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유죄 -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여성을 위한 변론
김수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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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여성들의 싸움은 돌을 굴려 산 정상에 올려놔도 내일 다시 또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절망과는 다른 것이다. 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같은 싸움은 없다. 포기하지 않은 싸움에는 늘 한발 전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자신의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많은 여성들이 그녀의 용기에 힘을 얻어 차마 꺼내지 못했던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고백하는 이른바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는데, 그 당시 정말 충격적이었던 건 그 피해여성들의 피해 현실보다 그 기사를 접한 주변 남성들의 반응이었다. 서지현 검사의 외모 품평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무 근거없이 그녀들을 꽃뱀 취급하는 남성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며 남성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모호한 명분을 만드려는 그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이 아닌 보편적인 남성들처럼 보일 정도였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과연 이 시대의 여성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대로 보호받고 있을까? 언제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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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어떻게 여성들을 외면해왔는가?

 

이 작품은 현직 변호사인 저자가 지난 20년간 실제로 법정에서 마주했던 다양한 사건들을 사례로 여성들의 인권이 (마땅히 보호막이 되어야 할) 법 앞에서 어떻게 무참히 짓밟히고 외면받는지를 낱낱이 보여준다. 디지털 성범죄, 직장 내 성희롱, 아동 성착취, 가정폭력, 호주제, 낙태죄, 미혼모/입양 문제, 위안부 피해자 문제 그리고 코로나 시대의 여성 노동자까지 광범위하게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여성들을 변론하며 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해 싸워온 저자는 '여성 인권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지적하며 법이 약자(피해자)의 편에서 올바르게 작동할 것을 촉구한다. 이는 여성으로서 처해있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토로이자 지금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사회에 함께 연대해달라는 분명한 외침이다.

 

저자는 얘기한다. 여성들의 싸움은 가끔 승리하지만, 많은 경우 여전히 패배한다고. 그럼에도 여성을 위한 변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나는 희망한다. 여성들의 싸움이 가끔 패배하더라도 많은 승리가 이뤄지기를. 그렇게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여성들을 대해 주기를.

 

여성 인권에 대한 덜 성숙한 사회적 인식이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 <아주 오래된 유죄>는 폭력과 억압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어 있는 여성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많은 남성분들이 꼭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내가 꿈꾸던 미래는 새로운 것이 가득한 세상이었는데, 막상 맞이한 건 아주 오래된 것들이 더욱 썩고 부패해 냄새가 진동하는 미래였다.
- P27

희망의 좌절보다 희망의 실현을 믿고 싶다. 혐오와 차별의 언어보다 공감의 언어가 훨씬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믿고 싶다. - P53

미성년자는 미성숙하여 어른이 보호, 양육해야 한다는 주장이 왜 성인 남성과의 성적인 문제로 얽히면, 남녀 간의 사랑에 따른 성적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둔갑하는가. - P63

여성의 사정이 아니라 국가의 사정, 아들을 낳아야 하는 집안의 사정 등 저마다의 사정을 들이대며 낙태를 종용하고 허용했다. 오직 금하는 것은 여성의 사정, 여성의 결정에 의한 낙태뿐이다. - P140

낙태를 하면 생명을 경시하는 무책임한 여자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막상 아이를 낳으면 미혼모라고 손가락질하고 양육지원도 미흡하여 결국 전과 같이 입양을 선택하게 하는 현실인 것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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