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행복을 발견합니다 - 교사 7인이 말하는 오늘 그리고 행복
양귀란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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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명의 초등교사가 각자의 행복을 향한 분투를 그린 글들을 모은 책이다. 그들 모두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지만, 평범한 많은 이들과 다르지 않은 고민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도 그리 거창하지 않다. 볕이 잘 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시간, 평범한 하루를 잘 마무리하는 일,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등 항상 우리 주변에 있고 우리가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일들이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통 사람인 그들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하나씩 이루어내는 일들은 결코 소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직장인으로 살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매일 5분 정리로 비움을 실행하는 일, 습관 목록을 만들어 매일매일 해내는 일, 책읽기와 글쓰기로 방전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일, 어학공부에 매진하는 일 등. 일상에서 얻은 교훈을 지나치지 않고 부지런히 삶 속에 투영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가 오늘의 일상을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꽤 괜찮은 답으로 보인다.


요즘 새로운 기피 직종으로 떠오른 초등교사로 사는 그들의 글이 절망적이거나 어둡지 않다는 데 우선 안도감이 든다. 그들은 밝고, 삶의 의욕으로 충만하며, 날마다 행복하려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행복을 위해 날마다 탐구하고 무언가를 실천하며 고민하고 애쓰는 그들처럼, 나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고 싶은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행복은 언제나 내 곁에 있고 내가 눈길 주길 기다리고 있으며 나의 작은 손짓으로 내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닫는다. 나도 오늘 행복을 발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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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암 이벽
황보윤 지음 / 바오로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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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문장이 참 맑다. 군더더기 없이 정곡을 뚫지만 거칠지 않고 단정하다. 한 번도 어려운 신춘문예에 두 차례나 당선된 이력의 작가답게 완숙한 경지가 느껴지는 문장이다. 잘 다듬어져 걸리는 데 없는 문장 덕에 책장이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은 선교사 없이 자생한 조선 천주교의 태동과 박해와 배교의 역사를 배경으로, 최초로 학문을 종교로 받아들인 조선 사람 이벽의 생을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벽의 종교인으로서의 성장과 순교의 역사를 드러내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인간 이벽을 실재감 있게 보여주는 풍부한 이야기성을 포함하고 있다. 스승과 벗들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 아내와 학문으로 교통하는 모습, 하인과의 인간적인 관계 등을 통해 인간 이벽의 일상과 성품을 엿보며 살아있는 모습의 그를 실감할 수 있다.

 

다른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조선 선비들의 토론 모습을 재현한 장면이다. 녹암과의 열흘 간의 강학 모습이나 이가환과의 천주교에 대한 토론 모습 등은 깊은 공부가 없이는 재현할 수 없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정약용에 대한 시기와 질투하는 마음을 표현한 부분이나 이벽이 방에 갇혀 죽어가는 장면 등을 보며 작가의 상상의 깊이에 감탄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진지한 사유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문장들이다.

각 장의 단아한 제목들은 맛깔난 덤이다.

 

수많은 참고 자료 속에서, 삼 년이라는 긴 시간을 고뇌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지어갔을 작가의 노고가 손에 잡힐 듯하다다 읽은 후 서문으로 돌아와 이벽의 유서를 다시 한번 읽었다. 처음 읽을 때보다 한층 깊은 울림이 가슴을 채웠다. 그리고 책을 덮으며 시원하고 올곧으며, 기쁘다가 문득 슬프다.’는 김탁환 소설가의 평이 있는 그대로 내 마음에 들어서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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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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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통의 발견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습하고 추운 계절을 지나 여름은 더디게 다가왔다. 다가온 여름은 부패를 부추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부분 여름을 기다렸다. 곧 떠날 사람들은 창문 밖으로 계란이나 버터를 담은 장바구니를 내걸며 도시의 여름을 버틴다.

