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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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노동자 살리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극진보당이 딜을 하고 있다, 이 말씀이세요? 극.진.보.당이요?”
“예결위 소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잖아. 근데 한 자리도 없어. 거기서 우리는 목소리를 아예 못 내고 있다고.”
“대표님! 지금 밖에서 노동단체들 떨면서 시위하고 있는 거 모르세요?”
“우리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확보하고 재선도 돼야, 노동자 살리는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다고 법을 두고 딜을 해요? 기브 앤 테이크라고요?” (150-151쪽)
 
그간 윤장미는 극진보당에 호의적인 기사를 많이 썼다. 두 거대 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소수 정당이 살아남는 걸 응원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다양성은 지켜져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 그런데 더는 믿어선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애초 출입처와 정치적 성향을 동기화하는 게 위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52쪽)


책에 등장한 ‘기자질’이라는 표현을 보고 ‘정치질’이라는 단어 또한 생각해 본다. 정치란 무엇일까? 정치는 정말 ‘생물’일까?
 
전작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를 작년 이맘때쯤 읽었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지 다 떠오르진 않지만 아이스 카페모카를 입에 물고 열성적으로 취재하러 다니는 송가을의 모습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송가을이 사회부에서 정치부로 출입처를 옮기는 동안, 나는 이전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정치 기사를 접하려는 독자가 됐다. 자칭 ‘중도’를 자처하며, 정치인들은 다 똑같지 않냐며 냉소주의로 일관했던 내가 늦게나마 각성을 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기자‧언론을 향한 나의 불신은 날로 커져가고 있다. 검찰발 의혹 던져 놓고 ‘아니면 말고’ 식인 자극적인 헤드라인들을 어쩌면 좋을까. 심지어는 몇 시간 후 기사 제목을 멋대로 바꿔 버리기도 한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기사 전문을 잘 읽지 않는다.
‘계파’ 나누기와 지역주의를 부추기기는 물론, 젠더 문제의 민감성을 이용해 사람들을 피로하게 만드는 것 또한 심각하다. 커뮤니티에 게재된 내용이 정설인 양 그대로 베껴 쓰는 듯한 기사도 적지 않다. 그 아래 욕설과 유언비어가 낭자함에도 전혀 관리되지 않는 댓글창 또한 한숨이 나온다. 과연 네이버 클린봇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송가을이 속한 고도일보에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특종 ‘한 방’ 때리길 노리고 있는, 야심 가득한 이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원래 입체적이라지만 저자의 실제 기자 생활이 반영되었단 걸 생각하면 좀 다르게 읽힌다.
‘기민호’라는 인물이 특히 현실적이었다. 다만 내가 송가을이라면 그에게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도록 했을 것 같다. 기민호의 섣부른 행동을 절대 용서할 수 없기에, 친구로는 남을지라도 그에게 다시 기자직을 권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꾸미’ 문화도 흥미로웠다. 뜻 맞는 기자 네댓 명이 팀을 꾸려 취재하는 방식인데, 자칫 “에이스 기자놀음, 이너서클 문화”(44쪽)로 전락할 수 있다는 데서 이 또한 기자들의 욕망을 잘 보여 준다.
그 외에도 ‘1톱 3박(신문 지면에서 1면 톱 기사와 3면 박스 해설 기사를 동시에 쓰는 것, 대특종)’, ‘귀 대기’, ‘야마(핵심 내용)부터’ 보고하기 등 기자들이 자주 쓰는 은어 찾는 재미가 충만했다.
욕망과 딜이 난무하는 국회에서 러브 라인이 웬 말인가 싶기도 했지만 서사 진행에 크게 방해되진 않았다. 실제로 드라마화하면 어떤 배우가 이 역할들에 어울릴지 상상해 보게 된다.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정주행을 끝낸 지 얼마 안 돼서 그런가, 박살난 국회의사당이 자꾸 어른거렸다. 다행히 『민트 돔 아래에서』 속 국회의사당은 온전한 상태다. “민트초코봉봉 아이스크림에서 초콜릿만 쏙 빼”(9쪽)낸 오묘한 색을 띠는 커다란 돔, 그 안에서 온갖 군상들의 치열한 모습을 목격하며 송가을은 어엿한 정치부 기자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후속작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까지…!
부디 송가을만큼은 내가 계속 응원할 수 있는 올곧은 기자로 남길 바란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비현실적인 캐릭터여도 상관없다. 현실이 너무 가혹하니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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