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8
강화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려서부터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언니 지수보다 뛰어났던 미수. 엄마는 그런 미수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으며 자랑스러워했다. 반면, 그네 타기 하나 제대로 못하고 무서워하던 지수는 항상 동생인 미수보다 뒤처졌고 엄마도 그런 그녀에게 큰 기대는 없었다. 어느 날 지수는 전세 사기로 빚을 지고, 엄마가 살던 집으로 이사 오면서 엄마와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지수는 매일 악몽에 시달리며 새벽마다 잠에서 깬다. 자신이 미워하는 인물들의 등장에 소리를 지르며 깨는데, 그 인물들 중에는 놀랍게도 미수와 엄마도 포함되어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악몽을 꾸고 새벽에 깨어난 지수.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 그네에 앉아있던 중 누군가를 발견한다. 매일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 지수는 그 여성을 따라가는데, 그녀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헬스장이었다. 그녀는 거기서 얼떨결에 PT를 등록하고 운동을 시작하며 삶에 활력을 얻기 시작하는데...

🏷운동을 배운 지 겨우 한 달 반이었지만, 지수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 그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지수의 몸이 변화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매일 새벽 지수를 집 밖으로 나가게 만드는 건 바로 그 감각이었다. 아주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기분.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 삶의 다른 것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P.69)

세 모녀의 갈등 속에서 수동적인 한 여성이 성장하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기존의 가부장제의 관념을 바꿔버린다. 여태껏 가부장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늘 여성이었다. 하지만, 강화길 작가의 신작 <풀업>에서 남성이 부재한 가정에서조차 가부장적 위계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통념을 뒤집어버린다.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지만, 스스로 떳떳하지 못해 미수의 눈치를 봐야만 했던 지수는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가부장제의 피해자였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가족서사이지만, 가부장제의 피해자로서 오랫동안 지내온 소극적인 한 여성의 성장 서사로 볼 수 있다. 집안의 대소사를 직접 챙기며 실질적 가장 역할을 하는 동생이 만든 신(新)가부장제의 위계 속에서 움츠러든 한 여성이 비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속에 담아뒀던 응어리진 말들을 내뱉음으로서 주체적인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지수의 상황에 놓여있는 많은 이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엄마가 너만 보고 있을 때... 부담스럽지? (P.112)

엄마의 생일에 PT를 받는 자신을 나무라는 듯한 미수의 말에 지수는 한바탕 퍼붓고 싶지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이제 엄마 품에서 독립하겠다고. 마지막에 자신이 전세 사기를 당했을 때 동생이 준 500만원을 다시 되돌려주며, 지수가 건넨 그 말에는 비뚤어진 위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저항이 담겨 있다. 그렇게 그녀는 한 뼘 더 성장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