 

   낯선 도시에서 화자는 불통에 시달린다. 도시의 곳곳은 파업으로 정체되었고, 파업의 여파로 진학할 대학에서 보낸 합격서류는 도착하지 않는다. 그녀가 한 달 후 어디에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

 

   화자는 어학연수를 위해 프랑스에 온 지 여러 달째 접어들지만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은 채 고요히 지낸다. 단조로운 일상 속의 정기적인 스케줄은 어학 실력 향상을 위해 어학원에서 주선해 준 르블랑 부인과의 대화 시간이 유일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한다. 르블랑 부인은 가는귀를 먹었고, 화자는 어법에 맞지 않는 말들을 더듬더듬 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불통과 더불어 화자는 가족과도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먼 자리에 놓여있다. 그녀의 엄마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생동감 있는 거짓말을 소통의 도구로 삼는다. 화자는 거짓말을 일삼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고, 둘 사이에 솔직함이 존재한 순간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별거 중인 남편은 결혼하면 언제나 서로에게 솔직하자는 말로 청혼했지만 결혼 후 삼 년 만에 불륜 사실을 밝힘으로써 화자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국의 낯선 문화적 환경과 서툰 언어 속에서 불통을 겪으며 화자는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고 유창함이라 느낀다. 그래서 자신의 안에 표현되지 않는 이야기의 부스러기들이 떠다니고 발아되지 못한 말의 씨앗들이 내면에 번져가도 그녀는 고요히 문을 잠근다. 엄마와의 소통도(나는 그냥 폴더를 닫았다. 액정의 불빛이 사그라져 사방에는 다시 어둠뿐이었다. p.187), 르블랑 부인과의 소통도(르블랑 부인과는 침묵의 순간이 더 길어졌고, 그래서 곤혹스러웠다. p.188) 포기한다.

 

   그러다 어느 새벽, 그녀는 푸르비에르 성당을 찾게 된다. 이 도시의 시발점인 언덕 위에 자리한 성당은 고즈넉한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오르간 소리가 성당 안을 울리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대리석 천장을 공명시키는 노랫소리는 전혀 들어본 적 없는 곡조의 장엄하고 우아한 화음을 이룬다. 그녀는 그 화음을 들으며 이 도시에 온 이후 처음으로 르블랑 부인을 찾아가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

 

   그녀가 사는 기숙사는 대부분 곧 떠날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는 사람들은 보여 주고 싶은 만큼만 자신을 드러내며 제한된 삶을 산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끼리 모여 남은 재료로 저녁식사를 해먹자󰡑는 내용의 공고문이 붙고, 한 학기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음식을 나누며 통성명을 하고 대화를 나눈다. 한정된 단어와 제한적인 문형으로 조합된 불분명한 문장들, 그 실수투성이의 문장들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대화들. 누구도 상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누구도 자신의 생각이 온전히 전달된다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화는 이어진다. 그 대화에 문장의 형식이나 내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자는 󰡐신기한 체험󰡑이라고 말한다.(우리가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 진실한 것이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행위,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p.195)

 

   중요한 것은 진실이 아니고 유창함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진실도, 유창함도 넘어서는 그것,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의 중함을 깨닫는다. 프르비에르 성당에서의 경험과 기숙사에서의 공동 식사를 통해 중요한 것은 소통의 행위를 멈추지 않는 일이라는 걸 깨우친 것이다. 공동 식사의 장면에서, 그들의 대화는 성당에서 들었던 성가곡의 가락처럼 들린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리고 소통을 포기했던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또 르블랑 부인을 다시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이렇게 소통의 행위를 결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고요하게 울리는 그 합창곡에 끼어들기 위해서 나는 굳게 닫고 있던 입술을 살짝 떼었다. p.196)

   파업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도시의 파업은 결국 마무리될 것이고, 그녀의 합격증은 도착할 것이다. 불통의 고통은 소통의 행위로 희석될 것이고, 그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유창함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소통의 발견으로 희망을 드러내며 끝맺음되는 이야기는 작가의 긍정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듯하다. 그녀가 날 때부터 곁에 없던 아버지에 관한 여러 이야기 중 먼 나라를 떠돌며 집을 지었다는 사내를 가장 좋아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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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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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밤은 어둡다. 완벽한 어둠 속에 뭔가 터지는 소리, 총소리가 들린 후 다시 정적과 어둠이 내려앉는다. 넉 달 된 어린 딸은 아빠의 품에 안겨있고, 스물한 살의 그녀는 아기용품과 사전이 든 가방 두 개를 든 채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된다. 그녀는 195611월 말의 어느 날을, 자신의 작문 노트와 처음 쓴 시와 가족과 그리고 헝가리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완전히 잃어버린 날로 기억한다.

