을 하게 되기가 쉬운 것 같다. 그럼 ‘대체 어떤 가치를 정의로 삼고 살아가야 하나‘하는 의문도 생기지만 그에 앞서 나에게 정의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살아간다면 좀 더 합리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자석을 묶는 데서 비유된 것처럼 하나의 생각으로 억지로 획일화된 사회는 좋아보여도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오히려 건강한 사회라면 갈등없는 사회보다는 건전한 갈등과 토론이 자주 일어나는 사회가 아닐까.

책에서 정의 못지 않게 의문을 던지는 듯한 주제가 있는데 바로 ‘위선‘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겉으로만 착한 체하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들은 단순한 악행보다도 믿었던 사람의 배신 행위에 더 큰 분노를 느낀다. 위선은 겉으로 선을 행하고 착한 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배신과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위선자‘에 대해 더 많이 분노하고 가증스럽게 여긴다. 일종의 배신감도 느낄지 모른다. 단순히 권선징악의 차원에서 위선자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더 나아가 선행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선행을 보인 사람은 선행을 칭송받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위선자가 아닌지 사람들의 주목과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위선자‘라는 틀은 꽤나 무섭다. 그간의 선행을 모두 뒤집고 위선자 본인은 악인이 되며 이전과 앞으로의 모든 선행들 또한 의심스럽거나 가증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그런데 아무나 위선자가 될 수는 없다. 악인은 위선자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이미 악인으로 알려진 사람이 사람들에게 선행을 한다면 위선으로 보이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위선은 착한 행동을 필요로 한다. 요컨대 한결같이 나쁘기만 한 사람은 위선자가 될 수 없고 한 번 이라도 선행을 한 사람이 위선자가 될 자격(...)을 얻는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할 것이다.) 이 쯤에서 책에서 던지는 의문을 생각해보게 되는데 ‘한 사람을 도와준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도와줘야 하는가?‘ 혹은 ‘히어로는 불행한 사람이 눈에 띄는 족족 다 구해야만 하는가?‘ 하는 맥락의 의문이다. 한 번 선행을 한 사람 입장에서는 위선자로 보이지 않기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까? 히어로의 딜레마라고도 할 수 있을까. ‘A는 도와주고 B는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걸까? 모두를 도와줄 수는 없는데 어쩌지?‘(p.256)하는 고민이 생길 수 있다. 한 사람을 도운 사람에게 모두를 도와야 한다 내지는 다른 사람도 도와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한 사람을 도왔다고 해서 그런 책임이 생긴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그렇다면 한 사람을 돕고 다른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위선인가, 아닌가? 그는 그저 한 번의 선행으로, 한 번의 착한척으로 좋은 평판을 산 것인가? 원래는 좋은 사람이 아닌데도?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느낄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그 점 때문에 ‘정의의 편‘은 활동에 있어서 분명한 원칙과 한계를 정하고 움직인다. 그렇게 해서 위선에 관한 문제와 고민을 대부분 해결한 것 같지만 여전히 뭔가 뒷 맛을 남기는 것 같다. 남을 돕는다는게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이었던가?

사실 그 밖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특히 마카베 고이치로라는 수사관의 이야기들은 언뜻 곤충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은유적으로 생각하면 그럴듯한 말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야쿠시지 경시장에게 일반 시민들을 벌레나 개미처럼 여기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개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이며 한 마리에 손을 댔다고 생각한 순간 수천 마리를 상대해야 하는 지경에 빠진다고(p.169) 했을 때는 정말 훌륭한, 좋은 은유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 해충의 종류에 관해 얘기하며 해충이라도 해가 없는 종류가 있으며 인간에게 방해가 되느냐 아니냐는 상당히 자의적이라고 할 때(p.261~263) 평화경찰이 선정하는 위험인물 또한 사회에 위험이 되는 사람을 고른다 해도 상당히 자의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가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잘 썼고 재밌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도 읽다가 어려운 부분 없이 읽을 수 있는 정도로 지루하지 않게 잘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그저 의심받는 사람을 물에 빠뜨리는 거야. 그러니까 죽기 전까지는 죄가 없다는 걸 밝힐 방법이 없는 거지. 죄다 그런 논리야. ..."
"그건 뭐야? 뽑히는 순간 끝이라는 소리잖아?"(p.10)

"... 아무리봐도 고문으로 사망한 게 분명한 사체를 앞에 두고 심장발작 이라고 버틴다, 그것이 바로 국가 권력입니다." (p.58)

"위험한 인물이 위험인물이 되는 게 아니라 우험인물로 지목된 사람이 위험인물이 될 뿐이라는 걸." (p.121)

"이쪽의 정의는 저쪽의 악,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아. 아무리 정당한 벌이라도 받는 입장에서 보면 악이 되니까." (p.123)

"... 세상에 악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전부가 정의라고 해도 될 정도죠." (p.167)

"역시 야쿠시지 씨는 일반 시민을 벌레나 개미처럼 생각하는군요. 아, 하지만 개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 중에 하나입니다. ... 개미에게 잘못 손을 대면 한 마리에 손을 댔다고 생각한 순간, 수천 마리를 상대해야 하는 지경에 빠지니까요." (p.169)

"맞습니다. S극과 S극을 나란히 맞추면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강한 자석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게 부수어 방향을 맞춥니다. 다만 방향을 뒤섞는 쪽이 안정됩니다."
"안정된다고요?"
"자력이 약해지지만 묶기도 쉽고 에너지 면에서 안정됩니다. 그러므로 자연계에서 안정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므로 사회인의 사고방식도 하나로 다 맞추지 않는 쪽이 자연적인 상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힘은 약하지만 안정됩니다." (p.242)

"위선, 위선 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은 단순히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꼴보기 싫은 게 아닐까 해서요." (p.270)

아버지의 머리를 스친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었을까.
곤경에 처한 한 사람을 구했다면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위선자!
그런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것을 증명했다. (p.335)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세상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니까. 그게 싫으면 화성에라도 가서 사는 수밖에 없지." (p.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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