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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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의 신작 「당신을 이어 말한다」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를 연출한 이길보라 감독이 2016년부터 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새롭게 재구성하여 만들어진 책이다. 이길보라 감독이 농인 부모를 가진 코다, 그리고 여성 감독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만큼 그와 맞닿아 있는 주제들이 책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같은 세상을 살고, 같은 사건을 겪어도 서로의 처지에 따라 보이는 것이 이렇게나 달랐다.

 

글을 읽는 내내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자꾸만 기득권(주류)으로서의 자아가 슬금슬금 올라왔다는 것이다. 자꾸만 마음 속으로 농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 '그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 어떡하자는 거지?', '일단은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없는거야?', '내 것을 희생해 나누어줘도 자꾸만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거 아냐?' 끔찍한 생각들이 자꾸 머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더 끔찍했던 건 장애인 담론이라는 걸 지우고 보면 이 생각이 너무나 뼈저리게 페미니즘 담론에서의 기득권 남성들의 생각으로 읽힌다는 거였다. 그제야 나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내 경험과 연결 짓고서야. 자꾸만 되뇌었다. 내것을 희생한 게 아니라, 내가 저들의 것까지 편리함을 누리고 있던 거라고. 그 후 궁금증이 하나 생겼다. 결국 우리는 사람들을, 특히 이런 일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이런 차별을 겪어본 적이 없어 차별이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길보라 감독이 영화제 숙소에서 불법촬영을 겪은 후 라는 포르노같은 제목으로 기사들이 나왔다. 심지어 이길보라 감독의 프로필 사진도 함께. 당연스런 수순으로 성희롱이나 다름없는 댓글이 달렸다. 그리고 감독이 수정을 바라며 연락한 기자, 신고를 바라며 찾아간 경찰은 당신이 공인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알 권리에 해당한다고 했다. 조회수를 올리는 데 급급해 자극적인 제목으로 피해자를 부각하는 기사가 정말 국민들의 알 권리인가? 자기들 돈 벌 권리가 아니고? 애초에 포털 사이트에 뜨는 게 공인의 기준인가? 자기들이 뭔데 국민들의 알 권리의 범위를 정하는 거지? 이거야말로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알권리'라는 단어는 중요하고 급박한 정보들에 쉽게 가닿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써야 한다. 가령 위급한 재난 상황에 대한 긴급 속보나 자세한 후속 보도들. 꼭 알아야 할 그런 급박한 소식일수록 농인들은 오히려 더 알 수가 없다. 급하다는 이유로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로나19 관련 본부의 첫 회견 때에도 수화통역사는 없었다고 한다. 알권리는 이런 곳에 쓰여야 하는 단어다. 돈벌이로 쓰고 싶은 자극적인 기사의 변명으로 쓰일 말이 아니라.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생각, 특히 농인과 그들의 자녀인 코다에 대한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고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항상 약간의 궁금증이 있었다. 왜 페미니즘은 환경주의나 장애인 담론, 성소수자 담론과 함께 가야하는걸까? 왜 여성인권엔 관심도 없어보이는 사람들까지 포용해야한다는 부담을 지우는거지? 이렇게 범주로 묶다보면 너무 단일화되고, 너무 무거워질 것 같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분투가 고되고 힘들어보여 그 짐을 함께 나눠지고 싶지 않아 회피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무조건 함께,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작정 포용하고 싶지도 않고, 서로의 담론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무작정 배제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차별이 같은 결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없애고 싶은건 단지 여성차별이 아니라 차별 그 자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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