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 이후에도 우리는 산다 - 오늘도 정주행을 시작하는 당신에게
윤이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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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애 고취 방송' <시스터후드>의 진행자이자 프리랜서 작가로 활약 중인 윤이나의 '장르 불명 인터랙티브 옴니버스 에세이'다. 내가 지은 수식어구는 아니고 저자 본인이 소개한 로그라인 중 일부다. 그 표현대로 다양한 장르의 영상 콘텐츠를 소개하고 평하는 책이다.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디즈니+, 애플TV+와 같은 OTT 플랫폼의 콘텐츠 리뷰가 두루두루 실려 있는데, 그 중심에 '여성의 시선'이 평가 기준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이야 여성서사의 정체성이니 뭐니를 고민하는 시기도 지났고 내겐 일상적인 소재가 되었지만, 이제 막 여성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사람도 분명히 생겨 나고 있을 터. 그런 사람들에겐 이 책이 여성서사 콘텐츠 입문용으로 탁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모험은 늘 귀환으로 마무리된다. 소년에게 세계는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가르쳐주는 바깥이며, 모험을 통해 성장했다고 해도 이 변화를 인정해주는 곳은 언제나 고향, 집이다. 소녀의 모험은 홀로서기로 마무리된다. 소녀에게 세계는 집이 얼마나 좁고 억압된 곳이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자유의 공간이며, 모험을 통한 성장은 그 넓디넓은 세계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소녀는 돌아가지 않는다.
(「세상 밖으로 나온 소녀는 돌아가지 않는다 <에놀라 홈즈>」, 37쪽)


소수자인 여성이 좋은 방과 의자를 가지게 되었을 때, 곧 한 집단에서 리더의 위치에 올랐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지윤에게 주어진 것은 자리일 뿐, 힘이 아니다. 지윤은 유리 절벽에 서 있다. 기업이나 조직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만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하면 그 책임을 묻는 현상을 유리 절벽이라고 할 때, 지윤에게는 이제 떨어질 일만 남은 셈이다.
(「어차피 터져버릴 시한폭탄이라면… <더 체어>」, 143-144쪽)



저자가 추천하는 넷플릭스 콘텐츠 중, 밀리 바비 브라운 주연의 영화 <에놀라 홈즈>와 산드라 오 주연의 드라마 <더 체어>를 나도 굉장히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특히 <더 체어>는 대학교 캠퍼스 내에서 벌어지는 학생 대 교수, 교수 대 교수 구도의 다양한 갈등 양상을 다루고 있어 나의 대학생활을 반추해 보게 만든 작품이다. 문학 전공자라면 더더욱 공감 포인트가 많을 거다. 아무튼 두 작품 모두 새 에피소드를 얼른 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 에세이는 OTT 중독을 자처하는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자극을 북돋아 준다. 호불호가 쉽게 갈릴 법한 다큐멘터리, 스탠드업코미디 장르를 과감히 추천하는 데서 그렇게 느꼈다. 웬만한 유명작은 섭렵했으니 이제 발 빼겠다던 구독자들이 외려 다큐멘터리에 빠지는 과정을 종종 봐 왔는데, 윤이나 작가도 이미 그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다.
나는 OTT 입문자도 아니고 열혈 시청자도 아닌 모호한 입장이다. 워낙에 영상물 시리즈를 진득하게 못 보는 스타일인데 어쩌다 하나에 꽂히면 몰아 보는 경향은 있다. 이런저런 영화를 뒤적거리면서 찜 목록만 부질없이 늘려 가던 중에 이 책을 읽었고 <스케이터 걸>, <걸스 오브 막시>, <위 아 40> 등을 새로 추가했다.

<시스터후드>는 내가 평소에 즐겨 듣는 팟캐스트이기도 하고, 이전에 같은 저자가 쓴 '내리막에 익숙한 밀레니얼을 위한 용기 고취 에세이'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코난북스)를 읽은 적도 있다.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자의 통찰력을 긍정적으로 보아 온 독자(애청자)로서 앞으로는 그의 집필 활동도 더 눈여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습관대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리뷰를 썼지만, 청춘 혹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 자체에 관해 영감을 주는 콘텐츠 추천도 많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윤이나 작가의 진면목을 발견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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