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간의 유럽배낭여행기 여행스케치
김미진 지음 / 열림원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우리는 호텔 캘리포니아로 간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여자>에 이르기까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하나이다. 이 책 역시 단순히 '여행 스케치'였다면 수많은 여행가이드 북 중의 하나라 여겼을 것이지만 '김미진'의 여행스케치였기 때문에 망설임없이 집어 들었고 역시나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나 역시 지난 5월, 저자와 비슷한 경로를 따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떠난 여행이었고, 황량해진 마음 속에 신선한 바람을 넣어 오겠다는 작은 바램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해외여행 한 번 다녀오지 않으면 남들과 얘기할 때 괜히 주눅드는 세상에 살게 되면서 특별한 목적도 없이 '나도 한번 갔다 와야 되는 거 아냐?' 하는 마음으로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이었으며 그것도 혼자 떠나는 배낭여행이었기에 여행하는 동안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기보다는 뭔가를 잃어 버리지는 않을까, 오늘밤은 숙소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까, 다음 도시로 떠나는 기차를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을까 등등의 걱정으로 한 달 내내 긴장 속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나에게 남겨진 것은 '돈을 많이 썼구나' 하는 생각과 몸의 피로뿐이었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 일이란 말인가.여행에서 돌아온 후에야 '무엇무엇은 꼭 보고 오겠다' 라든지, '이번 여행은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를 순례하는 것이라든지 뭔가 나만의 테마를 쥐고 떠났더라면 그렇게 무의미한 여행은 아니었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그런데 저자와 함께 다시 한번 스물 여섯날의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저 수박 겉핥기로 이 나라 저 도시를 '찍고 턴'한 것만 같았던 나의 배낭여행에 비로소 생기가 돔을 느꼈다. 여행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상이 이제서야 서서히 밀려들었던 것이다.

저자가 비오는 런던의 거리에서 숙소를 잡느라 고생했던 부분에서는 밤새 버스를 타고 새벽녘에 브뤼셀에 도착했을 때의 막막함이 떠올랐고, 천재들의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부분에서는 꿈에 그리던 깐느영화제의 개막식을 구경하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 여행이 그리 헛된 발걸음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로텐부르그에서는 옛것에 대한 신선함을 느꼈고, 융프라우에서는 일본인들에 대한 질투심을 가졌었으며, 니스에서는 평화 속에 감춰진 외로움을 맛보기도 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예술에 대해 경외심이 아닌 친근감을 갖는 그네들에게 부러움을 품었었다. 막무가내였던 나의 배낭여행이 이제야 가닥을 잡고 의미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짜깁기 식으로 나열된 여행정보가 아닌 저자의 기행문은 그 곳에 가 보지 않은 독자에게 여행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낯선 곳을 방문했을 때 느끼는 이방인의 설레임과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과 이질감을 숨김없이 전달하고 있다.

또한 저자의 전공이 미술인 덕택에 유럽여행 중 방문한 미술관과 유명한 예술가의 고향에서 느낀 감흥에 대해서 진솔하게 적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여행 가이드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이 책의 장점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곳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을 방문한 이방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게 해 주고, 저자와 비슷한 일정으로 유럽에 다녀 온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여행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책의 갈피갈피에서 만날 수 있는 저자의 담백한 스케치와 그림들은 예술가가 쓴 여행책자에서만 볼 수 있는 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사적인, 너무나 사적인]이라는 제목으로 1998년에 출간되었던 것이 2001년에 개정판으로 나왔는데 개정판의 제목이 된 [26일간의 유럽배낭여행기 여행스케치]는 상업적인, 너무나 상업적인 제목인 것 같아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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