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사랑, 그러나 슬픔...
박해인 지음 / 창작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읽으며 나는 독자로서 당연히 그에 맞는 응당한 대가를 치루길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 소설은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차단되었지만, 현실조차 소송까지 간다해도 소년법때문에 우리들이 원하는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희망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 작가가 원하는 메시지였을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년법상 특수형사사건은 엄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또한 사회에서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의 폭력사건을 자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떳떳한 어른이 되기위해, 괴롭지만 이런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학교폭력으로 점철된 주인공들, 왕따를 당하는 소녀, 폭력이 난무한 집단, 결국은 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현실 등등 적나라한 실상을 담고있다.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운 폭력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우울하고 삐그덕대는 소설 속에서 그나마 주인공들에게 위안을 주는 따뜻한 대상은 고양이 뿐이다. 피해자의 누나도, 가해자의 아버지도 일그러진 일상을 고양이를 돌보며 차츰 위로를 받아간다.

그러나 저 누나의 남동생은 폭력에 매말라가고, 저 아버지의 아들은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에겐 고양이의 따스함이 깃들지 못했나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딱히 별다른 이유없이 틀어졌다. 겨우 중학생인 이 어린아이들이 폭력을 처음 행사한건 게임 포인트때문이었다. 다만 피해자인 아이가 그 사실을 스스로 방관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폭력의 범위가 잔인해져만 갔다. 가난한 이 아이의 사정을 알면서도 돈을 가져오라 때리고, 게임 승률을 높이라며 때리고, 그냥 아버지에게 혼이나서 때리고, 무엇이든 계기만 생기면 아이를 때렸다. 가해자는 두명이고 피해자는 한명이다. 그 아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만 신음을 참아가며 흠씬 두들겨맞고 애원하고 매일 얻어터지는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반친구가 담임에게 일렀지만 담임교사 조차도 일을 크게 벌리기 싫어 친구사이의 주먹다짐으로만 치부해버리고, 그 일로 상황은 더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반친구들의 방조, 어른들의 무관심은 소름끼칠 정도로 이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피해자인 아이는 도통 그 어디에도 하소연을 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경찰에게도 신고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당해낸다.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해도 도움을 받을수 없을거라는 절망감밖에 없는걸까?



결국 피해자는 그동안의 일을 밝히지도 않고 그저 몸을 던져 자살 해버린다. 아버지의 곁에 간다는 말만 하고서. 어머니는 알수 없는 아들의 자살을 겪고 큰 상심을 하게된다. 당연하다.. 뭘 알아야 돕지... 결국 아이를 화장까지하고 나서, 반 친구의 제보로 아이가 그동안 학교폭력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제야 학교에, 가해자들에게 무슨일이냐고 따져묻지만 증거도, 학교의 진실성도, 가해자의 사과도 너무나 미약하다.

그냥 벌어진 사건이 되어버렸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찾아간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사죄하며 천만원을 드린다. 피해자쪽의 사정을 뻔히 알기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누나의 대학비용으로라도 대라는 심정으러. 가해자들은 한명은 일진회로 빠지고, 한명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된다. 그렇게 소설은 허무하고 짜증나고 누구나 바라지 않는 결말로 끝이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독자로서 당연히 그에 맞는 응당한 대가를 치루길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 소설은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차단되었지만, 현실조차 소송까지 간다해도 소년법때문에 우리들이 원하는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희망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 작가가 원하는 메시지였을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년법상 특수형사사건은 엄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또한 사회에서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의 폭력사건을 자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떳떳한 어른이 되기위해, 괴롭지만 이런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학교폭력으로 점철된 주인공들, 왕따를 당하는 소녀, 폭력이 난무한 집단, 결국은 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현실 등등 적나라한 실상을 담고있다.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운 폭력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우울하고 삐그덕대는 소설 속에서 그나마 주인공들에게 위안을 주는 따뜻한 대상은 고양이 뿐이다. 피해자의 누나도, 가해자의 아버지도 일그러진 일상을 고양이를 돌보며 차츰 위로를 받아간다.

그러나 저 누나의 남동생은 폭력에 매말라가고, 저 아버지의 아들은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에겐 고양이의 따스함이 깃들지 못했나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딱히 별다른 이유없이 틀어졌다. 겨우 중학생인 이 어린아이들이 폭력을 처음 행사한건 게임 포인트때문이었다. 다만 피해자인 아이가 그 사실을 스스로 방관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폭력의 범위가 잔인해져만 갔다. 가난한 이 아이의 사정을 알면서도 돈을 가져오라 때리고, 게임 승률을 높이라며 때리고, 그냥 아버지에게 혼이나서 때리고, 무엇이든 계기만 생기면 아이를 때렸다. 가해자는 두명이고 피해자는 한명이다. 그 아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만 신음을 참아가며 흠씬 두들겨맞고 애원하고 매일 얻어터지는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반친구가 담임에게 일렀지만 담임교사 조차도 일을 크게 벌리기 싫어 친구사이의 주먹다짐으로만 치부해버리고, 그 일로 상황은 더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반친구들의 방조, 어른들의 무관심은 소름끼칠 정도로 이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피해자인 아이는 도통 그 어디에도 하소연을 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경찰에게도 신고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당해낸다.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해도 도움을 받을수 없을거라는 절망감밖에 없는걸까?



