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생애
박기원 지음 / 마르코폴로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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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정의야 각자 다른 것이겠으나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진득함이다. 사람과 사물과 세상에 대한 진득함. 아무것도 피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가 뿌리를 내려본 경험이 있는 이들만이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불편한 것들을 더 잘 피하는 사람이 승리자인 것처럼 추어올리는 기술주의의 세상에서, 박기원 작가는 부러 불편을 자처한다. '단맛'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박기원 작가의 <추억의 생애>를 읽고 그가 시간을 얼마나 정성껏 마주하는 사람인지를 더 잘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무언가를 추억하는 인간에 대한 친절한 철학서 같은 느낌도 있다. X세대들이 경험한 문화적 광기의 흔적을 기록한 글들에서도, 단순히 향수에 젖어 과거를 복기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우리가 얻기 위해 상실한 것들이 정말 그럴 가치가 있었는지를 자꾸만 되물었다.
이 글은 독후감이라기보다는 고맙다는 편지에 가깝다. 스마트폰이 출현하기 한참 전의 시대를 청춘으로 보낸 이들이라면, 먼 훗날 돋보기 안경을 쓰고 소파에 앉아있다가 이 책을 집어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친다 하더라도 다시 주억거리며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를 기록해주어서 고맙다. 두껍게 써주어서 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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