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을 쫒는 아이’. 나는 이 두꺼운 책을 하루 만에 읽었으나 한 페이지의 서평을 쓰는 데는 일주일이 걸렸다. 이 책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소개를 하든, 그 감동이 이루 전달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수도 없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이야기에 앞서, 만약 당신이 스포일러를 당해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조용히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기 바란다.

책은 우리에게 아미르의 시점으로 하자르인 종인 하산, 위대한 아버지 바바, 그리고 하산의 아버지인 알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라온 아미르와 하산은 그 어느 젖먹이 형제들보다 친하게 지낸다. 하산은 아미르에게 종 이상이었고, 아미르는 하산에게 주인 이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어떠한 장치를 마련한다. 이를테면 ‘아미르가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은 바바였고, 하산이 태어나서 처음 한 말은 아미르였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솔직담백하되, 노골적이지 않은 책이었던 것 같다. 하산과 아미르가 형제처럼 지냈듯, 바바와 알리도 오랜 시간을 주종관계 이상으로 함께했다. 저택은 아름다웠고 병든 옥수수 담이 있는 정원도 그랬다. 그들에게는 멋진 자동차와 맛있는 음식,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돈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에덴동산’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소련이 오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을 울리자, 머지않아 카불은 쑥대밭이 되었다. 곳곳에서 하자르인들이 학살되었다. 탈레반이 차지한 아프가니스탄의 실상은 더욱 처참했다.

책의 몰입을 도와준 요소들은 많지만, 특히 자세한 묘사가 담겨 있는 문체의 도움이 컸다. 글쓴이의 감성적 묘사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글쓴이의 표현력이 아름답다는 데에는 나 말고 다른 독자들 또한 동의할 것이다. 책의 초반부를 읽는 내내 아미르의 어린 날이 그려졌으니 말이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어린 아미르의 눈으로 세상을 그렸고 그 효과는 컸다. 내 머릿속에 ‘카불의 에덴동산’이 생생하게 그려졌으니 말이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드넓은 언덕을 뛰어가면 피처럼 붉은 석류가 매달린 나무가 있을 거라는 상상은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감정묘사는 결코 미숙하지 않았고, 오히려 손에 땀을 쥘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적 요소만으로 이 책에 찬사를 보내는 바는 아니다.

100페이지에서부터 책은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200페이지에서는 펑펑 울었으며, 마지막에는 급기야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껍기까지 했다. 글쓴이 특유의 묘사력이 비단 아름다운 카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쑥대밭이 된 카불에 대해서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책의 ‘열람 가능 연령’을 정한다면 19세 판정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프가니스탄 분쟁에 대한 묘사는 적나라하다. 강간을 당하는 어린아이의 모습, 눈알이 튀어나오고 다리가 잘려서 걸어 다니는 전후 카불 사람들, 사람의 하반신을 묻어 놓고 돌을 던져 처형하는 잔인한 탈레반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다. 솔직함이 필요했다. 비록 소설일지라도 아프가니스탄의 실상과 처참함을 노골적으로 담았기 때문에 이 소설이 작품성과 사회성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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