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 - 한국에서 10년째 장애 아이 엄마로 살고 있는 류승연이 겪고 나눈 이야기
류승연 지음 / 푸른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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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내가 살던 곳에도 동네 바보형이 있었다. 사시사철 런닝과 팬티만 입고서 이 거리 저 거리를 왔다갔다 하던 형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괴성을 지르며 혼자서 신나서 뛰어다녔던 형. 그 당시(1980년대)에는 '발달장애'라는 말이 없었다.(물론 학술적으로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른들이 발달장애라는 말을 하지 않았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저 모자른 형, '바보'라고 명칭하며 그 형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자신과 다른 이상한? 형이라고 생각하며.


[장애인,

어감 자체가 무겁고 왠지 회피하고 싶어지는 단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다만 그들 마음 속에 우리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어린왕자가 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지구인이던 우리와 달리 먼 우주에서 온 듯 보이는 그들은 지구인의 생활양식을 매우 천천히, 시간을 들여 배워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바란다. 대한민국의 많은 어린왕자들이 무사히 지구에 안착할 수 있기를. 지구 적응에 실패해 '나홀로 행성'안에 갇혀 버리거나 우주로 떠나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게 되기를. 그렇게 되도록 지구인들이 조금만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봐주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p 13


유명한 사극드라마 '허준'에서 허준의 스승이 자신의 손자가 한센병 환자에게 죽임을 당한다(그 당시에 어린아이의 간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그러자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한센병 환자를 죽이는데 그 후 큰 후회를 하며 이렇게 되뇌인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뜨거운 붉은 피를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는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이상한? 취급을 한다.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아이들은 장애, 비장애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어떠한 기준도 가지지 않고 상대방을 대한다. 하지만 점차 커가면서 그 기준이 생기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모두 어른들, 언론 등이 세워준 잘못된 기준인 것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에 왼손잡이들은 어른들에게 많이 혼났다. 기어코 아이들을 오른손잡이로 교정하기 위해 때리기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지금은 오히려 왼손잡이들이 두뇌발달에 더 좋다며 권장하는 꼬라지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이제는 아이들이 양손잡이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있는 실정이다. ㅡㅡ) 지금도 왼손잡이용 가위를 쉽게 볼 수 있지는 않다. 그만큼 왼손잡이를 위한 물건들이 상용화되어있지 않다. (후배중에 왼손잡이가 있는데 학교 다닐때 참으로 힘들었노라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왼손잡이인 사람도 일상적인 생활에서 어려움이 많은데 장애인들은 얼마나 힘들것인가, 말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이야기하지 말자.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관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도 '틀린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장애인은 삶의 한순간에 짧게 스쳐간 불쌍한 '타인'이 아니다. 언제고 내가 당할 수 있고, 내 가족이 당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겪고 있는 '이웃'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하고 싶어했던 장애 이해 교육의 핵심이다.]

-p 126


자신과 다르다는 것이 그렇게 차별받아야 할 일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장애인 특수 학교를 세우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아동 학부모들을 무슨 원수대하듯 대하는 사람들을 보며 정말 분노가 치밀었다. 그런 그들 앞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으며 호소하는 학부모들에게도 화가 났다. 자기 자식 귀한줄 알면 다른 사람 자식 귀한줄도 알아야하는데 그놈의 돈, 돈, 돈.... 배우려고 하는 것이 죄인가?! 우리가 수없이 내고 있는 세금들-과자 하나 먹는데도 세금이 붙는다-은 세상을 좀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아름답게 만들어달라고-개인적으로 그것이 바로 복지라고 생각하는데- 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이 생각났다. 그 영화에서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반항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둘째 아들을 평생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둘째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완전히 사랑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장애인을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외계인보듯이,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몹쓸 병 걸린 환자 보듯이 하지 말고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처럼 자신들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아달라고.


지금이라면 어렸을 적 보았던 그 동네 형에게 '안녕'하고 인사라도 할 텐데, 다른 아이들과 같이 그 형이 신나서 '우캬캬'할때 웃으며 박수라도 쳐줬을텐데. 우리는 그들을 '자연스럽게 보는 시선'을 배우지 못했다.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게 가장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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