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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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그림 속 권력 이야기'인 만큼 소제목에 쓰인 동사들도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권력이 빚어낸 차별과 혐오의 역사를 '부수고' '거부하고' '균열 내고' 그것에 부단히 '저항'하겠다는 저자의 의지가 드러난다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시대를 증언"하며, "당대가 떠안아야 했던 시대적 한계가 과연 오늘날에는 시원하게 끊어졌는지"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읽는 내내 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가 함께 떠올랐다.


기대했던 대로 성차별 문제가 빠지지 않는다. 대리모 사업의 민낯, 사회가 모성애를 악용하는 방법, '성 상품화'의 실체를 가리는 '성 노동론' 등등. 현대에도 끊임없이 거론되는 문제들이지만 명화 속 시대상 읽기와 함께하니 느낌이 또 다르다.

에드가르 드가의 <무용수들, 분홍과 초록>, <기다림>은 첫인상과 지금의 느낌이 가장 다른 작품들이다. 발레리나 특유의 자태나 그 움직임을 묘사한 것에 집중하기보다, 19세기 프랑스 발레 업계의 이면을 들추어보도록 저자가 감상 포인트를 안내해준다.

 

"19세기 파리에서는 돈 많은 남성들이 발레 공연장을 많이 찾았다. 유독 발레라는 예술을 아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어린 발레리나를 만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 당시 발레리나는 주로 노동 계층에서 선발되었다. () 상류층 남성 눈에 비친 발레리나는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노동 계급 출신의 소녀일 따름이었으니, 고로 만만한 성적 사냥감이었으리라. 발레 문화의 주도권을 러시아에 내어주고 인기가 쇠하여가던 프랑스 발레 공연 업계는 신사들의 발걸음을 반색하며 환영했다. 이들은 거액의 찬조금을 내는 돈줄이었기 때문이다. 신사들은 그 대가로 무대 뒤로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고, 어린 무희들의 몸을 이리저리 각을 재며 탐색한 후 '후원을 해주겠다'며 은밀한 제안을 하곤 했다." (89-92)


NFT 아트 분야의 가격 경쟁, 예술계 후원 문화의 허점을 짚어낸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인간의 욕망이 현대 미술시장에 끼칠 혼란을 염려하는 동시에, 과거 사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NFT가 도대체 뭐길래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건지, 삼성의 꾸준한 잡음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왜 '이건희 컬렉션'에는 한없이 관대한지아직도 내 머리론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많다.

 

"오늘날의 기업가들은 메세나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 활동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부와 후원을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기업가들이 평소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주장에는 그렇게 불편해하면서도, 기부할 때는 납부해야 할 세금보다 더 큰 액수의 돈도 내놓는다는 점이다. () 부자들은 세금 납부를 통해 공적으로 사회적 의무를 하는 데에는 매력을 못 느낀다는 얘기다. 그들은 드물어서 아름다운, 그런 비현실적 미담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한다. 노동자 착취, 협력기업 쥐어짜기, 소비자 기만 등으로 지탄받는 거대 기업이 납세라는 '당연한 의무'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부와 후원이라는 '폼 나는 자선 행위'를 통해 사회적 찬사와 인정을 얻어내는 것이다." (252-253)


그림만 놓고 보면 '권력'이라는 키워드가 단박에 떠오르지 않아 신선하게 해석되는 작품이 많았다. '친절한 손'으로 살고 싶다는 저자 이유리의 뜻이 나에게는 성공적으로 와닿은 것 같다. 명화 속 시대별 사회상을 읽어내는 일이 왜 중요한지 깨우쳐준 셈이다. 이 느낌을 잊어버리기 전에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도 빠른 시일 내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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