결국 피해자는 그동안의 일을 밝히지도 않고 그저 몸을 던져 자살 해버린다. 아버지의 곁에 간다는 말만 하고서. 어머니는 알수 없는 아들의 자살을 겪고 큰 상심을 하게된다. 당연하다.. 뭘 알아야 돕지... 결국 아이를 화장까지하고 나서, 반 친구의 제보로 아이가 그동안 학교폭력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제야 학교에, 가해자들에게 무슨일이냐고 따져묻지만 증거도, 학교의 진실성도, 가해자의 사과도 너무나 미약하다.

그냥 벌어진 사건이 되어버렸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찾아간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사죄하며 천만원을 드린다. 피해자쪽의 사정을 뻔히 알기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누나의 대학비용으로라도 대라는 심정으러. 가해자들은 한명은 일진회로 빠지고, 한명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된다. 그렇게 소설은 허무하고 짜증나고 누구나 바라지 않는 결말로 끝이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독자로서 당연히 그에 맞는 응당한 대가를 치루길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 소설은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차단되었지만, 현실조차 소송까지 간다해도 소년법때문에 우리들이 원하는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희망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 작가가 원하는 메시지였을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년법상 특수형사사건은 엄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또한 사회에서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의 폭력사건을 자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떳떳한 어른이 되기위해, 괴롭지만 이런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학교폭력으로 점철된 주인공들, 왕따를 당하는 소녀, 폭력이 난무한 집단, 결국은 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난한 현실 등등 적나라한 실상을 담고있다. 너무나 잔인하고 무서운 폭력을 담담하게 묘사하는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무엇일까.



이 우울하고 삐그덕대는 소설 속에서 그나마 주인공들에게 위안을 주는 따뜻한 대상은 고양이 뿐이다. 피해자의 누나도, 가해자의 아버지도 일그러진 일상을 고양이를 돌보며 차츰 위로를 받아간다.

그러나 저 누나의 남동생은 폭력에 매말라가고, 저 아버지의 아들은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에겐 고양이의 따스함이 깃들지 못했나보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딱히 별다른 이유없이 틀어졌다. 겨우 중학생인 이 어린아이들이 폭력을 처음 행사한건 게임 포인트때문이었다. 다만 피해자인 아이가 그 사실을 스스로 방관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폭력의 범위가 잔인해져만 갔다. 가난한 이 아이의 사정을 알면서도 돈을 가져오라 때리고, 게임 승률을 높이라며 때리고, 그냥 아버지에게 혼이나서 때리고, 무엇이든 계기만 생기면 아이를 때렸다. 가해자는 두명이고 피해자는 한명이다. 그 아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다만 신음을 참아가며 흠씬 두들겨맞고 애원하고 매일 얻어터지는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반친구가 담임에게 일렀지만 담임교사 조차도 일을 크게 벌리기 싫어 친구사이의 주먹다짐으로만 치부해버리고, 그 일로 상황은 더 악화일로로 치닫는다. 반친구들의 방조, 어른들의 무관심은 소름끼칠 정도로 이 현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피해자인 아이는 도통 그 어디에도 하소연을 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선생님에게도 경찰에게도 신고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당해낸다.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이러할까.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해도 도움을 받을수 없을거라는 절망감밖에 없는걸까?



결국 피해자는 그동안의 일을 밝히지도 않고 그저 몸을 던져 자살 해버린다. 아버지의 곁에 간다는 말만 하고서. 어머니는 알수 없는 아들의 자살을 겪고 큰 상심을 하게된다. 당연하다.. 뭘 알아야 돕지... 결국 아이를 화장까지하고 나서, 반 친구의 제보로 아이가 그동안 학교폭력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제야 학교에, 가해자들에게 무슨일이냐고 따져묻지만 증거도, 학교의 진실성도, 가해자의 사과도 너무나 미약하다.

그냥 벌어진 사건이 되어버렸다.



가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의 어머니에게 찾아간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사죄하며 천만원을 드린다. 피해자쪽의 사정을 뻔히 알기에 쥐어주는 것이었다. 누나의 대학비용으로라도 대라는 심정으러. 가해자들은 한명은 일진회로 빠지고, 한명은 공부를 열심히 하게된다. 그렇게 소설은 허무하고 짜증나고 누구나 바라지 않는 결말로 끝이난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독자로서 당연히 그에 맞는 응당한 대가를 치루길 바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이 소설은 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모든 행위가 차단되었지만, 현실조차 소송까지 간다해도 소년법때문에 우리들이 원하는 결말은 없었을 것이다. 희망을 아예 잘라버린 것이 작가가 원하는 메시지였을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년법상 특수형사사건은 엄하게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또한 사회에서 특히 학교에서 학생들의 폭력사건을 자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떳떳한 어른이 되기위해, 괴롭지만 이런 소설을 읽어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사랑, 그러나 슬픔...
박해인 지음 / 창작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잔인하고 무서운 소설이다. 다만 소설속 이야기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잔인성을 낱낱이 표현하는 사회고발적인 이야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