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52) 배트맨 3 : 가족의 죽음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스콧 스나이더 외 지음, 이규원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DC코믹스의 등장인물, 히어로나 빌런들은 각자 지금의 상황에 처하게 된 배경과 경위가 존재한다. 그리고 주인공인 슈퍼히어로와 그에 대항하는 아치에너미는 주로 상반된 대극점에 위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배트맨의 등장인물 '조커'는 특이하게도 그런 유형을 벗어나 있는 캐릭터이다.

 부모의 죽음이 공포가 되고 곧 트라우마였던 배트맨은 '공포'를 무기로 삼아 고담 시를 지킨다. '부모의 죽음'이 곧 '배트맨의 탄생'의 배경이 된 것이다. 그러나 조커에게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불행한 과거나 어떤 계기로 슈퍼파워를 얻은 것도 아니다. 조커의 과거는 '레드 후드'라는 단편적인 면을 제외하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조커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자신의 흥미를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바로 '배트맨'이다.


 <가족의 죽음> 또한 자신의 목적인 배트맨에게 도달하기 위한 조커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과 똑같이 되길 원한다. 즉, 미국 코믹스에 만연한 히어로들의 금기나 마찬가지인 '불살주의'를 깨고 배트맨 또한 광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 수단으로 쓰인 것은 '배트 패밀리', 배트맨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전직/현직 로빈들과 배트걸, 집사 알프레드이다.

 배트맨의 최대 트라우마는 자신의 눈앞에서 부모가 죽은 것이다. 그것은 배트맨 시리즈의 상징이자 배트맨에게 평생 따라붙는 지울 수 없는 꼬리표이다. 그런데 그 일이, 어쩌면 훨씬 끔찍한 많은 죽음이 배트맨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악당들에게 '공포'를 주는 배트맨에게 최고의 '공포'를 조커는 선사해준다. 탐정의 기질을 가진 배트맨은 가족들을 덮쳐오는 조커의 위협에 한 명의 나약한 인간의 면모를 보이고 만다. 온갖 초능력을 가진 '저스티스 리그'의 멤버 중에서도 아무 초능력 없는 유일한 인간이기에 더욱 강조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진 한 인간이기에,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몇번을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안간힘을 쓰며 위기를 극복한다.


 탐정과 광대.

 질서와 광기.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치관이지만 역으로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과 조커는 서로를 누구보다도 가장 잘 이해한다. 자신과 정반대인 사람과 마주치면 사람은 어떤 생각이 들까?

 탐정은 광대의 행위에서 일말의 사상도 찾지 않으며 오로지 법의 심판만을 주려 한다. 그러나 광대는 탐정에게 집착하며 그를 망가뜨리려 자신과 동일한 존재로 만들려 한다.

 어째서일까? 이세상에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자신을 이해해준 그의 존재가 기뻐서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가학 행위에서 희열을 느끼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을 부수고 싶은 걸까?

 

 아무리 머리를 부여잡아도 답을 주지 않는 것이 바로 조커의 아이덴티티이다. 그는 언제나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바람처럼 사라진다. 끝나지 않는 광기. 그 광기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이는 항상 밤을 망토 삼아 수사를 계속한다. 그리고 <가족의 죽음>은 탐정이 해결한 한 가지 과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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