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에서의 도피 - 세계적 지성 프랜시스 쉐퍼의 대표작 완전 개정판
프란시스 쉐퍼 지음, 김영재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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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평. 『이성에서의 도피』, 프란시스 쉐퍼.


표지에서 이미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신학 전공자에게는 필독서다. 하지만 일반 신도들에게도 필독서다. 제목이나 저자가 주는 무게감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재밌다. 특히 신학적 사고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넘치도록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논리적인 글을 읽을 때 감겨오는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너무나 중요한 사실들을 진지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재밌다. 진지한 내용을 다루지만 어렵지만은 않다. 가독성도 좋다.



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다. 예컨대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의 자격 두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러한 교리가 왜 애매한 것인지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종교개혁의 구원관과 선명하게 대조시킨다. 종교개혁의 구원 견해는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그 사실 이외에 다른 것이 슬쩍 끼어들 여지가 없음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그러한 사실이 쓰여있는 성경을 신뢰해야 하고(sola scriptura) 성서를 믿는 믿음(sola fide)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쉐퍼는 토마스 아퀴나스나 키에르케고르와 같은 대신학자들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며 비평한다. 예컨대 아퀴나스가 인간의 지성을 전적 타락의 영역에서 제외시킴에 따라 이후 교회와 세계가 어떻게 영향받았는가에 대해 설명한다. 아퀴나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은 은총(하나님, 그리스도인의 신앙, 인간의 영혼)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신앙은 상층부로 분리시키고, 자연(땅, 세속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활동, 인간의 육체.)은 이성적인 것으로 이해하며 하층부로 가두는 이원론적 신앙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영향은 신학 뿐 아니라 예술과 철학 등의 일반세계에까지 광범위게 미쳤다. 쉐퍼는 넓고도 깊게 신학의 흐름과 세속의 역사를 짚어간다.


읽는 족족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영양 많고 품질 좋은 소고기를 먹는 것 같다. 약간 퍽퍽한 감도 있다. 소고기 중에서 무거운 살코기만 모여있는 부위를 도려내서 구워준 느낌이다. 하지만 문장들 이면에 육즙이 풍부해서 무조건 맛있는 고기다. 이렇게 고급진 퍽퍽함이 오랜만이다. 아마 오래 전에 낸시 피어시의 글을 읽을 때도 비슷한 흥분이 있었던 것 같다. 답답한 도시를 떠나 불쑥 밤기차를 타고서 밤바다를 볼 때와 같은 벅참이다. 캄캄한 어둠 저 너머로 어렴풋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보이고, 바위에 세차게 부딛히는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리는 듯한 장엄한 설렘이 있다.


지적으로 충만하다보니 그 자체가 이미 재미의 요소가 되는 느낌이다. 프란시스 쉐퍼처럼 지적으로 풍부한 사람들은 쏟아내는 언어의 밀도가 너무 높아 빨려들어갈 수 밖에 없다. 문장들 사이에 생략된 전제와 짧은 문장들이 품고 있는 깊이에서 저자의 목마름과 확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며 조금씩 흥분이 되었다. 나의 무지함과 지식에 대한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아주 오래 허기졌던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게걸스럽게 한번에 먹어치우고, 책을 덮고 이를 쑤실 책은 아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 저녁식사를 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갈 만한 격조있는 책이다. 절대로 한 번 읽고 모두 다 이해하고 모두 알았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비판적으로 보든 더 깊이 수용하기 위해 고심하든, 정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읽고 또 읽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야 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은 얇지만 내용은 얇지 않다. 단숨에 읽힌다고 잡지처럼 가볍게 대해도 좋은 책이 아니다. 신앙에 대해, 인생에 대해 진지함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어느새 프란시스 쉐퍼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의 문장들을 무게감있게 대하게 될 것이다. 읽고 또 돌아가 읽으며, 자신의 믿음을 단락 단락의 옆에 두고 신앙의 결들을 맞춰보게 될 것이다. 영문책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다.

현대인의 기원은 몇몇 시기로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세계를 실제로 변화시킨 한 사람의 사상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흔히 ‘자연과 은총‘으로 불리는 것을 처음 논의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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