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죄자
레이미 지음, 박소정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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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향기, 후각에 대한 서술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 19 확진으로 미각과 후각을 상실한 후에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되어있던 모 독자에게는 가혹한 처사였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7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이 지난한 격리 기간을 버티기에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이 책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는 격리기간 10 일 동안 채 반도 읽지 못했기 때문에 굳이 이 책을 집어들 이유는 없었지만.. 그건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다행히 그 독자는 격리 해제 즈음에 후각을 회복하여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완독했다는 소식이다.

그가 10 일동안 채 반도 읽어내지 못한데 비해 이 책의 후반절을 읽어내는 데는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반부에 들어서면서부터 끊임없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흡인력이 느껴졌다. 범죄 심리 전문가라는 작가 소개를 누차 읽어서인지 모르겠으나 레이미 작가님의 소설에서는 치밀한 심리묘사와 상황 설정이 돋보인다. 본인 같은 사람은 이런 묘사, 이런 서술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본인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어릴 적부터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범죄심리, 심리분석에 매료되어 행동 심리, 추리 소설 등의 서적을 탐독하지만 정작 전문가나 전공자는 아닌, 겉멋이 잔뜩 들어 범죄 심리에 발을 담그기를 수차례 시도하지만 ocu 에서 범죄 심리 수업 수강한게 경력과 경험의 전부인 범죄 심리 족욕 마니아다. 이런 사람의 경우 각종 심리 용어를 남발하며 셜록 놀이를 시도하나 현실 세계에서의 추리는 대부분 빗나가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아는 척은 오지게 하더라도 어차피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설에서 전문가의 품격이 느껴지는 텍스트를 만나면 좋아죽는다.

본인에게는 중반을 지나 책에 빠져든 시점에서 이미 문학적 완성도고 뭐고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이 책에서 눈여겨 볼 건 그게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때부터는 그냥 오로지 어떻게 끝맺는지 보는 게 목표일 뿐이다. 어차피 본인은 문학 전공자도 아니다. 치밀한 수사 기법과 심리 묘사를 사용해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 그 과정을 따라가며 범인이나 범죄의 단서를 상상하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 주는 주요한 즐거움의 장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너무 결말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추리를 쌓아가는 과정도 눈여겨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이 책에서는 후각적인 묘사가 많다. 이전에 법의학자 문국진 선생님의 저서에서도 후각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범죄심리 전문가인 레이미 작가님의 글에서 후각에 대해 집중하는 듯한 서술이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끝으로, 『심리죄』시리즈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작품 내에 문화에 관련된 서술이 종종 보이는데 이해를 돕는 역자 주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어 편하게 글을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궁금한 점은 원문이 간체로 되어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인명이나 지명을 표기해줄 때는 항상 번체로 되어있어서 어떻게 번체 표기를 찾아낼까 하는 점이다. 번체자와 간체자가 일대일 대응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종종 여러 번체자를 하나의 간체자로 통합해놓은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번체로 된 한자에 익숙한 한국 독자를 위한 역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장면인 듯 싶기도 하다.


(외로운 분들은 이 책을 좋아할 이유가 있지 않다면 읽으면서 주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모 독자는 12월 24일 저녁에 홀로 외롭게 책을 읽다가 사진의 문장을 보고 크게 놀라 혹시 몰라서 준비했던 술병을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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