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또 우리의 미래에 마주할 수밖에 없는 노년과 그들의 곁을 지키는 다양한 인물들의 특별한 서사들이 일품입니다. 막 삶의 중심에 들어선 청년 세대에 관한 소설들 또한 위의 소설들처럼 독특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때로 발랄하고 때로 씁쓸하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소설집은 소설의 본령이기도 한 이야기성을 풍부하게 담아 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막 첫 책을 발간한 이 신인작가를 응원하게 됩니다.
장정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옥봉>. 수백 편의 시를 쓴 종이에 기름을 먹여 온몸에 휘감은 여자의 시신이 중국 해안에 떠오른다.(첫 장 '괴이한 소문) 백지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라고 쓰여 있다. '처음 시를 몸에 감고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의 이야기를 접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일었다. 그게 사실이든 신화적 상상이든 중요하지 않았다.-작가의 말에서.' 조선 시대 대표적 여성 시인 허난설헌, 황진이, 이옥봉... '옥봉'을 찾아내어 소설화 한 것도 놀랍지만 첫 장부터 이런 게 필력이구나 생각했고, 장마다 인용된 옥봉의 시에 가슴이 떨리는 걸 느낀다. 괴로움, 괴로웠던 마음에 장정희의 문장이 들어와 처연으로 바꾸어 놓는다. 슬픔은 고통과는 다르니까.함께 읽는다면 고요하고 아름다운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도 같다.
나혜석의 여행기는 재밌다. 백여년 전 여성의 글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되고 재기발랄한. 1927년 경성에서 기차를 타고 장춘으로 하얼빈으로 만주로 모스크바로 폴란드로 스위스로...국경을 넘어가며 쓴. '여름이면 다림질, 겨울이면 다듬이질로 일생을 허비하는 조선부인이 불쌍하다' -나혜석. 당시 서구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조선의 부인들의 운명을 진정으로 아파하는 심경이 여러군데. 그의 삶이 다만 자신의 자유와 자기실현을 위한 파란만장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