 

그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5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빈곤 속에 성장한다. 결혼 이후 정치적 이유로 남편, 딸과 함께 1956년 스위스의 뇌샤텔로 이주한다. 강제 수용소나 동물원을 떠올리게 하는 스위스의 난민 막사에서 그녀는 생각한다. 헝가리를 떠나지 않았다면 더 어렵고 가난했겠지만,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웠을 거라고. 어쩌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 글을 쓴 지 20년이 더 지난 후에도 여전히 프랑스어는 그녀에게 어려운 언어이고, 또 그녀의 모국어를 죽이고 있기에 적의 언어라고 말한다.

제자리가 아닌 곳에 강제로 놓인 사람들의 고통을 그들 자신이 아니라면 누가 알 수 있을까. 집과 가족을 떠나는 일, 모국어를 잃는 일, 그리고 성인기에 다시 문맹이 되는 일.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라는 경계적 인간으로 살아온 서경식 교수는󰡐인간이 타자의 고난에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한다.(시의 힘_현암사) 자신을 위로하는 스위스인을 보며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스위스가 난민들에게는 사막(사회적 사막, 문화적 사막)과 같으며 어떤 이들은 끝끝내 이 사막을 건너지 못한다고. 이 사회에 끝내 동화되지 못한 채 징역형이 예견되는 고국으로, 혹은 죽음을 향해 스스로 걸어간다고. 그들 자신이 아니라면 그 선택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타자의 고난에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의 어려움.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었던 시기에 이 책 문맹과 더불어 자주 생각했던 말이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 (p.9)

 

타고난 질병과도 같이 읽기에 몰두했던 그녀가 스위스에서는 5년이나 문맹 상태로 지낸다. 스스로도 어떻게 읽지 않고 5년이나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물여섯의 나이에 읽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조국을 떠날 때 사전을 챙겨왔던 그녀.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떠나야했지만 소통의 끈이자 읽기와 쓰기의 통로로 삼을 사전만은 챙겼다는 사실이 그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스위스에 도착했을 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희망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새로 배운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된다. 희망을 이루기까지 그녀의 삶이 어떠했을지 상상조차 버겁다.

단문 속에 응축된 그녀의 이야기는 읽는 이를 서늘하게 할 만큼 날카롭다. 세상의 이면과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_까치><어제_문학동네>, <아무튼_지혜정원>등의 작품에서 그녀 단문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문맹>이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문학적이라고 했으나 번역자 백수린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한다.󰡐암시와 공백으로 완성되는 그녀의 단순하고 투명한 문장들은 그 자체만으로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어제>의 추천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 작가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최소한의 문장으로, 가장 강렬한 감정을 창조하여 독자를 베어버린다.󰡑라고. 그녀의 작품을 한 편이라도 접한 독자라면 두 사람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최소한의 문장으로 창조되고 암시와 공백으로 완성되는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흥은 쉬이 잊히지 않으므로.

 

 무엇보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할 일은 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쓰는 것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누구의 흥미를 끌지 못할 때조차. 그것이 영원토록 그 누구의 흥미도 끌지 못할 것이라는 기분이 들 때조차. 원고가 서랍 안에 쌓이고, 우리가 다른 것들을 쓰다 그 쌓인 원고들을 잊어버리게 될 때조차.(p.97)

 

모국어로 말하고, 최초로 익힌 글로 쓸 수 있는 축복을 자주 잊는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책들을 다 읽을 수 있는 자유를 큰 기쁨 없이 누린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작품을 읽으며 나의 읽기와 쓰기를 돌아본다. 축복과 기쁨을 잊지 말자고, 그침 없이 읽고 지치지 말고 쓰자고.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신형철)

 

아고타 크리스토프. 그녀의 고통이 배어 있는 글이기에 그녀의 작품이 힘을 갖는 건지 모르겠다. 고통스런 이야기가 위로가 되는 역설. 그런 역설이 곧 문학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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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싱턴의 유령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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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독의 발견

 

  여자는 울었다. 스스로도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수백 벌의 옷이 즐비하게 진열된 방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토니 다키타니가 죽은 아내의 옷을 대신 입어줄 여자를 구해 아내의 옷방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일어난 일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부분을 위대한 개츠비의 한 장면과 비교한다. (느낌의 공동체_2011_문학동네) 개츠비가 데이지를 집으로 초대하여 셔츠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던 데이지의 모습이 연상된다는 것이다. 그는 무라카미가 피츠제럴드를 샘플링했다고 말한다. 다만 두 여자의 눈물의 의미를 구분하는데, 데이지의 눈물은 그녀의 허영과 무책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토니 다키타니에서의 눈물은 본인 삶의 고단함과 대비되는 옷의 눈부심에 대한 탄식이라고 말한다

 

  다키타니와 아내는 열다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희한할 정도로 말이 잘 통했다. 두 사람은 만나면 마치 그동안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이 하염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상에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엄마를 잃은 남자와 옷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 그 둘은 내면에 텅 빈 방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2004년에 제작된 이치카와 준 감독의 동명의 영화 포스터는 빈방에 각자의 방식으로 앉은 두 남녀를 보여준다. 두 사람의 통함은 서로의 내면에 도사린 빈 방, 서로의 그 커다란 결핍을 무의식 중 알아채고 공감하며 깊어진 동질감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다키타니는 사랑을 만남으로써 고독을 발견한다. 사랑으로 채워짐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내부에 뚫린 빈방의 존재를 알아채게 된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내가 죽었을 때 그는 아내의 옷을 입고 자신의 곁에 있어줄 여자를 구한다. ‘습관으로 고독에 익숙해진 사람이었던 그가 고독하지 않은 삶을 경험하고 나자 다시 또 고독해지는 것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된 까닭이다. 다키타니는 아내의 그림자인 옷들을 버리지 못한 채, 아내의 부재로 인한 고독과의 직면을 유예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허망함을 깨닫고 옷들을 처분한다.

 

  다키타니의 아내는 옷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여자였다. 눈에 드는 옷을 보면 완전히 자제심을 잃고 몸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이나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옷 사는 걸 삼가라는 다키타니의 지적에, 꼭 뭔가에 중독된 것처럼 옷 사는 걸 멈출 수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새 옷을 사지 않으려 집 안에 머무는 동안 그녀는 어쩐지 자신이 텅 비어버린 느낌, 공기가 희박한 행성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다키타니는 아내를 만남으로써 빈방을 채웠지만 그의 아내는 여전히 채우지 못한 빈방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를 죽인 것은 황색 신호에 무리하게 교차로를 뚫고 달린 대형트럭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 내부의 빈방이었을지 모르겠다. 그저, 그저 단순히 참을 수가 없었다.’(p.147) 내면의 빈방을 옷으로 채우고자 했던 그녀의 갈급함이 끝내 그녀를 죽인 것은 아닌지.

 

  토니 다키타니는 토니라는 이름으로 인해 혼혈로 오인 받고 놀림당하며 혼자만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으로 성장한다. 이름은 그 사람을 드러낸다. 첫 이름은 자신이 지을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지어진다. 토니가 만약 토니가 아니었다면, 미군 소령이 아닌 그의 아버지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그에게 일본인다운 이름을 정성껏 지어 불러주었더라면 어쩌면 토니의 삶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름으로 인해 자신의 본질과 먼 모습으로 살아나가게 된 토니 다키타니가 무리에서 멀어져 고독해진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토니 다키타니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는 극히 사실적인 그림을 그렸고, 그로 인해 사상성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토니 다키타니의 눈에 사상성 있는 그림들은 미숙하고 조악하며 부정확하게 보일 따름이었다. 세상의 모습을 변형시킨 그림들은 그린 이의 사고를 반영한다. 세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받아들인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토니 다키타니는 그림에 자신의 생각을 가미하지 않는다. 다만 눈에 보이는 그대로 옮길 뿐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인성을 지녔지만, 그가 누구와도 현실적인 레벨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자신의 색채, 즉 자기라고 드러낼 수 있는 본질적인 모습이 없어서였을 것이다.(내부에 채워지지 않은 텅 빈 공간을 지녔기에.) 자신의 색채를 띠고 누군가를 만나 그의 색채와 어우러지고 변화를 경험하는 것, 그것이 인간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토니 다키타니의 절대적인 고독은 자신의 색채가 없고 그래서 타인의 색채를 알아볼 수 없으며, 타인과 만났을 때 접점에서 서로의 색채에 물드는 변화를 경험할 수 없었다는 데 본질적인 이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다.

 

  토니 다키타니는 결혼 후 시아버지가 연주하는 음악을 궁금해 하는 아내와 함께 긴자의 클럽으로 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러 간다. 토니의 아버지 다키타니 쇼자부로는 모던재즈 시대로부터 일렉트릭 재즈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옛날 그대로의 재즈를 계속 연주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토니 다키타니는 아버지의 연주에서 무언가 달라진 것을 느끼며 불편해한다. 그 음악 속의 무언가가 그의 숨을 답답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한다고 느낀다. 아버지와 그, 두 사람은 비슷하게 깊게, 습관으로 고독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세상과, 타인과, 본질적인 무언가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래서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토니 다카타니가 사랑으로 내부의 빈방을 채우고 나자 이전의 자신과 비슷한 모습의 아버지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는 공기가 희박한 행성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p.147)

고독이 돌연 알 수 없는 무거운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며 고뇌에 빠지게 했다.(p.141)

주변 공기의 압력 같은 것을 조금씩 조정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p.151)

탐욕스러운 프릴 장식이며 단추, 어깨 장식, 장식용 주머니, 레이스, 벨트가 방 안의 공기를 기묘하게 희박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고독이 미적지근한 어둠의 진액처럼 다시 그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p.155)

 

  다키타니의 아내는 옷을 사지 못하자 공기가 희박해지는 듯 느낀다.(p.147) 새 옷을 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이상 징후다. 새 옷을 반품하자 그녀의 생도 마감된다.

 아내가 죽고 나자 다키타니는 공기의 압력을 조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아내와의 만남으로 고독의 새삼스런 무게를 느꼈던 그는(p.141) 아내가 사라지자 다시 예전의 고독으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p.151)

 아내가 남기고 간 옷들을 보며 다키타니는 공기가 희박해짐을 느낀다. 아내 없이 살아가야 하는 날들의 힘겨움과 다시 고독으로 무거워진 그의 삶을 보여주는 부분이다.(p.155)

 

  아내가 죽은 지 이 년 만에 다키타니 쇼자부로가 간암으로 죽었다. 그는 오래된 재즈 레코드 더미를 남기고 떠났다. 아내의 옷들을 처분한 텅 빈 드레스룸에 아버지의 유품을 보관하던 토니 다키타니는 일 년이 지난 후 그마저도 정리해버린다.

 

  레코드 더미를 완전히 정리해버리고 나자, 토니 다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p.161)

 

  토니 다키타니의 마지막 문장을 보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다음 문장을 생각한다.

 

고독은 공기처럼 어디에나 있어서 잠시 잊어먹을 수 있을 뿐이고, 행복은 늘 등 뒤에 있어서 단지 기억될 수 있을 뿐인 것인지.(슬픔을 공부하는 슬픔_2018.한겨레출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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